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매운 맛' 스탠드업 코미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코미디언: “실례지만, 무슨 암이세요?”
암 환자: “뇌종양의 일종인데 핍지교형 성상세포증(oligodendro astrocytoma)이라고 불러요.”
코미디언: “철자를 쓸 수 있나요?”
암 환자: “못한다고 봐야죠.”
코미디언: “뇌종양에 걸리기 전엔 쓸 수 있었나요?”
암 환자: “.....(웃음)”
앤서니 제셀닉(Anthony Jeselnik)이라는 미국의 코미디언이 암 말기 환자들 앞에서 던진 농담이다. 농담을 들은 뇌종양 환자는 너털웃음을 지었고, 그의 주변에 앉은 다른 암 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코미디언의 짓궂은 농담에 시청자들은 마음을 졸였지만 다행히 환자들의 웃음꽃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 장면은 제셀닉이 진행하는 TV쇼 중 ‘신성한 암소(Sacred Cow)’란 코너의 한 회차에서 나온 장면이다. ‘손댈 수 없거나 비판할 수 없는 신성한 사람 또는 신념’ 등을 의미하는 이름의 뜻답게 그동안 사회에서 신성시해왔던 것들을 부수겠다는 취지의 코너였다. 이 코너에서 제셀닉은 이슬람교도들을 대상으로 테러 농담을 하기도 하고, 비만·거식증 환자 앞에서 몸매를 조롱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이런 주제로 농담하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해외에선 오래 전부터 이런 종류의 코미디 역시 표현의 자유라는 영역으로 용인하고 있다. 대통령은 기본이고, 장애인이나 노약자, 소수인종처럼 취약계층으로 불리는 이들도 농담의 대상이 된다. 대중의 거부감도 적어 현지에서는 작은 라운지바나 펍부터 수만 명이 들어선 경기장까지 매일 무대를 불문하고 스탠드업 코미디쇼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해외의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영상으로 접할 수 있게 되며, 한국에도 서서히 영미문화권의 코미디 문화가 유입되고 있다. 댓글창에 "선 넘은 농담이 불편하다"는 반응과 "불편하면 그냥 지나가시라"는 반응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모습을 보면, 아직 우리나라엔 이런 류의 코미디가 자연스레 뿌리내리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퇴근길 맥주 한 잔하며 코미디언들의 매콤한 농담을 즐기는 풍경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입에 담기도 어려운 ‘빨간 맛’ 풍자와 상스러운 음담패설이 난무하는 무대 역시 불편해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회보다 더 선진적이고 열린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수백, 수천, 때로는 수십 만 개의 눈동자가 꽂힌 무대에 마이크 하나 들고 오르는 건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닐 테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오로지 세치 혀에만 의존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해야 하는 코미디 장르다. 관객들이 웃지 않아도 긴장하는 티를 보여서는 안 된다. 당당한 기세와 말발로 무대를 휘어잡지 않으면,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기억만 남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어떤 농담을 어떤 방식으로 던질 건지 고안하고, 연습한 뒤 무대에 오른다. 하지만 정해진 대본대로 진행할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다. 관객들은 재밌는 농담이 나오면 박수를 보내고, 농담이 별로면 야유를 보낸다. 큰소리로 시비를 걸어오는 관객들도 있다. 노련한 코미디언들은 그런 상황마저 미리 대비해 자연스럽게 맞받아쳐 버린다. 대본 없이 내뱉어야 하는 프리스타일 형식의 스탠드업 코미디쇼도 존재한다.
