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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Kim Dec 23. 2023

교사들에게 소풍이 공포로 다가오는 이유

 2007년 이전의 학교와 그 이후의 학교는 참 많이 다르다. 겉에서 보이는 학교 건물은 그때나 지금이나 네모난 교실에 네모난 창문이니 별 차이가 없어 보이겠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같은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바뀌었다. 컴퓨터, 스마트 TV, 냉난방 겸용 에어컨, 공기 청정기, 공기 순환기, 와이파이 라우터, 학생 개별 태블릿 PC가 보급되는 등의 외형적 변화도 많았으나, 이보다 더 체감이 큰 것은 학교 문화의 변화이다.   

 

 변화의 과정을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2006년 12월 30일에 교육감 직선제로 법이 바뀌면서 그 이후 각 시도의 교육감을 선거를 통해 선출하기 시작했고, 시민의 투표로 선출된 교육감들은 당연하게도 학생과 학부모의 입맛에 맞는 정책들을 하나 둘 펼치기 시작했으며, 학생 인권조례가 탄생하고, 학교운영위원회가 학교의 중핵적인 의사결정 기구가 되었고, 학교운영위원회를 구성할 때 교원보다 학부모의 비율이 무조건 높도록 정하여 학부모의 뜻을 거스르는 어떠한 의사결정도 어렵게 제도화하였다. 혁신학교가 곳곳에 생겨나더니 대한민국을 뒤덮었고, 혁신학교는 그 이름에 걸맞게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것이 철학이 되었으며, 학생과 학부모의 입맛에 맞는 학교로 변모하는 것은 시대의 큰 흐름이 되었다. 이토록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학교로의 전환이 십 수년동안 지속되는 동안 기성세대가 경험한 학교 문화는 한 톨도 남아나지 않고 신천지가 열렸다. 당신이 2007년 이전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그 학교는 대한민국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가 행복한 학교가 되었나?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변화하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이거늘, 교육계의 변화는 기존 교육에 대한 '반'만 십수 년 지속한 결과 균형을 상실했다. 그로 인해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그 가운데 교사들은 행복하지 않음의 상태를 넘어 불행하고, 불안하며, 때로는 공포에 질린다.


 지난여름 광화문 아스팔트 위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내야 했던 교사들은 2024년을 맞이하며 조금은 달라진 학교를 기대하는 마음과 함께 기대함이 꺾이며 더 큰 절망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의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문제 행동을 하면 어쩌나. 다치는 아이가 있으면 어쩌나. 따돌리는 아이가 있으면, 치고받고 싸우는 아이가 있으면, 욕을 하는 아이가 있으면, 카톡이나 SNS에서 싸우는 아이가 있으면,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면, 도난 사건이 발생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많은 가능성을 염두하고, 또 이것이 민원으로 이어지거나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생각이 이어진다면 공포에 휩싸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지나친 억측이나 과민 반응이라 하기에 그 사례가 너무나 많다. 쉬쉬해서 잘 알려지지 않을 뿐 이 학교 저 학교에서 악성 민원과 소송에 시달리다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휴직을 하거나, 버티다 버티다 결국 사직하는 교사들이 많고 많다.  


 그리고 그 수많은 걱정들이 종합 패키지가 되어 공포가 되어버린 것이 교외 체험학습, 기성세대에게 익숙한 명칭으로는 소풍이다. 교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도 수많은 문제와 갈등이 발생하는데 교실을 벗어나 한껏 들뜬 아이들 수십 명을 데리고 체험학습을 가는 교사의 마음이 가벼울 수 없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네 명이서 식당을 휘저으며 난동을 부리는 아이 한 명을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는 것이 요즈음 세태다. 한 학급에 금쪽이라 불리는 아이들이 한두 명은 늘 섞여 있게 마련이고, 금쪽이들의 문제 행동을 따라 하는 아이들도 금방 생겨난다. (아이들에게 좋은 습관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교사의 부단한 노력과 인내심으로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한데 반해 욕이나 나쁜 행동은 금방 배우는 게 아이들이다.) 거기에 금쪽이와 친구들이 만들어내는 무질서함에 불만을 토로하는 아이들과 그 불만을 전해 듣다 분노가 쌓여 폭파하기 직전인 학부모들도 생겨난다. 교사는 아무런 권한이 없으면서 동시에 아동학대 신고에 무방비한 자신의 지시를 잘 따라줘서 학생들이 별 탈 없이 체험학습을 마치고 복귀하기를 기도할 뿐 달리 뾰족한 수도 없다. 게다가 교사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제도와 무한 책임을 묻는 법과 판례는 교사의 숨통을 더욱 조인다.


