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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차 바꾸면 안 될까?

그냥 해보는 상상

우리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유모차를 샀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부족함 없이 준비해놓고 아기를 맞이하자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혹시나 글을 볼지도 모를 예비 아빠를 위해 간단히 설명을 하면, 유모차는 디럭스, 절충형 그리고 휴대용으로 나뉜다. 타고 있는 아기에게 지면의 충격을 제일 덜 느끼게 하기 위해 큰 바퀴와 오토바이에 비견되는 서스펜션을 가진 유모차가 디럭스이고, 휴대용은 말 그대로 휴대하기 편하게 바퀴도 작고 서스펜션도 없거나 약해서 지면의 굴곡과 운전에서의 진동이 느껴지는 유모차이다. 절충형은 말 그대로 그 중간 어디쯤이고. 크기 말 그대로 디럭스는 엄청 크고 휴대용은 휴대하기 편하게 작다. 절충형은 또 말 그대로 그 중간 어디쯤이고.


많은 예비 엄마 아빠가 그렇듯 아기가 진동을 적게 받는다는 이유로 디럭스 유모차를 사게 되었다. 유모차를 처음 받아서 조립하면 생각보다 그 크기에 깜짝 놀란다. 정말 글자 그대로 웅장하다. 아직 아기가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유모차를 받던 날부터 일주일 동안인가 유모차를 신줏단지 모시듯 집안에 고이 모셔두었다. 아직 우리 아기가 타보지도 않았는데 바퀴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결국 공간의 압박에 못 이겨 현관 밖에 주차되게 되었지만.


우리 아기의 첫 유모차. 정말 컸다.


그렇게 유모차가 현관 밖으로 쫓겨난(?) 날, 유모차 접는 연습과 자동차에 넣기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 아기는 소중했으므로 조리원에서 아기를 데리고 올 때 유모차를 못 접어 버벅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판매사원에게 배운 유모차 접는 법은 이미 기억에서 사라졌고, 유튜브를 검색해 가며 완벽하게 유모차를 접고 펼 수 있게 되었을 때 드디어 유모차를 차 트렁크에 넣어보았는데, 아뿔싸 트렁크에 유모차가 다 안 들어가는 것이다!


분명히 세단 트렁크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접힌 유모차는 트렁크 문이 살짝 닫히지 않을 정도의 높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분명 설명서에 나와있는 접었을 때 높이는 트렁크 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안 들어가다니. 어쩔 수 없이 유모차의 프레임은 트렁크에 시트는 조수석에 놓기로 했다.


아기가 어리면 어릴수록 어딜 돌아다니면 짐이 많다. 우리는 예민한 아드님 덕에 어디를 가면 아기의자까지 싣고 다녔었다. 그러니 많은 짐을 싣고 다닐 수 있는 디럭스 유모차는 필수 불가결하게 함께 다녀야 했다. 많은 짐에 더해 트렁크와 조수석을 차지한 유모차는 없으면 불편하고 있으니 너무 자리를 차지하는 계륵과 같은 눈치를 받고 지내야 했다. 처음 온 날엔 먼지 묻을까 집안에서 애지중지 했던 걸 생각하면 눈치를 받는 우리 유모차의 처지라니!


아이가 조금씩 자라자 들고 다니는 짐도 조금씩 줄기 시작했지만, 디럭스 유모차를 향한 눈치 주기는 여전했다. 그러다 우연히 길에서 들린 모 자동차 대리점에서 SUV를 한 번 살펴보았는데, 이건 공간이 디럭스 유모차 두 개는 거뜬해 보였다. (실제로는 하나만 들어간다.) 갑자기 이 모든 원인이 차가 작아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을 해도, 회의를 해도, 커피를 마셔도 유모차가 들어가려면 그 차가 필요할 것 같았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지나가는 척 말을 꺼냈다.


"여보, 유모차가 안 들어가는데 차를 바꾸면 어떨까?"


(잠시의 침묵)


"유모차를 바꾸는 게 맞지 않겠어?"


너무도 당연하고 맞는 말에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기가 돌이 지나자 유모차는 휴대용 유모차로 바꾸었고, 공간은 여유로워졌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가 커서 신생아용 카시트에 앉은 아기가 자꾸 아빠의 운전석을 발로 찬다. 매일매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있으니 하루에 두 번씩은 꼬박꼬박 아이의 발길질을 그대로 느끼는 중인데, 이게 또 차가 작아서인 것 같다. 


기회다.


오늘 저녁에 조용히 저녁을 먹으면서 한 번 물어봐야겠다. 답은 뻔하겠지만, 그냥 물어만 볼 것이다. 정말 그냥 물어만 볼 것이다.


"여보, 차 바꾸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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