영미문화권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해온 현대 스탠드업 코미디의 뿌리는 1840년대 미국에서 인종차별적 선입견을 이용해 관객을 웃기려 한 촌극에서 찾을 수 있다. 배우들은 아프리카인, 독일인, 유대인 등 다양한 인종의 모습으로 변장한 뒤 그들의 언행을 따라하는 방식으로 농담을 선보였다고 한다. 영국에서도 같은 시기 연극과 뮤지컬을 주로 선보이던 ‘뮤직홀’을 위주로 스탠드업 코미디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코미디언들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다며 강력한 검열 정책을 펼쳤는데, 공연 내용 중 부적절한 내용은 파란 연필로 밑줄을 그어 보냈다는 점에서 비롯돼 오늘날 외설적인 코미디를 ‘블루 코미디’라고 부른다고 한다.
양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자 위문 공연을 벌이던 군인들이 대거 스탠드업 코미디의 길로 들어섰고,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며 업계는 큰 부흥을 맞는다. 정해진 형식을 거부하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무대마다 다양한 실험이 열렸고, 역동적으로 변화를 거듭해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 오늘날엔 유튜브와 같은 1인 미디어를 토대로 또 한번의 전성기를 맞았다. 유명하지 않았던 코미디언도 열심히 연구한 재밌는 농담 한 방이 SNS로 순식간에 퍼지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르기도 한다.
한국에 영미문화권식 정통 스탠드업 코미디가 들어온 건 1980년대 TV방송이 본격화되면서였다. 군사정권 시절이었던 당시에는 표현의 자유가 크게 제한돼 있었으므로, 정치 풍자나 저질스런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였던 1세대 코미디언들은 탄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스탠드업 코미디가 위축되며 생긴 빈자리에는 일본에서 넘어온 슬랩스틱 류의 상황극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2000년대 ‘개그콘서트’ ‘웃찾사’ 등 코미디 프로그램의 형식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 번 비주류로 밀려난 스탠드업 코미디는 좀처럼 주류로 돌아올 수 없었다. 군사정권이 몰락하며 방송 규제는 모두 사라졌지만, 국민 정서가 정치나 종교, 섹스처럼 민감하고 외설스러운 영역에 대한 농담을 수용할 수 없었던 탓이다. 특히 정치인이나 유명인사가 사석에서 한 농담조차 SNS로 번져 조리돌림 당하는 우리 사회 풍토에서 서구식 농담을 하는 데엔 많은 용기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이런 기류에도 변화가 생겼다. 유튜브가 발전하며 서구권 스탠드업 코미디가 번역돼 국내로 유입됐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수용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명성을 얻어가고 있는 점도 한몫했다. 가령 중남미 지역을 돌며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이는 유튜버 ‘코미꼬(김병선 씨)’는 현지에서도 알아보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유명세를 얻고, 100만 구독자를 앞두고 있다. 이런 기류 속에서 다양한 코미디클럽이 생겨났고, 팬들도 점점 늘고 있다. 지난해 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전국투어가 전석 매진되기에 이르렀다. 국내 스탠드업 코미디의 대부로 불리는 대니 초(Danny Cho)가 그 시작을 끊었다.
“예수님 손에 못자국 있잖아요. 예수님은 세수 못한다, 말 못해요?”
대니 초의 지난해 전국 투어 무대 중 하나를 영화화한 <코리안 드림>에서 나오는 (중간 맛) 농담이다. 역시 스탠드업 코미디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실력을 쌓아서인지 ‘이걸 웃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수위가 센 농담들이 많았다. 정치, 종교, 섹스 등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차마 입에 담기 어려웠던’ 영역들에 대한 농담을 거리낌 없이 뱉었다. 영화관에 관객은 많지 않았지만 폭소가 끊이지 않았다. 영화가 끝났을 때에도 관객들은 다들 여운이 남은 듯 한참 자리를 뜨지 못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 동부에서 태어나 자란 대니 초는 한때 억대 연봉을 주는 컨설팅 회사에서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탠드업 코미디를 접한 뒤 이 일에 전념하기 위해 회사를 나와버렸다. 미국에서 오랜 시간 실력을 갈고 닦은 대니 초는 우연히 한국에서도 언더그라운드 코미디 신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아직 걸음마 단계였던 국내 스탠드업 코미디계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한다. 그의 목표는 “후배들이 스탠드업 코미디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었다.
