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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모엄빠 Jan 19. 2023

아들의 코딱지는
어떻게 그림책이 되었나


7살 아들과 엄마가 그림책 완성하기 


언어발달지연이었던 아들의 성장기 


평범한 하루 중 그림책 소재 발견하기 


아들과 엄마의 대화가 창의력에 미치는 영향 



 아들은 늦게 말이 트였다. 발달의 골든타임이라는 36개월까지 할 수 있는 단어가 10개가 안 되었다. 걱정되어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언어발달지연이라고 했다. 이유를 알 수 없고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모르는 불명확한 시기. 아이 손을 잡고 병원과 언어치료, 감통치료 센터로 이리저리 종종 걸음을 쳤다. 억울했다. ‘왜 우리 애만 말을 안 할까?’ ‘왜 하필 나일까?’ 센터를 돌아다니며 ‘엄마가 다 해줘서 그래요’ ‘엄마가 애를 이렇게 만든 거야’ ‘다 엄마 탓이야’ 하는 말을 들으면 가슴에 화살이 꽂히는 기분이었다.  

 그 시절, 독실하지 않는 내가 교회에 가서 ‘아이가 말을 하게 해주세요’라고 무릎꿇고 울면서 기도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대로였고 나의 절망도 깊어져 갈 무렵 ‘아이가 말을 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그만뒀다. 대신 ‘아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이 괜찮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자 아주 희미한 평온과 희망이 찾아왔다. 그 손톱에 낀 희망에 기대서 모든 불안과 싸워댔다. 

 다행히 아이는 자기의 속도가 있었는지 42개월이 지나자 “아녀히 계떼요”를 시작으로 말문이 트였다. 그리곤 조잘조잘 자기 생각과 상상을 얘기해주었다. 오래 기다렸던 만큼 달콤했다. 가장 놀랍고 찬란한 것은 아이의 동심이었다.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세상을 향한 호기심으로 모든 걸 탐구하고 흥미로워 하는 그 모습. 그걸 지켜보는 행운을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나를 엄마로, 어른으로 만들어 준 아들. 

 남편과 부부싸움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들은 우리에게 “엄마 아빠가 싸우면 내가 지렁이가 돼”라고 했다. “네가 지렁이가 되면 우리는 뭐가 돼?”라고 묻자 “엄마 아빠는 덩치 큰 어린이고 나는 지렁이야. 둘이 싸우다가 날 밟을까봐 오들오들 떨고 있어“ 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덩치 큰 어린이 두 명은 이제 절대 싸우기 않기로 평화협정을 맺었다. 귀한 아들을, 이 소중한 생명을 지렁이로 만들 수 없지 않은가 


 아들이 커서 7살이 되자 우리는 자주 캠핑을 다녔다. 아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활동량을 집 안에만 가둬둘 수 없어서 부지런히 다녔다. 여수로 캠핑을 갔을 때 카시트에만 앉아있기 심심했던 아들은 코딱지를 파기 시작했다. 열심히 자신의 신체를 탐구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말렸다. “코딱지 그만 파, 손톱에 끓여서 상처가 나면 어떡해“ 라고 하자 아들은 “엄마 왜 코딱지가 생기는지 알아? 먼지가 들어오면 그게 점액이랑 만나서 말라서 생기는 거야. 그러니까 이 코딱지는 먼지야. 먼지를 떼는 거지. 그래서 난 지금 바빠” 

 신체의 원리를 정확히 알고 있다니... 조잘조잘 잘 얘기하는 거에 놀랐고 아들이 엄청 큰 코딱지를 건져내서 자랑하는 거에 놀랐다. 캠핑장까지 가야 하는 거리가 많이 남았기에 우리는 코딱지를 주제로 많은 얘기를 했다. 

“네 코 안에 코딱지를 만드는 곳이 있나봐” “응. 코딱지 공장이야 거기서 만들어” 

“아~ 그래서 새로운 엄청 큰 왕왕 코딱지를 새로 출시했구나. 

