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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Aug 17. 2020

추억이 건네는 위로

논두렁에 발이 빠질까 달빛에 기대어 조심조심 걸었다. 자박자박 땅을 밟는 우리의 발소리가 시원한 밤바람 사이로 들려왔다. 걷는 걸음에 맞추어 종아리에는 진흙이 척척 달라붙었다. 논을 가로지르는 내내 귀뚜라미들은 밤을 맞이하며 큰 소리로 울어댔다. 앞에 걷던 친구는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서 껄껄 웃어댔다.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묻혀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친구의 웃음소리에 그저 따라 웃었다. 우리의 밤이 즐거워서 함께 웃어버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이 눈에 와 박혔다. 그 날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기억에 ‘그리움’을 더하면 추억이라는 단어로 새로이 눈을 뜬다. 그리고 그 추억들은 이따금 일상 속에 찾아와 현재의 나를 과거의 나로 데려다 놓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그 여름밤도 그랬다. 가로등이 팟-하고 모두 꺼져버린 어두컴컴한 귀갓길 하늘의 별들은 논두렁을 건너며 하염없이 즐거워했던 그 여름밤을, 잊은 줄 알았던 그 날의 밤을 기억하게 했다. 그 여름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던 건, 미래의 내가 마주할 밤들에 그 날을 그리워하며 심심찮은 위로를 건네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추억이 건네는 위로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 눈물을 꾹 참아볼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하고 무미건조했던 하루에 옅은 미소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도 나는 추억을 만든다. 문득 찾아올 추억들 속 찬란히 빛나는 나의 모습을 미래의 내가 한껏 안아줄 모습을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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