벌써 그가 한국에 발을 들인지도 7년이 지났다. 대니 초가 꿈꿔 온 한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신은 얼마나 완성됐을까.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코리안 드림>에서의 여운을 떨치지 못한 필자는 그날 밤, 서울 강남구 압구정에서 열린 오픈마이크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충동 관람했다.
진행자를 맡은 코미디언이 능숙하게 분위기를 띄웠지만, 아직 취하지 않은 관객들은 좀처럼 웃지 않았다. 보는 입장에서도 괜히 떨리고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다. 작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스탠드업 코미디쇼에서는 관객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진행자는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웃긴 특징을 찾으며 다음 무대에 설 코미디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재료’를 만들었다. 다들 쑥스러움이 많아 이번엔 꽝인 듯했지만, 늦게 도착해 홀로 무대 앞 테이블에 앉아 박장대소를 터트린 한 관객 덕분에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코미디언들은 그를 ‘머스터드 형(노란 옷을 입고 왔다)’이라고 부르며 무안한 순간마다 SOS를 청했다.
진행자를 포함해 총 8명의 코미디언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10~15분 동안 준비한 농담을 던졌다. 음담패설은 물론, 서거한 대통령 이름도 입에 올랐다. 코미디언들의 직업은 다양했다. 경복궁 경비원부터 초등학교 교사, 장애인도 있었다. “웃지 않으면 장애인을 차별하는 겁니다”라며 무대를 시작한 그는 자신을 희생해가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줬다.
물론 코미디언마다 실력 차이도 있었다. 웃지 않는 관객들에게 좀 웃어달라고, 박수 좀 쳐달라고 애걸하는 코미디언도 있었고, 매끄러운 구성으로 쉴새없이 폭소를 자아내는 코미디언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성공과 실패에 그리 개의치 않은 듯했다. 반응이 없으면 그 농담은 지워버리면 되고, 반응이 좋으면 발전시켜 다음 무대에서도 써먹으면 되고. 그들에게 매 무대는 자유로운 실험장이었다. 그들은 실패를 앞으로 더 재밌는 코미디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었다.
끝날 무렵이 되자 한껏 취한 관객들의 표정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원없이 웃은 탓인지 월요일을 앞두고도 표정은 한결 가벼웠다. 너무 웃어서 아려오는 광대뼈를 문지르는 관객들도 있었다. 코미디언들과 사진을 찍으며 다음엔 친구들, 가족들, 직장 동료들을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하는 관객들. 한국 스탠드업 코미디씬은 입담을 타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장 중이었다. 현재 서울에만 이런 코미디클럽이 다섯 곳 넘게 있으며, 매일 크고 작은 스탠드업 코미디쇼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좋은 코미디는 관객들에게 웃음과 즐거움, 좋은 추억을 선사하지만 모든 코미디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면책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2021년 캐나다에서는 한 코미디언의 농담에서 비롯된 따돌림에 시달리다가 자살까지 시도했던 장애인 가수가 13년 동안 벌인 법정소송 끝에 안타깝게 패소한 일이 있었다.
1996년 12월 캐나다 퀘백시에서 태어난 프랑스계 캐나다인 제러미 가브리엘(Jérémy Gabriel)은 태어날 때부터 청각 장애와 안면부 기형이 나타나는 선천성 질환인 트리처 콜린스 증후군을 진단 받았다. 가브리엘은 이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6살까지 33번의 수술을 받아 청각을 회복한 뒤 음악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고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다. 연습을 거듭한 가브리엘은 2006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베네딕토 16세 당시 교황 앞에서 찬송가(Je Louerai L'Éternel)를 불렀고, 세계적인 가수 셀린 디온을 위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2011년엔 캐나다 최대 이벤트 중 하나인 북미 하키 리그(NHL)에서 캐나다 국가(O Canada)를 불러 유명세를 얻었다.
