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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구사냥 Feb 04. 2019

인조잔디의 등장 배경과 영향

야구에 인조잔디가 등장하게 된 배경과 영향에 관한 이야기

1962년 내셔널리그에 뛰어든 휴스턴 콜트.45's는 3년 동안 콜트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치른 후 1965년 세계 최초의 돔구장 애스트로돔으로 홈구장을 옮기고 팀명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자리 잡은 지역 특성을 반영해 ‘애스트로스’로 바꾸며 힘찬 출발을 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애스트로돔에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생했다. 애스트로돔은 잔디가 잘 자라도록 천장에 햇빛이 잘 투과되는 투명 유리판을 설치했는데 이 때문에 눈이 부셔 야수들이 뜬 공을 놓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 것이다. 구단에서 유리판에 흰색 페인트를 칠하는 것으로 이 문제점을 해결하는 듯 했으나 이번에는 햇빛을 받지 못한 잔디가 죽어가는 새로운 문제점이 등장했다. 어쩔 수 없이 선수들은 죽어가는 잔디와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맨땅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고 이듬해 그라운드 전체가 맨땅으로 변할 경우 국제적 망신을 당할 위기에 처한 애스트로스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인조 잔디였다. 당시만 해도 인조 잔디 개발 초창기여서 많은 양의 인조 잔디를 구할 수 없다보니 1966 시즌 전반기에 외야는 초록색 페인트를 칠한 맨땅으로 하고 내야에만 ‘켐그래스(chemgrass)’라 불리는 인조 잔디를 깔아야 했다. 그리고 올스타전 휴식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애스트로스가 원정 경기를 떠난 사이 외야까지 인조 잔디를 설치하며 결국 7월 19일에 애스트로돔의 그라운드는 인조 잔디로 가득 메워졌다. 이후 인조 잔디는 최고 인기 상품으로 떠올랐다. 뛰어난 배수성으로 비가 그치면 곧장 경기를 할 수 있게 해주고 한 번 깔아 놓으면 반영구적인 사용이 가능하며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부분만 교체하면 되므로 관리가 수월해 장기적으로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뚜렸한 장점 때문이었다. 또한 1960년대부터 미식축구와 야구를 겸용할 수 있는 경기장을 신축하는 흐름 속에 미식축구를 펼치기 위한 스탠드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잔디 손상 문제도 인조 잔디 설치로 해결할 수 있었고 여기에 오늘날과 달리 인공적인 것을 현대적이고 아름답게 바라봤던 당시의 분위기도 인조 잔디의 인기에 부채질을 했다.     


인조 잔디의 등장과 확산은 야구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인조 잔디와 콘크리트 바닥 사이에 깔아놓는 두꺼운 고무의 충격 흡수력이 천연 잔디가 심어진 흙에 비해 매우 약하다는 점이 꼽힌다. 이 때문에 천연 잔디 위에서라면 잡혔을 땅볼들이 내야수 옆을 꿰뚫는 안타로 변했고 단타에 그칠만한 짧은 라인 드라이브 타구들은 외야수들 사이를 뚫고 펜스까지 굴러가 장타로 이어졌으며 인조 잔디에 바운드 돼 높이 튀어 오른 타구의 긴 체공시간을 이용해 발 빠른 주자들은 한 베이스를 더 진루했다. 주루선상까지 인조 잔디가 깔린 구장에서는 주자의 스피드가 증진돼 도루 성공 확률은 높아졌으나 빨라진 타구 속도로 단타가 터졌을 때 2루 주자가 득점을 올리기는 힘들어 졌다. 마찰로 인한 화상 위험으로 다이빙캐치는 위험천만한 기술이 됐고, 어깨가 약한 외야수는 홈으로 쇄도하는 주자를 아웃시키려 포수를 향해 노바운드로 느리게 날아가는 송구 대신 빠르고 낮은 각도로 공을 던져 포수 앞에서 바운드되는 송구를 했다. 이외에 인조 잔디 위에서 달릴 때의 높은 충격으로 육체적 피로가 커져 노장 선수들이 경기 후반부 또는 더블헤더의 두 번째 경기에 휴식을 취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인조 잔디가 확산되자 타율과 장타율이 치솟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그 결과는 예상을 밑돌았다. 천연 잔디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빗맞거나 불규칙 바운드를 일으킨 타구가 안타로 둔갑하는 사례가 대폭 줄어들었고 타구 속도가 빨라진 만큼 1루에 송구 할 시간을 벌 수 있어 야수들이 수비 위치를 좀 더 뒤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됐으며 장타를 막기 위해 발 빠른 외야수를 기용하거나 외야수들의 수비 위치가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뛰어난 실용성으로 확산되던 인조 잔디는 1990년대부터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심지어 돔구장이면서도 천연 잔디가 자랄 수 있는 개폐식 돔구장의 등장으로 돔구장에서까지 밀려나는 신세가 됐다. 인조 잔디가 찬밥신세로 전락한 이유는 콘크리트 벽에 묻혀 사는 현대인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는 천연 잔디를 보여주겠다는 생각도 작용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부상 위험이 높고 선수 생명을 단축시키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로 오늘날 인조 잔디가 천연 잔디에 가까워 졌다고 하나 인조 잔디는 결국 콘크리트 바닥 위에 깔아 놓은 녹색 카페트에 불과하다. 그래서 충격 흡수력이 약해 무릎, 발목, 허리 등에 무리를 주고 기온이 높은 날에는 슬라이딩 시 마찰로 화상 위험까지도 여전히 안고 있다. 한때 야구계에서 ‘신의 선물’로 칭송받던 인조 잔디가 ‘혐오의 대상’으로 추락하며 다시 천연잔디의 시대가 돌아왔다. 천연 잔디든 인조 잔디든 그라운드 표면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천연 잔디 시대를 맞아 내야 수비가 약하거나 땅볼 유도 능력이 좋은 투수들이 많은 팀이라면 땅볼 타구를 느리게 만들 목적으로 운동장 관리인에게 내야 잔디를 길게 유지하라고 지시해 뒀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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