그럼 그 코딱지 공장에 이런 플랭카드가 걸렸을 거야 (<축> 왕왕 대왕 코딱지 출시 <하>)”

“응 새로운 직원이 만든 거지. 그 직원은 포기를 몰라. 이렇게 커질 때까지 계속 굴려”

“집념이 강한 직원이군” “집념이 뭐야?” “끈기가 있다는 거지” “끈기는 뭐야?” 

“이 코딱지에 붙은 콧물에 끈적 끈적한 게 있는데 이게 길~ 잖아. 이게 끊기지 않고 길다고 해서 사람은 뭐든지 끊기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걸 계속해야 한다는 뭐 그런 의미에서 끈기라고 하는 건데...”

내가 열변을 토하고 있자 남편이 거기까지만 하라고 날 말렸다. 

 그때 이후로 우리는 아들의 코딱지 공장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자주 말했다. 아이의 흥미를 끌고 어휘력을 늘게 하는데 아주 좋은 주제가 되어줬다. 그러자 아들의 자존감도 높아졌다. 왜 아니겠는가. 자신의 코 안에서 공장을 돌리는 공장주인데 말이다. 파도 파도 나오는 산유국의 기분이 이러할까? 원자재를 보유한 아들은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뭔가 다르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A4용지 몇 장을 붙여 달라고 했다. 그리곤 혼자서 꿍탕 꿍탕 뭘 만들어왔다. 아주 그럴 듯한 스토리였다. 하지만 아들의 참을성과 끈기는 아주 소박하여서 새 직원이 등장할 때까지만 그렸다. 그 뒷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하여 더 그려달라고 재촉하였지만 아들은 아주 게으른 작가였다. 유일한 독자의 간청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 작은 이야기를 가지고라도 나홀로 출판을 하고 싶었다. 아들의 이야기로 책을 만들고 싶어서 이리저리 알아봤다. 독립출판을 한 작가와 커피타임을 갖고 집에 와서 아들에게 이 책을 마무리하면 ‘돈을 번다. 포켓몬 카드를 살 수 있다’고 하자 아들은 ‘그런 말을 진즉에 하지’라면서 그 날 모두 완성했다.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들어진 그림책이었다. 완성도 했겠다 이제 출판만 하면 되는데 나홀로 출판이라는 게 그래도 돈이 꽤 들더라. ‘쉬운 일이 없군 돈도 없는데...’라고 하던 찰나에 2022년 어린이날 100주년 그림책 공모전을 보게 됐다. 상금은 없지만 상장과 책이 나온다니 도전해 봤다. 

 놀랍게도 아들의 그림책이 입선했다. 아주 잘 그린 그림도 아니었고 색칠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림책의 정석과는 거리가 먼 자유분방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그냥 넘기지 않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교육청이 대단했다. 획일화된 교육이라고 눈을 흘겼건만 아들의 작품이 상을 받자 창의성을 존중하는 깨어있는 교육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상날. 다른 사람들은 꽃다발을 주고받으며 사진을 찍었다. 꽃다발은 시들기에 더 오래남고 강력한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 이름이 호명되고 무대에 올라가 교육감에게 상을 받는 그 순간, 내가 등장하며 플랭카드를 펼쳐들었다. 사람들이 빵하고 웃었다. 내가 직접 제작한 플랭카드라 꽃다발보다 싸더라. 그 후 우리 손에는 <코딱지 공장> 그림책이 들려 있었다. 이렇게 아들과 나의 합작 그림책 원정기가 끝이 났다. 

 아들의 그림책에 감명을 받은 나도 몇 년간 미적대던 동화를 완성했다. 각자는 게을렀지만 서로에게 자극제가 되어 완성할 수 있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이렇게 하면 차근히 재밌게 만들어갈 수 있다. ‘코딱지 공장’은 누구에게나 있고 ‘끈기’도 누구에게나 있으니, 그걸 이제 발견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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