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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원 Jun 14. 2019

양양 스테이 비욘드 Stay Beyond

머무름 그 이상의 공간

  

  지난 4월, 거리에 벚꽃이 활짝 피어 팝콘처럼 둥둥 떠있는 날이었다. 갑자기 연차가 생겨 두고두고 가고 싶었던 숙소를 가기 위해 양양으로 떠났다.


  여행을 떠나면 늘 뭔가 보기 위해 돌아다니기 바빴던 나에게 잠시나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그런 시간이었다. 물론 정말 아무것도 안하진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갔으니!  편안하게 쉴 수 있어 너무나 좋았던 스테이 비욘드 그리고 양양의 봄날을 필름 카메라에 담았다.


STAY BEYOND

  양양 터미널에서 택시 타고 15분 정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한적한 시골마을 야트막한 산 중턱에 위치한 숙소는 조용하고 평온했다. 사장님이 직접 건축하신 건물이라고 했다. 건물뿐만 아니라 소품과 조명, 분위기까지 모두 애정 어린 손길이 느껴졌다. TV 대신 음악이 방에 울려 퍼지는 마샬Marshall 스피커가 있었고, 침대와 마주한 창밖으로는 대나무 숲이 보였다. 마음을 쉬기 좋은 조용하고 예쁜 공간이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 푹신한 침대에서 -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 대나무 숲을 바라보며 -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보다 더 좋은 쉼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다음날 아침 간단하지만 든든한 조식을 먹었다. 식빵을 토스트 하고 커피를 따라놓고 기다리면, 사장님이 직접 달걀을 부치고 소시지를 구워주신다. 공유 공간인 카페는 서점처럼 예쁘게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책을 보니 여행과 건축, 커피 같은 것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다 싶었다. 조식을 먹고 동네를 좀 걸어보기로 했다. 마치 명절에 큰집에 내려가 주변에 할 건 없고 심심해서 걸어나 보는 그런, 아무것도 없는 시골길이었다. 어릴 때는 시골이 심심해서 싫었는데. 새소리가 삐약삐약 거리고 어디서 퇴비 냄새도 나는 것 같은 이 시골이, 나를 해칠 것도 내가 해할 것도 없는 이곳이 잠시나마 급한 마음을 식혀주는 듯했다.


스테이비욘드 마당에서 보이는 파란 지붕들
시골 버스정류장의 투박한 귀여움, 그리고 벚꽃

  

  첫 번째 여행의 이유는 스테이 비욘드였지만, 두 번째는 ‘벚꽃을 보기 위해서’였다. 사실 나이가 차면서 매년 벚꽃에 대한 감흥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 해의 벚꽃을 보는 것만큼 완연한 봄을 느끼는 방법이 또 있을까 싶다.

  양양 터미널에서 차로 10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벚꽃 명소 '남대천 생태공원'이 있다. 벚꽃이 줄지은 길도 아름답고 넓은 공원 안에 펼쳐진 갈대밭도 아름다웠다. 4월 초 날씨는 선물 같았다. 밝지만 따갑지 않은 햇볕과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 한낮에는 약간은 더운듯하다가도 문득 바람이 불면 시원한 날씨. 한적한 금요일 오후였다.


남대천생태공원


  만약 이 길이 서울의 벚꽃 명소 여의도 윤중로라면 어땠을까. 사람들로 가득 차서 발 디딜 틈도 없었을 것이고, 벚꽃보다 벚꽃을 찍으려는 핸드폰들을 더 많이 봤을지도 모른다. 양양으로 떠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넓고 긴 도로를 따라 줄지어 만개한 벚꽃을 이렇게나 한적하게 바라볼 수 있다니. 너무 감동적이잖아...

  친구들은 내가 어딜 갈 때마다 '또 어딜 갔느냐', '진짜 잘 돌아다닌다'고 말하고 부모님은 '그만 좀 돌아다녀라', '집에 좀 붙어 있어라'고 하신다. 하지만 어떻게 하리이까. 떠나오니 난생처음 걷는 벚꽃길과 시골길이 나를 반기는 것을. 그래서 내 인생 어느 페이지는 이렇게 생소한 아름다움으로 쓰여지는 것을.

 어디로는 훌쩍 잘 떠나는 나의 실행력은 이렇게 작은 성공들로 지속된다.


벚꽃길 걷기
다음 봄에 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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