악몽은 가브리엘이 13살 때 마이크 워드(Mike Ward)라는 코미디언의 눈에 들면서 시작됐다. 워드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이어진 자신의 코미디 투어에서 당시 충분한 유명세를 갖고 있었던 가브리엘의 장애를 주제로 농담을 던졌다. 워드는 “가브리엘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앞세워 꿈을 이뤘는데, 꿈을 다 이루고도 아직 살아있다.” “워터파크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서 익사시키려 했는데 알고 보니 불멸의 존재였다.” “가브리엘의 장애가 무엇인지 궁금해 찾아봤는데 바로 ‘못생긴 것’이었다.”는 등의 농담을 던졌다. 당시 13살이던 가브리엘은 이미 장애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워드의 농담은 그런 상황에 기름을 부었다. 아이들은 워드의 농담을 인용해 가브리엘을 괴롭혔고, 결국 가브리엘은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워드는 2016년 전문법원인 퀘백 인권재판소에서 패소해 약 4만2000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고, 2019년 항소심에서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법원이 문화예술의 내용까지 검열할 순 없지만 코미디언들도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선을 넘었을 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워드 측은 “이번 사안의 쟁점은 표현의 자유이며 어디까지 농담에 해당하는지는 판사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상고했다. 그런데 캐나다 연방최고법원은 기존 판결을 뒤엎고 워드의 손을 들어줬다. 그의 농담이 선을 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워드의 만행은 도덕적으로 지탄 받을 만한 행동이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훼손할 순 없다는 게 판결에 취지였다. 이에 반대한 판사들은 가브리엘이 어린 나이에 경멸적인 모욕을 들어야 했던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대법관 9명 중 5명의 찬성으로 무죄가 확정됐다.
반성은 없었다. 워드는 승소 판결 이후 “우리는 해냈고, 이겼다”라는 트윗을 올렸다. 재판 도중에도 워드는 가브리엘의 가족이 악의를 갖고 법 제도를 남용해 자신을 괴롭혔다고 주장했다. 되려 고개를 숙여야 했던 쪽은 수십 년 동안 장애보다 더 고통스러운 지옥 속에서 살아야 했던 가브리엘이었다. 따돌림으로 자살까지 시도했던 청년은 지난해 5월 소송을 취하하며 말했다. “저는 워드에게 나쁜 감정을 갖고 있지 않고, 코미디언들의 표현의 자유에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동안 제가 겪어온 일에 대해 알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농담은 양날의 검이라고 한다. 듣는 이들에게 재미와 웃음을 선사하지만 그 재미를 극대화하려면 누군가를 희생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칼보다 위험하다는 말이지만, 코미디는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 아래 광범위하게 용인되고 있다. 농담이라는 딱지만 붙인다면 무슨 말이든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장난이라고 생각해야 장난이 된다’는 말은 현실에선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벼들었다간 금방 ‘진지충’이 되고 기피 대상이 돼버린다. 농담을 잘 받아넘기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칭송 받는다. 농담을 수용하는 능력이 사람의 성품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날것의 스탠드업 코미디의 인기가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이 글에서 살펴 보았듯 코미디는 사회 규범과 언어의 틀을 부수며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고 풍부한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순기능을 갖고 있지만 때로는 한 문장의 농담이 누군가의 삶을 지옥 속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코미디의 역사가 짧은 만큼 코미디언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어디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코미디에 어떠한 성역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다른 쪽에서는 상처를 주는 농담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답은 관객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코미디언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관객들의 무덤덤한 반응이며, 따라서 대중이 받아들일 수 없는 농담은 자연히 도태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는 한 사회의 용인성과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다시 돌아와, 압구정의 한 코미디클럽. 서거한 대통령을 주제로 농담을 던졌다가 쌀쌀한 반응을 마주한 코미디언이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런 농담은 하면 안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