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현 May 23. 2023

용접에 관한 잡다한 이야기_2

   전편에 이은 잡다한 이야기 계속합니다.




   1983년 영화 [플래시댄스]는 현재 나이 50세 이하는 본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그 이상 연령대는 안본 사람이 별로 없는 영화다. 고(故) 아이린 카라가 부른 영화의 타이틀곡 What a feeling은 그 당시 몇달간 술집에 가든 다방에 가든 줄창 지겹도록 흘러 나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Tjzj35OMqHE

   그 때는 젊은이들에게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 나스타샤 킨스키 등 브로마이드 여신들의 시대였지만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춤추는 영화가 많이 나왔던 시기이기도 하다. 뮤지컬에 양념으로 곁들인 춤이나 플롯을 전개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춤이 아니라 춤 자체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다. 존 트라볼타가 신들린 디스코를 추었던 [토요일 밤의 열기](1977)부터 [플래시댄스], [페임(Fame)](1980), [풋루즈(footloose](1984), [백야](1985), 그리고 춤 영화의 정점을 찍은 [더티 댄싱](1987)까지, 풍요의 시대면서 불행한 시대인 80년대는 어떤 사람에게는 춤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영화 [플래시댄스](flashdance)가 허접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대박을 쳤던 이유는 오로지 볼거리 때문이었다. 카메라는 시종 관음증에 가깝게 주연배우 제니퍼 빌즈를 따라갔고 그녀가 육감적인 몸매로 뿌려대는 춤은 뭇 청년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수많은 패러디를 낳은 샤워댄스 씬, 그리고 한국에서 처음 선보인 브레이크 댄스는 충격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하기 어렵다. 80년대였잖은가.

   그러나, 내가 이 영화를 기억하는 방법은 조금 다르다. 영화가 개봉된 해, 나는 공고 기계과를 나와 공대 1학년에 다니던 진성 공돌이었고 영화에서 주인공 알렉스(알렉산드라)의 직업이 다름아닌 용접공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영화 스토리 뿐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에도 클리셰가 있어서, 알렉스 역을 맡은 제니퍼 빌즈는 용접 헬밋을 벗은 직후 웨이브 긴 머리를 찰랑 흔들며 고개를 젖힌다. 역동적 몸매로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장면보다 무엇 때문인지 헬밋 벗는 씬이 더 기억에 선명하다.

용접사 알렉스(제니퍼 빌즈 扮)

   

   중량물을 다루어야 하는 플랜트 용접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용접은 여성에게 결코 부적합한 직업이 아니다. 근력보다는 집중력, 지구력, 그리고 참을성이 필요한 기능이라는 점에서 여성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특히 섬세한 신경이 요구되는 특수 정밀용접은 남성보다 유리할 것이라 단언한다. 사실, 상당히 많은 여성 기능인들이 용접 분야에 이미 진출해 있기도 하다. 2011년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를 저지하기 위해 골리앗 크레인 위에 올라가 309일간 농성을 한 김진숙 노동자도 용접공이었다. 조선소 용접은 환경이 열악하기로 첫째 둘째를 다툰다.

   그러고 보니 2005년에 가수 이효리 씨가 출연하여 제대로 말아먹은 SBS 드라마 [세잎클로버]에서도 이효리 씨가 연기한 주인공의 직업이 용접공이었다.

용접사 이효리


   사설은 여기까지. 나는 전기용접의 수많은 바리에이션을 낳은 산소 차폐 기술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해야 한다.


   우선 가장 간단한 방법은 용접 부위를 녹이자마자 덮어버리는 것이다. 용접공이 담요나 뭘로 덮는다는게 아니라 용융 금속을 순식간에 덮을 수 있는 물질을 용접봉과 함께 녹인다. 대표적으로 피복 아크 용접(Shielded Metal Arc Welding; SMAW)이 있다. 기계와 담을 쌓은 인생이라도 가끔 보게 되는 용접, 즉 어린이 놀이터를 보수하거나 아파트 공사장에서 용접 불빛이 비친다면 100% 피복 아크 용접이다. 이것은 용접봉에 피복제(flux)가 발라져 있어 그런 이름으로 칭한다. 피복제, 플럭스, 또는 용제 등으로 불리는 이 물질은 용접봉과 함께 녹으며 용착이 되자마자 용용 금속 위로 떠올라 굳어 슬래그(slag)를 형성한다. 이 슬래그가 녹은 금속을 산소로부터 보호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굳고 난 슬래그는 용접부가 식은 뒤 톡톡 두드려 벗겨내면 된다.

