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보적이면서도 보수적이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우연찮게도 나의 가까운 친적들은 모두 공무원이었다. 모두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 퇴직한다는 것을 정론으로 여겼다.
그 밑에서 수십 년을 자란 나도 사실은 이직이나 퇴사를 고려하지 않고 살았다. 엿같지만 그래도 최악 중에서는 최고인 내 회사... 이것이 애증이다 하는 마음으로 다녔는데 사실은 버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
많은 것이 없었다. 나는 능력이 없다. 이력서에 쓸 말이 없다. 살이 쪄서 맞는 면접정장이 없다. 열정도 없다.
많은 고민은 있었다. 어디를 터전으로 잡을 것인지. 소비패턴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다른 직장에 가서도 못 버티면 어떻게 할지
주변 반응은 반반이었다. 사실 나는 크게 눈에 벗어나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팀장님은 잘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하셨다. 하지만 크게 말리지는 않으셨다.
내가 우울증에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은 관리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알려진 비밀이었다.
이러다가 사내 경조사 게시판에 본인상 글이 올라올 것 만 같다는 말 까지는 하지 않았다.
가족과 연인은 그렇게 까지 해서 일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조금 더 고민해 보는 건 어떠냐고 했다. 취업시장의 냉정함을 알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대감집 노비의 하청노비니까. 여러 가지 따지면 최악의 회사는 아니니까.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어갔을 때 망설임은 더 커졌다. 내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까? 아직 최종 퇴사 면접을 한 건 아니니까 지금이라도 물릴까? 근데 그래봤자 2주 후에 다시 일하기 싫을 텐데.
그래서 나는 퇴사에 도전한다. 평생직장이고 싶었던 곳을 떠나보려고 한다. 후회할 것이다. 내성격상. 그래도 가보련다. 내일 있을 퇴사면접에 도전하러 회사에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