 학교는 교육기관이기에 가르칠 권리 이외에는 그 어떤 권한도 없다. 가르칠 권리는 동시에 가르쳐야 할 책무이기도 하다. 체험학습에서의 안전과 관련하여서도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안전교육뿐이며, 그 안전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 교사는 무한 책임을 져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들은 체험학습 장소를 미리 다녀와 위험 요소를 미리 파악해서 사전 안전 교육을 한다. 그리고 위험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수시로 지도한다. 교사로서 할 수 있고, 또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니 된 걸까? 지금까지의 판례를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모두 선생님의 지도를 잘 따라서 질서를 잘 지키며 안전하게 체험학습을 다녀오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체험학습 도중 물가가 보이자 고등학생 아이들이 우발적으로 뛰어들었다. 날씨가 더워서 그랬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 명의 아이가 물에 빠져 죽었다. 어떤 중학교에서는 수학여행 전용열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열려 있었던 승강대의 트랩도어를 열고 승강대 벽을 잡고 바람을 쐬던 중 객차 출입문에서 실족하여 열차 밖으로 떨어져 사망하였다. 놀이공원에서 레일바이크를 타던 중 앞에서 달리던 바이크가 내리막길에서 갑자기 멈춰 서자 뒤따라오던 바이크에 타고 있던 A학생이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충돌을 피하지 못해 탈선했다. A학생은 이 사고로 레일 위로 떨어졌고 그 뒤에서 따라오던 바이크 역시 제대로 멈추지 못해 A학생과 부딪쳐 A학생은 부상을 입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사고는 일어난다. 그리고 그 책임은 교사가 져야 한다.

 세 경우 모두 사전답사를 통해 안전점검도 하고 안전교육도 했으나 충분히 예측 가능한 사고임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더운 날씨에 아이들이 우발적으로 물에 뛰어드는 행동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니 안전요원을 미리 배치하고, 구조 로프등을 미리 준비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상 안전교육을 강화했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란다. 열차 트랩도어를 열고 승강대 벽을 잡고 바람을 쐬는 행동은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예상가능한 행동이니 이를 예상하여 지도하지 않은 책임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레일바이크가 서로 충돌하여 탈선할 가능성을 미리 예상하여 지도하지 않은 책임이 있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함께 탑승하여 지도 감독하지 않았으니 더욱 큰 책임이 있단다. 수많은 아이들을 통솔하는 교사가 분신술을 쓰지 않고 어떻게 함께 탑승하여 지도 감독하라는 말인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지금까지는 중고등학교에서의 사례였고, 이보다 어린 초등학생들의 안전사고 양상은 더욱 예측 불가하다. 버스에서 하차한 후 버스 뒤쪽으로 가서 후진하던 버스에 치이는가 하면, 놀이공원에서 판매하는 뽁뽁이 화살의 고무패킹 부분을 떼어내고, 끝을 뾰족하게 만들어 친구에게 쏘아 실명에 이른 경우도 있었다. 두 사건 모두 사접답사와 안전교육을 실시했으나 교사의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런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초등학생 아이들은 버스에서 토를 하는 경우도 빈번하고, 실수로 오줌을 싸는 경우도 종종 있다. 드물지만 똥을 지리는 경우도 있다. 나무, 바위, 벽, 구조물 등 도전 본능을 자극하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기어올라가서 낙상사고가 발생하는가 하면, 돌멩이나 나무 가지 등 눈에 보이는 모든 무엇이든 던져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로 인해 피해를 입는 억울한 아이들이 있다. 빨리 가라고 앞 친구를 밀어서 다치게 하기도 하고, 앞도 보지 않고 뛰어다니다 충돌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지시를 따르지 않고 무단횡단을 하다 교통사고가 나기도 하고, 자기 오른 발에 왼 발이 걸려 넘어져 턱이 깨지거나 이빨이 부러지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정말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믿기 어렵겠지만 이러한 일들은 직접 경험하거나 주변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황당한 것은 황당하기까지 한 사고들을 교사가 모두 예측해서 막아야 하고, 실패한 경우 교사에게 무한 책임을 묻는 우리나라의 법이다.