   피복 아크 용접은 휴대가 가능할 정도로 용접기를 작게 만들 수 있고 가정용 전원으로도 용접이 가능하며 용접봉 역시 다루기가 간편하여 가히 전천후 용접이고 만능 용접이라 할 수 있다. 용접 기술학원에서도 가장 먼저 가르치는 기본 중의 기본 용접법이고 용접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도, 예를들어 전기 공사를 하는 전기쟁이들도 이정도 용접 기능은 갖고 있다. 케이블 트레이(cable tray)나 덕트 등을 직접 용접해야 해서 그렇다.

피복아크용접. 홀더에 용접봉을 물리고 작업하고 있다. 용접봉은 금세 짦아지고 새것으로 바꿔 물려야 한다.


   피복 아크 용접봉은 길이가 350~400mm인 그야말로 봉(rod)이다. 심선의 직경은 2~5mm이나 보통은 3.2mm 이하가 쓰이며 피복의 두께를 포함한 외경은 심선 직경의 두배 정도다. 피복제는 깨지기 쉬워 용접봉을 조금 꺾기만 해도 떨어져 나간다. 이 용접봉을 홀더(holder)라 하는, 스프링으로 조여지는 집게 모양의 전극으로 잡고 용접 작업을 한다. 용접봉은 빠르면 1분만에 다 녹아 없어지므로 용접량이 많을 경우 용접봉 바꿔 물리는 성가심을 감수해야 한다.


   피복 아크 용접은 작업이 편리한 반면 작업 능률이 좋을 수 없고 용접 자세도 잘 안나온다. 자세에 따라 용접 품질의 편차도 심하다.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철사처럼 가는 용접봉을 실패(reel)에 둘둘 감은 용접 와이어(welding wire)다.


   용접봉을 봉 형태가 아니라 와이어로 만들면서 전기용접의 능률은 획기적으로 올라간다. 용접 속도에 따라 릴이 풀리면서 와이어가 연속 공급되므로 용접봉은 처음 한번만 홀더에 물리면 장시간 교체할 필요가 없고 홀더에서 용착부까지의 거리가 항상 일정하므로 용접 자세도 안정된다. 아래보기, 수평, 수직, 오버헤드 각 자세의 품질 차이도 크지 않다. 와이어의 직경은 1.2mm가 가장 많이 쓰이는데, 플럭스는 잘 깨지지 않는 재질로 와이어에 얇게 도포되거나 와이어 중심에 아주 가늘게 충진되어 있다. 플럭스가 와이어 심선(core)을 이루고 있다 해서 이 와이어를 쓰는 용접을 플럭스 코어드 아크 용접(Flux Cored Arc Welding; FCAW)이라 한다. 플럭스가 녹아 굳은 슬래그를 두드려 털어내는 것은 피복 아크 용접과 마찬가지다. 참고로 와이어는 플럭스 코어드만 있는게 아니라 플럭스를 넣지 않은 솔리드 와이어도 많이 쓰이는데, 곧 설명할 다른 산소 차폐 방법에는 굳이 플럭스가 필요하지 않다.

FCAW의 개념도와 전형적인 와이어 릴(右)


   플럭스로 덮어 산소를 차폐하는 방법 말고 또 어떤 것이 있을까? 그렇다. 산소를 아얘 없애버리면 된다. 산소가 아닌 기체를 금속이 녹는 부위에 불어 산소를 쫓아버리는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다. 플럭스 용접봉은 플럭스가 용융 금속에 일부 혼입되기도 하고 산소를 완전히 차폐한다고 보기도 힘든 방법인데 반해 산소를 날려버리는게 가능하다면 그보다 확실한 방안도 없을 것이다. 사실은 이 아이디어가 플럭스로 덮는 것보다 먼저 나왔다.


