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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엄마의 번호를 쓰고 있다

아기에게 영상 통화는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 본능적으로 디스플레이의 마법에 끌리는 아이들을 이 "악마의 도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엄마, 아빠는 항상 아기 눈앞에서 핸드폰을 치우기 일쑤이다. 아기 기저귀를 사려고 할 때도, 카톡을 확인할 때도 주변에 아이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사각지대로 숨어서 재빨리 보던가 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영상통화 때만큼은 마음껏 그 핸드폰 화면을 볼 수도 있고 만져볼 수도 있으니 아기는 얼마나 좋을까. 


불행히도 우리 아들이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대상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아빠가 낮시간에 붙어있으니 자연스레 아빠의 핸드폰으로 영상통화를 하게 되는데 아빠가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가족은 일하고 있는 아내와 친할아버지, 제주도에 사는 고모 딱 셋 뿐이다. (여러 사정상 처갓집에는 나의 육아휴직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불행히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는 평일에는 걸 수가 없다.) 


영상통화를 하게 되면 의례 이 세명에게 돌아가며 전화를 걸게 되는데, 모두가 내 영상통화를 기다리고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가끔 잠시 후에 다시 시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럴 때면 우리 아기는 본인이 만족하는 영상통화 횟수 3회를 다 채우지 못했으므로 나를 보채고는 한다. 아기의 엄마가 일을 하는 중이라 못 받는 경우가 아무래도 많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아이를 나는 "알았어, 엄마한테 다시 걸어보자"며 달래고는 한다.


그날도 그랬던 날이었나 보다. 




아내가 영상통화를 받지 않아 여느 날처럼 아기에게 "엄마한테 다시 걸어보자"며 영상 통화를 시도했는데, 화면 밖에는 태어나 처음 보는 분께서 카메라 앞에 계셨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뭐라고 말을 잇지 못하고 있으니 상대방이 아마도 잘못 거신 거 같다며 전화를 먼저 끊어주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전화번호를 잘못 눌렀나 싶었는데, "영상통화는 저장된 연락처에서 거는 건데?" 하는 생각에 핸드폰을 자세히 살펴보다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돌아가신 엄마의 번호로 영상통화를 걸었던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사망신고를 했지만 엄마의 카카오 계정은 한동안 살아있었는지 우리 가족의 단톡방에도, 나와의 대화방에도 엄마는 엄마였다. 아빠와 나와 내 동생은 엄마가 있는 단톡방에서 언제나처럼 서로의 근황을 물었고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가 "알 수 없음"으로 바뀌던 날, 엄마가 이 세상에 없음을 새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술을 참 많이도 마셨더랬다.


카카오톡에서 엄마가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바뀌었지만, 내 전화기에서 엄마의 전화번호는 지워지지 않았다. 무언가 연락처를 지우는 것이 내 안에서 엄마의 흔적을 애써서 지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의 연락처는 삭제되지 않았고 나의 12인방에는 아직도 아내와 아빠와 동생, 그리고 엄마가 여전히 지정되어있다. 그래서 때때로 일부러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는 했는데, 당연히 돌아오는 답은 "지금 거신 전화는…"으로 시작하는 자동응답의 목소리였다. 자동응답으로 넘어갈 줄 알면서도 엄마의 연락처로 전화를 거는 그 짓을 나는 2년 가까이 때때로 고의로, 드물게 실수로 해오고 있었다. 언제건 걸 수 있는 번호였으므로, 답은 없지만 대화할 수는 없지만 내가 걸 수 있는 번호였으므로…….


2년 만에 아무도 받지 않던 번호에 누군가 답을 했다는 사실은, 영상통화를 잘못 걸었다는 당황스러움 보다, 이제는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그 무의미한 그리움의 행위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슬픔으로 다가왔다. 만질 수도 없는데, 목소리는 저장된 짧은 영상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데, 언제건 아무 때건 그리울 때면 내 손에서 버튼 하나 눌러볼 수 있던 그 짓을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마치 손톱 옆에 자라는 사마귀 같다. 어느 순간에는 미칠 것 같이 신경이 쓰여 몇 날 며칠을 연속으로 칼로 파내고 파내려 애쓰듯 내 삶의 모든 순간에 신경을 쓰이게 한다. 그러나 결국 그 뿌리는 뽑을 수 없어 사마귀는 다시 자라나고, 어느 순간에는 그 자리에 사마귀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게 된다. 그렇게 잊었나 보다 하면서 살다 어느 날 무심코 손가락을 비비거나, 연필을 잡았을 때 다시 사마귀가 있음을 깨닫고 다시 칼로 파내며 신경을 쓰게 된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시도 빠짐없이 엄마를 그리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가시던 그 해에는 매달이 슬펐다. 이듬해가 되자 슬픔의 빈도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리고 어느 시간이 되자 슬프다는 감정보다는 보고 싶다는 감정이 더 명확해졌고, 그 또한 매일 매시 매분 찾아오는 것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한 동안은 아이에게 영상통화를 시켜줄 때면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

어쩌면 슬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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