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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 열차

by 조제

갈 곳이 없었다. 돈이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있고 싶었다. 고민하던 그녀는 지하철역으로 가서 뱅글뱅글 순환하는 2호선 열차를 탔다.


맨끝에 남아있던 자리에 앉자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지하철은 어디로 갈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돈도 조금만 내면 되고 게다가 앉아있을 수도 있었다. 도시에는 벤치가 별로 없고 사람들은 앉아있기 위해 카페에 가서 돈을 낸다.


덜컹덜컹 규칙적으로 나오는 소리가 마치 자장가 같아서 그녀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며칠의 불면증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자 열차는 그녀가 탄 역을 지나고 있었다. 벌써 한바퀴를 돈 것이었다. 낮시간이라 사람들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몇몇 사람들이 있어 오랜만에 혼자가 아니었다.


멍하니 앉아서 몇번째인지 모르게 지나는 한강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비치는 강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시간은 어느새 저녁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퇴근시간이 되어 사람들로 꽉찬 지하철도 좋았다.


앉아서 서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다들 스마트폰을 바라봐서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열차는 계속 뱅글뱅글 돌고 아무도 그녀를 주목하지 않았고 말도 걸지 않았지만 이대로 계속 저멀리 어딘가로 가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KTX를 타겠노라고 결심하며 그녀는 다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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