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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로윈 Jan 23. 2023

에든버러에서 새해를 맞는 방법

실패한 여행기 모음집 - 스코틀랜드

내가 느꼈던 에든버러는 마법 같은 도시였고, 연말의 에든버러에서는 그 마법과 같음이 더 배가되었다. 비록 연말이 아닌 때에 이 도시를 방문해 본 적은 없지만, 연말에만 볼 수 있는 것들이 풍경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에든버러에서 볼 수 있는 회색 돌벽이 품고 있는 중세풍의 황량함은 겨울, 그러니까 연말 즈음에 더 진가를 발휘한다. 칼튼 힐(Carton Hill)에서 볼 수 있는 도시의 전경과 아서스 시트(Arthur's Seat)에서의 회색 덤불들도 겨울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해리포터 속 다이애건 앨리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빅토리아 거리도, 해리포터 영화가 그런 것처럼, 겨울과 특히 더 잘 어우러진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에든버러의 연말이 특별한 이유는 크리스마스 마켓과 호그마니(Hogmanay) 덕분일 것이다. 에든버러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만큼 그 화려함과 댜양함을 자랑한다.


에든버러의 크리스마스 마켓


그리고 호그마니는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 첫날을 축복하는 스코틀랜드의 전통 축제라는 것을 스코틀랜드 여행을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해가 바뀌는 순간에는 별 감흥 없이 집에서 시상식이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던 내가 처음으로 그 순간을 해외에서 보내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벅차서 특별한 방법으로 그 순간을 축복해 보고자 알차게 계획을 세웠다. 먼저, 나의 계획에 동참해 준, 교환학생 때 가장 친한 친구였던 클레어를 만났다. 클레어는 스코틀랜드 사람이었지만 에든버러 출신이 아니고 더 북쪽의 하이랜드(Highland) 출신이다. 그래서 클레어 역시 에든버러의 호그마니에 참석하는 것은 나름대로 특별한 일이라고 했다.


스트릿 파티 입장을 위한 종이 팔찌

2019년의 에든버러 호그마니(Edinburgh's Howmanay 2019-20)에는 스트릿 파티, 그러니까 에든버러 도시의 길거리에서 파티가 열렸다. 고풍스러운 에든버러가 저녁에는 시끌벅적한 클럽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도시 곳곳에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서 사전에 입장권을 구매한 사람들만 파티 구역에 입장할 수 있었다. 몇 달 전에 미리 입장권을 예약해 둔 나와 클레어도 손목에 종이 팔찌를 차고 파티 존으로 입장했다. 거리 곳곳에 스크린과 무대가 설치되어, DJ가 파티 음악을 크게 틀고 맞은편에 늘어선 가판대에서는 술과 간단한 음식을 팔았다. 다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매 시간마다 하늘에는 불꽃이 터지는데 형형색색의 스포트라이트는 온 거리를 구석구석 비추어 눈을 한 곳에 둘 수가 없었다. 음악과 술에 취한 사람들은 클럽으로 변한 거리를 두 발로 방방 뛰다가 낯선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춰댔다. 그 순간만큼은 취기와 객기를 빌린 나도 유교 사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위아더월드'라는 마음가짐으로 사람들과 어울려댔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파티가 시작한 것은 오후 7시경이었다는 점, 그리고 바리케이드 밖으로 나가면, 즉 파티 존을 벗어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점이었다. 완급 조절이란 것을 까먹은 채 미친 당나귀처럼 놀다가 다리가 너무 아파서 시간을 보니 9시 5분 전. 즉, 호그마니의 하이라이트인 카운트다운, 즉 올해가 지나가기까지 아직 세 시간도 더 남아있었다는 얘기다. 간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조차 30분이 넘게 걸릴 정도로 붐비는 거리에 앉아서 쉴 곳은 없었고, 바리케이드 바깥으로 나가자니 카운트다운과 에든버러의 불꽃놀이를 가장 명당에서 볼 수 있는 파티 존을 벗어나기가 너무 아까웠다. 그때부터는 파티의 의미가 바뀌었다. 이제부터는 놀고 싶어 노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는 놀아야 했다. 멈출 수 없다. 멈추면 사람들에게 떠밀려 바깥으로 나가게 되고, 주저앉으면 밟혀 죽게 생겼다.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스트릿 파티