   인류 최초로 전기 아크를 발생시켜 금속을 녹인 사람은 프랑스의 전기 기술자 오귀스트 드 메리탕 남작(1834~1898)로 알려져 있고, 그게 1881년이다. 4년 뒤에는 남작의 제자들이 탄소 전극봉을 사용하는 최초의 전기용접 특허를 출원했다. 거의 동시대인 1890년에 찰스 L. 코핀이라는 기술자가 소모성 금속 전극, 즉 용접봉을 발명했는데, 바로 이분이 불활성 기체 분위기에서 용접을 한다는 개념을 내놓은 것이다. 다만 기체를 저장하고 공급하는 기술이 받쳐주지 않아 당대에는 발명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용제(플럭스) 용접법이 유일한 산소 차폐 방법으로, 용접공이 직접 용접봉에 플럭스를 발라 용접하기도 하다가 1907년에 용접봉과 와이어에 플럭스를 코팅하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1920년 전후, 미국의 Lincoln Electric Company에서 오늘날에도 쓰이는 피복 아크 용접봉이 출시되었다. 코핀의 아이디어가 구현된 것은 그가 컨셉을 제시한지 40년도 더 지난 1930년대, 미국의 용접기 제작사인 호바트 브라더스(Hobart Brothers)에서 헬륨과 아르곤을 차폐가스(shield gas)로 사용하는 용접기를 내놓으면서부터다. 그로부터도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1948년에야 마침내 값비싼 불활성기체 대신 이산화탄소를 쓰는 용접법이 미국의 바텔 연구소(Battelle Memorial Institute)에서 개발되었다.


   조선이나 플랜트 현장에서 주력 용접법으로 자리잡은 용접이 이산화탄소 용접이다. 위 FCAW 그림에서 토치에 이산화탄소 공급 호스를 추가하면 된다. 가스 금속 아크 용접(Gas Metal Arc Welding; GMAW)이 정식 명칭이나 MAG(Metal Active Gas) 용접이라 하기도 한다. MAG는 이산화탄소 사용 기술이 나오기 전 불활성가스를 사용하는 MIG(Metal Inert Gas) 용접이 성행하던 시절, 신기술인 이산화탄소 용접법을 구분하기 위해 생긴 용어다. MIG 용접이 현장에서 거의 추방된 지금에도 용어의 역사에 무지한 채 아직도 MAG라 부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산화탄소를 쓰는 MIG용접'이라 복잡하게 설명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어차피 FCAW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플럭스 코어드 아크 용접이라 고집스럽게 부르기도 한다. 기계 용어가 항상 그렇듯 일관성은 약에 쓰려해도 없다! 나는 노가다들이 쓰는 말로 씨오투용접이 가장 낫겠다는 생각이다. 가장 직관적이지 않은가. CO₂ 용접.

씨오투용접 토치 개념도. 이산화탄소 대신에 아르곤을 공급하면 MIG 용접이다.


   차폐가스로 불활성가스, 대부분 아르곤(Ar) 가스를 사용하는 용접법 중 원조인 MIG 용접은 이산화탄소에 밀려 사실상 사라졌다. 현재 남아있는 불활성가스 용접은 전술했듯이 비소모성 텅스텐 전극을 사용하는 TIG(Tungsten Inert Gas) 용접이 거의 유일하다. 특수강 또는 비철금속 용접, 얇은 부재의 정밀용접으로 TIG를 대신할 수 있는 용접법은 아직까지 없다. 이 글 전편의 첫 사진인, 영화배우 강동원 씨가 하고 있는 용접이 TIG다. 역시 현장 말로는 알곤용접이라 한다.

용접사 강동원


   강동원 씨의 용접은 재작년(2021) 모 유튜브 채널에서 실시간 방송으로 진행되었다. 무슨 테이블을 제작한다고 했는데 영상을 보면 대단히 숙달되었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결코 초짜는 아니다. 초보라면 생방송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강동원 씨는 잘 알려졌듯이 공대 기계공학과를 나온 사람인데, 일반적인 인식이 어떤지 몰라도 기계공학과와 용접 기능은 단 1도 상관 없다. 아마 DIY 취미를 갖다보니 용접까지 하게 된 것 아닌가 한다.

