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카메라를 쓰는 이유 : 그 때 그 빛 그대로
2017년 목표 중 하나였다. 필름카메라 장만하기. 고등학생 때도 사진 욕심이 있었던 나는 부모님께 DSLR 카메라를 졸업선물로 받았다. 이것저것 알아보다 수동카메라는 어려울 것 같아 일명 ‘똑딱이’로 불리는 자동카메라를 사기로 했다. 코니카 빅미니, 니콘 AF600 등 사진 색감이나 카메라 본체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몇가지 후보를 생각하고 남대문 시장으로 향했다.
회현역에 위치한 한 카메라 가게에서 내가 찾는 기종을 말했지만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이미 몇몇 연예인들이 써서 유명해지거나 필름카메라 유행이 불면서 알만한 모델들은 가격이 뛰어 부담이 있었다. 결국, 사장님과 몇가지를 놓고 고르다가 나에게 온 아이는 <Olympus AM-100>. 기기 디자인도 다소 투박하고 성능도 보통인 필름카메라였지만, 사장님의 설명을 듣고 카메라를 손에 쥐고 나온 순간 뿌듯한 행복이 부풀어오름을 느꼈다.
그 여름 베트남을 시작으로 가을의 춘천, 겨울의 부산, 올해에는 경주, 제주, 포항, 강릉, 블라디보스톡 등 나의 모든 여행의 순간에 늘 필름카메라가 함께 했다. 촬영의 결과물을 보려면 꽤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 필름 한 롤에 36컷 정도이기 때문에 채우는 시간이 걸리고, 스캔 비용도 하나보다는 여러 롤을 모아서 맡기는게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2019년을 코앞에 둔 지금도 아직 6월 블라디보스톡 여행부터 그 이후의 필름들이 인화를 기다리고 있다.
현상소에 찾아가서 필름을 맡기고 스캔본을 확인하고 또 다시 원본 필름을 찾아오고... 스마트폰으로 찍고 바로 보는 것에 익숙한 요즘 세대에게는 사실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필름카메라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때 그 느낌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에’.
첫 필름 인화 후 베트남 여행 때 찍은 사진과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비교해봤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은 뭐랄까, 선명하고 분명한데 인상은 부족했다. 반면에 필름 사진은 빛에 따라 뭉게지거나 흐린 부분도 있지만 내 눈으로 봤던 느낌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장면이나 풍경을 마주하고, 프레임을 잡고 셔터를 눌렀던 그때의 감상이 떠올라 반가웠다. 사실에 가까운건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겠지만, 그 순간을 바라본 내 시선에 가까운건 필름사진이구나 싶었다.
카메라를 잘 모르고 기계도 어려워하면서 예쁜 사진은 찍고 싶은 나에게 자동 필름카메라는 번거로움은 커녕 ‘쉽게 쓰여진 시’에 가깝다. 똑딱 한번으로 찍은 사진들이 이만큼 아름답게 내 인생의 어느날을 기록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자그마한 렌즈로 들여다보는 나의 리틀포레스트. 조금 시간과 노력이 드는 취미일지 몰라도, 꾸준히 담고 모으고 맡기고 찾으며 가꾸고 싶은 소중한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