다행인 점은 이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이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나는 이미 9시쯤부터 다리가 터질 것 같은데 분위기를 깨는 것 같아서 말은 하지 못하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신나는 척을 하고 있던 차였다. 너희 바이킹의 후예들은 정녕 지치지 않고 5시간 동안 뛰어놀 수 있는 것인가, 평소에 운동을 좀 해 둘걸, 나의 체력은 여기까지인 건가 생각하던 차에, 클레어가 말했다. “좀 쉬고 싶지 않아?” 그렇다. 나뿐만 아니라 클레어도 역시 쉬지 않고 뛰어노는 건 힘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고 깨달았다. 이 사람들도 역시 마냥 신난 것만은 않다는 것을. 그들도 사람인지라 다들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DJ와 음악과 불빛과 술 때문에 멈추지 못하고 죽기 살기로 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힘들게 놀고 있는 광기의 축제 속에서 11시쯤까지 어떻게든 버틴 것 같다. 그쯤 되어서는 나도 클레어도 도저히 못 참겠다며 혀를 내두르며 빈 공간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사람의 발길이 일시적으로 뜸한 거리 한구석을 찾아내기에 이르렀고 우리는 그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몇십 분 동안 가만히 쉬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두 부류였다. 다리가 아파서 쓰러질 것 같이 보이는 사람들과, 술에 취해서 고통을 잊은 사람들.     




어느덧 12시가 다 되어갔다.     


더 붐빌 수 없을 것 같던 거리가 카운트다운을 할 때가 되어가니 더욱더 붐비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의에 의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사람들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스코틀랜드 사람, 한국 사람, 네덜란드 사람, 브라질 사람 등등 세계 곳곳의 사람들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 5, 4, 3, 2, 1, 해피뉴이어!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곧이어 불꽃놀이도 끝나며 축제가 막을 내렸다. 지쳐 있던 사람들은 좀비처럼 잘 곳으로 돌아갔다. 대중교통? 그런 건 이미 끊긴 지 오래였다. 거리가 통제되어 택시도 없었다. 나는 터질 것 같은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거의 기다시피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핸드폰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나는 이날 4만 걸음 정도를 걸었다고 한다.




새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어봤자 실망만 커질 것이라는 냉소적인 기우와 함께 해가 바뀌는 시점에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으며 살아왔었던, 그래서 보신각의 종이며 정동진의 일출이며 본 적이 없었던 내가, 특별한 장소에서 새해를 맞은 것은 아마 태어나서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는 깨달았다. 역시 나랑은 잘 맞지는 않는구나. 화려해 보이는 축제 분위기의 이면에는 감각이 없는 다리와, 그 다리를 이끌고 대중교통 없이 걸어가야만 했던 숙소까지의 3km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본가에서 핸드폰을 보면서 과일을 먹다가, TV에 나오고 있던 가요대전 같은 프로그램에서 5, 4, 3, 2, 1! 이라고 숫자를 세며 폭죽을 터트리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해가 바뀌었음을 자각했다. 2023년, 호그마니에서 방방 뛰다 힘들어하던 그때부터 약 3년이 지난 셈이다.


유례없는 팬데믹 사태로 약 3년 동안 하늘길이 막혔고 여행이라는 단어는 왠지 아련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기억은 언제나 미화되기 마련, 3년 전의 피로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즐길걸, 하는 생각부터 든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아니면 언젠가 그때와 같은 축제에 다시 참여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보다도 더 체력이 약해져 있겠지만) 4만 걸음이 뭐람, 10만 걸음을 하룻밤에 걸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기꺼이 이 한 몸 불사르며 축제를 즐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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