   방송에서 다른건 다 좋은데, 복장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TIG 용접은 피복 아크용접이나 가스 금속 아크용접만큼 불꽃이 강렬하고 불똥이 튀지는 않으나 그래도 아크 용접임에는 분명하다. 최소한 팔토시 정도는 끼고 해야 한다.


   한여름에 용접공의 작업을 보면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난다. 나는 기계 인생의 대부분을 중후장대(重厚長大)한 플랜트에서 보냈기 때문에 야드에서 거대 구조물을 용접하는 필드용접을 익히 봐 왔다. 공장에서 소형 철물을 제작하는 용접은 복장도 어느정도 융통성이 있겠으나 사방 팔방에서 불똥이 튀는 필드 용접은 얄짤없다. 기본 복장은 위 알렉스나 이효리 씨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죽옷과 가죽 장갑이다. 바람은 일체 통하지 않는다. 이 복장을 맨살에 입을 수는 없고 일상 작업복, 또는 최소한 긴팔 티셔츠 위에 껴입는다. 천 재질의 작업복이라면 불똥으로 구멍 나는걸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안전모를 쓰고 안전화를 신고, 목덜미를 보호하기 위해 히잡을 방불케 하는 용접 두건을 쓴다. 방진 마스크를 써야 하고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방독면까지 쓴다. 작업 위치에 따라서는 안전벨트를 맬 수도 있다. 

   이 복장을 기온이 38도가 되고 작업장이 사우나가 되어도 하나도 생략할 수 없다.

용접 군장

   여름이면 관리자들도 비상이 걸린다. 현장 구석구석 냉수기를 설치하고 냉수기 옆에는 소금을 비치한다. 알약 형태의 식염포도당이다. 한시간에 최소한 10분은 선풍기 옆에서 휴식을 취하게 하는데 사실 용접공장의 선풍기에서는 더운 바람이 분다. 하루에 한번 얼음 넉넉히 넣은 수박화채나, 여의치 않으면 쭈쭈바라도 현장으로 배달한다. 에어조끼(air cool vest)도 구매 지급해봤다. 쿨팩 조끼를 써 보니 쿨팩이란게 냉기가 다 소진되면 핫팩으로 바뀌어버려 그보다는 공기를 불어넣는 에어조끼가 나을 것 같았다. 용접복 밑에 받쳐입는 조끼로 호스를 연결하여 공장 압축공기를 불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중후장대한 제품 주위를 몸을 움직이며 용접해야 하는 작업조건에는 그것도 거추장스런 물건이 된다.


   어쨌거나 용접부에 산소를 차폐하는 세번째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그 한 방법은 용접을 하기 전에 처음부터 플럭스를 덮는 것이다. 이것이 서브머지드 아크 용접(Submerged Arc Welding; SAW)이며, 아래 사진이 전형적인 SAW 용접기다.

Submered arc welder

   기본적으로 용접 자체는 와이어을 용가재로 하는 아크용접이다. 사용되는 플럭스 석회석, 산화망간, 규산, 산화바륨 등을 소결 건조한 분말 형태로, 이 가루를 용접부에 수북히 쌓고 그 플럭스 더미 속에서 용접이 이루어진다. 용접 불꽃은 보이지 않고 용접가스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이렇게 플럭스에 잠긴 채로 용접한다 하여 서브머지드 용접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사진에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이는 자동용접을 전제로 한다. 용접기가 레일을 타고 직선 이동하거나 용접기는 가만히 있고 제품이 기계적으로 이송되는 것이다. 서브머지드 용접을 사람 손으로 하는 건 아무리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전혀 가망없는 일이다.

   임무를 다 한 플럭스는 진공으로 빨아들여 회수하며 플럭스 공급관과 용접기, 회수관이 한세트로 움직인다. 위 사진에서 오른쪽 녹색 호스가 플럭스 회수관이다.


   이상, 선배들의 피땀이 어린 용접부 산소 차폐 방안에 대해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용접 품질에 대해 쓰려 했으나.. 글이 상당히 길어졌다. 원래 두편으로 계획한 글이었는데 부득이 다음편으로 넘어가야겠다.


- To be continued -

매거진의 이전글 용접에 관한 잡다한 이야기_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