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제 Oct 16. 2024

낮의 꿈, 꿈의 낮

그 대륙의 각 나라에는 각자 고유의 마법 능력을 가진 마법사들이 살았는데 이 나라에는 꿈 마법사들이 살았다. 꿈 마법사라는 것은 꿈에 관련된 여러가지 마법 능력을 지닌 마법사들이었다. 예를 들어 한 마법사는 악몽을 없애주는 능력을 지녔고, 어떤 마법사는 기분 좋은 꿈을 꾸게 해주는 능력을 가졌다.


이 마법사들 중에 가장 강력한 마법능력을 지닌 마법사는 한 작은 마을의 외곽에 살았다. 그가 지닌 능력은 눈을 뜬 채로 의뢰자가 원하는 내용의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의식이 깨어있는 채로 그사람이 원하는 일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실제는 아니었다. 다만 그순간만 볼 수 있는 환상 혹은 환각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어떤 이들은 그 환상을 보고 싶어서 이 멀고 먼 구석까지 찾아오곤 했다.


그 마법사를 찾아온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다 원하는 것을 이룰 수는 없었다. 괴팍한 이 마법사는 의뢰자들이 말하는 이야기 중 자기 마음에 드는 이야기만 환상으로 만들어주었다.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는 마법사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어느날 아침, 꿈 마법사의 집에 한 여성이 나타났다. 여성은 굉장히 말랐으며 얼굴이 무표정하고 차가웠다.


"그래, 어떤 걸 낮꿈으로 보고 싶습니까?"


마법사 역시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제가 어릴 때 한 아이가 저에게 자기집에 놀러가자고 말한 적이 있지요. 저는 친구 같은 거 사귀고 싶지 않았기에 그 아이의 말을 거절했어요.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 아이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내게 상냥하게 말을 건넨 유일한 사람더군요.


저는 계속 혼자 살아왔고 이제 병이 깊어져서 얼마 살지 못합니다. 죽기 전에 한번만 더 내게 상냥했던 그아이를 만나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가능하면 그 아이의 집에 놀러가 지금이야말로 같이 놀고 싶습니다.


누군가와 '같이 논다'는게 어떤 건지 저는 잘 모르지만 그건 마법사님이 알아서 만들어주세요. 이게 제가 보고싶은 낮꿈의 내용입니다."


여자의 이야기를 들은 마법사는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 꿈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모습이 보이면 무서워하지 말고 그냥 그속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그러면 만나고 싶었던 것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댓가는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


"낮의 꿈을 보고 나면 무엇을 주면 될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그렇게 하시면 되요."


마법사의 말을 듣고 그녀는 고개를 깊숙이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고 그의 집을 나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얼만큼 걸었을까, 눈앞에 갑자기 노란색의 따듯해 보이는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저절로 손으로 만지고 싶을 만큼 포근해보이는 빛이였다. 그리고 저기서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바로 그렇게도 만나고 싶었던 그 아이였다.


"야, 오늘은 시간 되니? 너 지난번에는 그렇게 쌩하게 거절하더니. 이제 우리집에 놀러갈 수 있어?"


소녀는 그녀가 나이를 많이 먹은 어른이라는 것이 눈에 안 보이는 듯 예전 그대로 친근하게 말을 했다. 그녀는 눈앞의 아이를 감격에 떨며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응, 오늘은 괜찮아. 같이 가자."


아이는 그 말을 듣자 활짝 웃더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여성은 속으로 흠칫 놀랐다. 누군가와 손을 잡고 걸어보는 것은 생전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아이의 손을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아이의 집에 도착해 또 생전 처음으로 인형놀이라는 걸 해봤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인형들은 모두 아주 고왔고 안고 있으면 기분이 간질간질해졌다. 그녀는 상냥한 소녀와 함께 시간이 지나는 줄 모르고 옷을 갈아입히고 무도회에 간 시늉을 하면서 인형놀이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할 때 낮의 꿈이었던 아이는 지는 해와 함께 점점 희미해지더니 스르륵 사라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는 풀밭 위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도 미소가 가득했고 눈에는 조금 눈물이 고여있었다. 행복하면서도 슬펐다. 절대 잊을 수 없을 경험이었고 마법사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마법사가 말한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는 도저히 알수가 없었다.


만약에 마법사가 댓가를 받지 않는 거였다면 다시 돌아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적은 전재산이라도 모두 다 주어야겠다고 여성은 결심했다. 어차피 자기는 앞으로 얼마 살지 못하므로. 그렇지만 이제 전처럼 죽는 게 너무 무섭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항상 텅비고 구멍이 뻥 뚫려있다고 느꼈던 차가웠던 가슴에 이제는 포근한 기억 하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심장은 따뜻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럴 수도 있지 할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