 기성세대에게는 기분 좋은 추억의 한 조각인 소풍이 오늘날 교사들에게 공포가 된 이유가 이 글을 읽는 동안 조금은 이해가 되었기를 바란다. 그냥 귀찮고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생존이 걸려있는 절박한 문제이기에 교외 체험학습을 멈추자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교육부는 팔짱을 낀 채 체험학습이 학교 자율이라며 가든 말든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고, 학교장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며 설문 결과를 따른다 하고, 공부 안 하고 맨날 체험학습만 다니면 좋겠다는 아이들이니 당연히 체험학습 가는 것에 몰표를 던지고,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험학습이니 더 자주 가라고 목소리를 높이니, 힘없는 교사들은 민원과 각종 사건 사고의 공포를 감내하며 체험학습을 간다.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 외에 교외 체험학습을 가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에도.


 사실 교외 체험학습을 가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법적 근거는 당연히 없고, 교육과정에도 체험학습에 대한 내용은 한 글자도 없다. 오히려 체험학습이 근거가 없다 보니 체험학습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부터 곤란을 겪는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체험학습 장소인 에버랜드를 예로 들어 보자면, 우선 어떻게든 교육과정과 연관 지어야 하기에 과학 2차시, 국어 2차시, 체육 1차시 이런 식으로 관련 교과를 설정하고, 과학 식물 단원에서 배운 여러 가지 꽃과 나무들을 포시즌 가든에서 관찰하고, 동물 단원에서 배운 여러 동물들을 관찰하기 위해 주토피아를 방문하며, 여러 가지 놀이 기구를 타며 물체의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체험한다 설명한다. 친구들과 배려의 의사소통(국어)을 하며 안전하게 놀이 기구를 이용하고 안전하게 이동(체육)한다 설명한다. 억지스럽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와 같이 너무나 억지스러워 기괴하기까지 한 계획서가 탄생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체험학습이 교육과정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근거가 없는 것을 학생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어떻게든 실행하려다 보니 변칙적인 방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제도적 보완을 하기 전까지 체험학습을 보류하자는 주장이지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험학습을 제도적으로 보완한 이후에 얼마든지 가고, 제도적 보완을 위해 잠시 보류자는 말이다. 체험을 통한 학습이 필요하다면 학교에서 체험형 학습을 하자는 말이다. 올해 우리 반에서 했던 체험활동만 열거해 봐도 포도잼 만들기 체험, 김장 체험, 서당 체험, 다도 체험, 애니메이션 제작 체험, 도자기 만들기 체험, 진로 체험 등의 활동을 했다. 뿐만 아니라 마술 공연팀, 연극 극단, 코미디언팀을 섭외해 시청각실에서 관람했으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의 저자를 섭외해 작가와의 만남도 했다.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서 체험형 활동으로 진행한 것까지 더하면 일 년 내도록 체험학습만 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학교 밖으로 가지 않고서도 체험을 통한 학습의 기회는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평생 가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제도적으로 보완하기 전까지는 학교에서 체험을 통한 학습을 진행하자는 말이다.


 선진국의 경우 체험학습을 갈 때 기본적으로 각 반에 두세 명씩 인력이 지원되며, 혼잡한 장소인 경우에는 학생 2~3인당 한 명씩 케어할 인력이 지원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100퍼센트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책임을 교사에게 묻는 우리나라의 상식과 달리 교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책임을 원칙적으로 묻지 않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그리고 이를 법과 제도가 보장한다. 그러니 아이가 다치면 '선생님은 뭐 하고 있었나요?'로 시작되어 '안전교육 하셨나요?' '이런 사고가 날줄 예상 못하셨나요?' '예상 못했다면 불찰이고, 예상했음에도 조치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 아닌가요?'로 이어지는 우리나의 그간의 관행은 만국공통의 진리가 아니다. 적어도 선진국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음은 확실하다.


 우리나라처럼 수학여행을 가는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수학여행을 외국으로 가기도 하는데 만약 학생들이 규정을 위반하면 거기가 어디든 당장 부모가 데리러 와야 한다. 예를 들어 독일 학생이 프랑스 파리로 수학여행을 갔다고 치자. 그중 한 명이 술을 마시는 등의 문제행동을 하다 걸린 경우, 교사는 즉각 부모에게 연락한다. 학생 나이가 어린 경우에는 당장 부모가 파리로 데리러 와야 하고, 만약 부모의 동의 하에 학생만 혼자 기차에 태워 보내는 경우에는 당연히 부모에게 교통비를 청구한다.


 이러한 제도적 보완이 있다면 학생들을 통솔하기 훨씬 수월할 것이고, 문제행동은 현격이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법적으로도 보완되어 사실상 예측불가한 사고에 대한 책임도 교사에게 묻는 올가미까지 풀어준다면 그까짓 체험학습 일 년에 열두 번도 가겠다.


두세 달 크루즈 타고 체험학습 가고 싶다는 우리 반 금쪽이의 소원도 얼마든지,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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