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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Jun 29. 2020

무얼 두고 온 걸까


“허- 자켓 두고 왔대요. 어떡하지?”


여행지를 둘러보다 우연찮게 들른 빈티지샵에서 호기롭게 산 일본 출신 민트색 봄 자켓. 기차 시간에 늦을까 부랴부랴 나와버린 숙소에서 친구에게 연락을 해주신 덕에 서울에 도착하기 전 미리 절망할 수 있었다. 혹여나 구겨질까 옷걸이에 예쁘게 걸어놓고는. 숙소의 벽지와 너무 잘 어울린 탓이었나. 누군가에게 버려져 나에게 온 자켓이 또 주인을 잃은 채 우두커니 걸려있었겠지.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탓에, 집을 떠났다 돌아오는 날에는 ‘이번엔 어떤 걸 놓고 왔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짐을 풀곤 했었는데 이번 여행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울로 향하는 기차는 마음이 향하는 반대방향으로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꼼꼼하다는 소리는 포기한 지 오래다. 덜렁댄다는 말을 덜 들으려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는 말을 부정할 수 없듯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수많은 나의 우산은 의도치 않게 다양한 곳에 기부되었고 선물 받았던 지갑들은 그 누구도 끝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생각할 것들이 생기면 정신을 챙기다 정작 물건을 잃어버리고, 꼭 챙겨야겠다 생각했던 물건을 챙기려다 나머지 물건들을 잃어버리고. 이렇게 잃어버린 물건이 많아, 잃어버릴 수도 있는 나의 소유품들에게 애착을 갖는 것이 쉽지 않아 졌다. 사라져 버린 것들이 떠오르는 일상에 너그러워지지 못하고 헛헛해진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나는 물건을 두고 온 걸까, 무심결에 내 마음의 조각도 함께 두고 온 걸까.


그리고 그렇게 수차례 겪은 애도의 과정은 잃어버린 것들을 대하는 방법을 깨우쳐주었다. 잃어버린 물건이 매개체가 되어, 잊고 살았던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고 사랑했던 사람과 보냈던 일상들이 잠시 머물게 한다. 지금은 나에게 사라져 버린 물건들이 그 순간들을 더 아득히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 더 사무치게 추억할 수 있고 그리워할 수 있다. 




존재했으나 기억되지 못한 순간들이 불현듯 찾아오기에, 잃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해버리기로 했다. 잃어버린 우산 덕인지 집 오는 길에 비를 쫄딱 맞아버린 오늘도, 10년 전 뉴욕 길 한복판을 혼자 걷다 소나기를 흠뻑 맞아버린 그 날을 기억하게 했으니까. 이미 젖어버린 몸뚱이로 뛰어봤자 뭐하누- 그저 걷자는 생각으로 얇게 웃어버렸던, 비로 젖은 눈으로 보았던, 그 브루클린 다리가 오늘에서야 선명해지는 걸 보면 아마도 ‘잃어버린 51번째 우산’이었더라도 의미 있어진 거라고. 







p.s.

민트색 자켓을 택배로 받았던 날, 두고 온 마음도 함께 받았다.

이 마음 덕에 경주는 그-저 따뜻하게 기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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