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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베네치아에서

82회 베니스영화제

by 영화평론가 이병현
제목은 베네치아, 사진은 로마

여름휴가 겸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겸사겸사 씨네21에 요청해 베니스영화제 프레스 배지를 받아 개막식부터 3~4일간 이런저런 영화도 보고 '어쩔수가없다' 라운드 인터뷰도 하고 왔다. 관련 내용은 현재 씨네21 지면에 실렸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108278


베네치아 같은 곳에 여행 와 영화를 본다는 건 항상 영화를 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를테면 왜 밖에 나가서 산책하는 대신 스크린을 들여다봐야 하는 걸까? 이 아까운 시간에 말이다. 이탈리아나 이탈리아와 가까운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야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겠지만, 13시간의 비행과 4시간의 기차 이동을 거쳐 도착한 나로서는 여기에 상당한 기회비용이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여하간 이런 생각도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 섬에 틀어박혀 영화를 보다보니 곧 사라졌고 몸은 국내 영화제와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매를 하고, 휴대폰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새로고침을 하다가 취소표를 구하고, 영화를 보고, 잠깐 뜨는 시간에 맛대가리 없는 음식을 욱여넣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있는 동안 베네치아는 상당히 궃은 날씨였다. 아침엔 맑다가도 저녁은 흐릿해 누군가는 "여기에 와서 모든 날씨를 다 경험하고 간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서 베네치아를 느긋하게 산책하지 못한 것이 많이 아깝진 않았다. 이미 여행차 한 번 와본 도시이기도 했고.


베니스 영화제 개막식은 화려한 레드카펫 행사와 함께 그 앞에서 진행된 가자 전쟁 관련 항의 시위로 시작됐다. 30일 오후 리도섬에서 팔레스타인 관련 시위를 진행한다는 포스터가 베네치아 본섬에도 유명 관광지 주변 곳곳에 붙어있었고, 관련 시위는 영화제가 본격적으로 붐비기 시작한 토요일부터 격화됐다.


https://www.italianinsider.it/?q=node/13588


나는 마침 리도섬을 영영 떠나는 30일 오후 영화제가 열리는 공간과 거리가 좀 있는 수상버스 정류장에서 시위대와 마주쳤다. 행진 슬로건은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 대량학살을 멈추라"였는데, 전투적으로 구호를 외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경찰은 수천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영화제 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듯했다.


현장엔 '팔레스타인'이란 글자가 새겨진 프라이드 플래그와 '여성의 검은 시위'라는 문구가 새겨진 플래카드 등이 함께 보였다. 찾아보니 이번 시위를 주도한 건 주로 지역 좌파 정치·풀뿌리 단체와 ANPI VENEZIA - 7 순교자 지부(이탈리아 파르티잔 전국 연합)라는 곳으로 보인다. 아래 관련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다.


https://www.instagram.com/venice4palestine/




'어쩔수가없다'가 수상에 실패했는데, 황금사자상을 탄 짐 자무쉬의 작품은 외신에서 꾸준히 높은 평점을 얻었다. 그다지 '이변'은 아닌 셈. '어쩔수가없다' 역시 꾸준히 Top3에는 들었는데 아예 상위 8개 영화로도 거론이 안 됐다는 것 정도가 이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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