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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May 25. 2020

너를 '이해한다'는 말

지하철 옆 자리에 앉은 여자의 핸드폰 벨소리가 조용한 지하철 안의 적막을 깼다. 황급히 진동으로 바꾸는 손이 허둥지둥하다. 조급한 움직임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나마저도 조급해져 버린다. 진동으로 바꾼 핸드폰은 에어팟을 끼고 있는 나의 귀 언저리에도 들릴만큼 계속 징징- 울려댔다. 힐끔 옆 자리의 여자의 표정을 보니 눈썹 끝이 가라앉은, 근심 가득한 산 모양이 되어 있었다. 이내 통화 버튼을 누른 그녀는 스피커 사이로 삐져나오는 남자의 한탄을 무심히 듣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어, 너를.”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 동안 가만히 있던 그녀의 첫 대답. 그 이후에 그녀는 소리치는 전화 건너편 남자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리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내뱉는 것은 이해를 해보려는 노력이 동반되었을 때 가능하다. 상대방이 되어도 보고 상황을 다시 곱씹어도 보고 나의 감정을 돌이켜보기도 하고. 다양한 노력을 하고 나서야 덤덤히 내뱉을 수 있는 말. 이윽고 결론에 다다랐지만 여전히 대립되는 두 사람의 간격을 좁힐 수 없는 이기적인 결론. 내뱉는 사람도, 듣고 있는 사람도, 그 두 사람 모두 상처로 남는 어렵고 또 어려운 말.



4년 전 즈음, 회사 내에서 악명 높은 사람을 내 사수로 둔 적이 있었다. 시한폭탄 같았던 그 사수는 나에게 곧잘 감정을 표출하곤 했었다. 나쁜 감정이든, 좋은 감정이든.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녀의 기분상태를 살피는 일이었다. 기분이 나쁜 날에는 근무시간 내내 옆에 있는 나를 두고 메신저로만 업무지시를 했고, 기분이 좋은 날에는 까르르- 웃으면서 내 어깨 등짝을 퍽퍽 치기도 했다. 혼나야 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불이 꺼진 회의실에 우두커니 서서 이유 모를 일들로 얼굴이 새빨개진 사수의 다그침을 들었다. 그렇게 10개월이란 시간 동안, 그 사람을 이해해보려 했다. 잠에 들기 전까지 지나버린 하루들을 몇 번이고 리와인드(rewind)하며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그녀의 표정과 감정을 들여다보려 했고 다쳐버린 나의 마음들을 수도 없이 쓰다듬었다. 그러는 사이, 내 신경에 이상이 왔고 몇 개월 동안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를 먹었다. 나는, 너무도 작아져 있었다.


그렇게 다음 해를 맞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조직도가 발표되었다. 오랜 시간 끝에 나는 사수와 다른 팀으로 발령받았다. (새로운 조직도가 켜져 있던 그 회의실에서 날 노려보던 그녀를 잊지 못한다.) 나와 멀어진 후 몇 개월 뒤, 그녀를 버티지 못하고 백기를 든 후임들이 연이어 속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결국 인사팀에게 퇴사를 통보받았다는 후문을 듣게 되었다. 




그 사람을 ‘이해한다’는 말이 내 삶과 생각의 모양과 비슷하여 ‘이해한다’는 말이라면 난 여전히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겠다. 나와는 다른 행동과 다른 말을 지닌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었다는 말이 ‘이해한다’는 말이라면, 이제야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당신도 나를 지금이라는 시간에 도달해서 만큼은,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했기를 바란다.


우당탕 싸움이 벌어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전화를 끊고 지하철을 내린 그녀는 곧장 그에게로 달려가 핏대 선 눈으로 아픈 말들을 꾸역꾸역 꺼내고, 듣고 있던 그는 뱉어지는 말들을 막지 않고 흐드러뜨려 놓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수평선을 긋지 못한 삐뚤빼뚤한 그들의 대화가 막바지에 다다라서는 좋은 결론이 났기를 바란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부딪히면서도 때로는 ‘완벽하게 조화롭다’ 여겨지는 것은 우리 각자가 다른 모양의 아름다운 세계를 가지고 있어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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