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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Nov 16. 2023

바지의 역사가 투표권 투쟁과 비슷하다고?

30대 중반 직장인, 패션스터디 모임을 시작하다


패션에 대해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잠시, 갑자기 이런저런 일로 바빠졌다. 밀라논나님의 조언대로 패션의 역사가 담긴 <현대패션과 서양복식문화사>를 사놨는데 읽지 못해서 찝찝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패션 스터디 광고를 맞닥뜨렸다. 패션 관련 계정을 이것저것 팔로잉하고 유튜브도 여럿 보다 보니 광고 타깃이 됐나 보다.


물고기가 제대로 걸려들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우선 스스로를 허슬 장소에 물리적으로 데려다 놓는 것은 내가 좋아하고 나에게 맞는 동기부여 방식이다. 데려다 놓으면 뭐든 한다. 스터디 시작일은 당장 내일모레부터였다. 남들은 너무 빨라서 포기했을 수 있지만 간헐적 중독자인 나는 오히려 좋았다. 관심사가 언제 바뀔지 몰라 쇠뿔도 단김에 빼야 했다,,ㅎ 회비도 4회 10만 원. 여타 모임에 비해 저렴했다. 그래서 바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곧장 입금을 했다.


입금하고 다음 날이자 모임 하루 전날, 스터디 단톡방이 개설됐다. 패션 스터디에서는 대체 어떤 주제를 다룰지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모임장님은 스터디 주제와 준비사항을 공지해 주셨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주제가 나왔다. 옷을 매치하는 방법이나 근본 브랜드 정도를 예상했는데 ‘옷이란 무엇인가?’가 첫 번째 주제였다. 참고할 수 있는 영상 링크도 함께 있었다. ‘EBS 다큐프라임 -인간과 패션, 나는 입는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핵심 내용이 담긴 영상 세 개와 옷의 기원에 대한 영상이었다. 이 영상들을 보고 사전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글폼에 작성해야 했다. 수능 공부를 하듯 답변해야 할 문제를 먼저 읽고 영상을 보기로 했다.   


- 자신이 생각하는 '옷'을 정의해 주세요.
- 옷의 기원에 대한 설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옷의 기원은?
- 옷은 크게 기능적 역할과 심미적 역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 자신이 생각하는 심미적 또는 기능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브랜드 하나를 택하고 그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생각해보지 못했던, 그리고 막상 답하자니 꽤나 어려운 질문들이었다. 패션업계 종사자가 아니고서야 어느 누가 이런 생각을 해보기나 했을까. 새로운 질문에 흥미로웠다. 그리고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영상에서는 생전 생각해보지 않았던 세상이 펼쳐졌다. 특히 패션의 역사가 흥미로웠다. 영상의 시작은 프랑스혁명이었다. 옷 입을 자유는 200년 전, 1793년 프랑스혁명 4년 후에나 생겼다. 혁명 전에는 신분에 따라 옷을 입었다. 여기까지는 아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왕족과 귀족은 반바지밖에 못 입었고 서민은 긴바지만 입을 수 있었다는 디테일이 신기했다. 서민은 한두 벌의 옷으로 1년을 났고 그 한두 벌마저도 헌 옷이었다고 한다. 옷을 만들고 염색하는 기술이 비쌌기 때문이다. 옷은 귀중품이었다. 또 ‘사치금지법’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귀족 가문의 여성을 제외하고, 금, 은, 고급 진주를 의복에 장식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옷은 기득권이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패션은 생각보다 정치적, 사회적 산물이었다.


어느 누구든 남녀 시민 누구에게나 특정한 방식으로 옷 입기를 강요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할 시에는 혐의자로 간주하여 다룰 것이며, 또한 공공의 안녕을 방해한 자로 기소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성에 적절한 의복을 착용하거나 몸단장을 하는 데 자유롭다.
(프랑스혁명)


프랑스혁명을 통해 반바지든 긴바지든 선택해서 입을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 그러나 여기서 여성은 제외됐다. 혁명 이후에도 여성의 옷은 혁명 전만큼 화려하고 복잡했다. 활동에 불편한 옷을 입는 것이 상류층에 속한 여성임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코르셋은 19세기 중반까지도 널리 이용된 의복이었다. 여성은 바지도 입지 못했다. 프랑스혁명 이후에도 바지를 입으려면 경찰청장의 허가증이 있어야 했다. 이 허가증은 아프거나 특별한 경우를 위한 예외적인 절차였다.


■ 바지금지법   
- 남성의 옷을 입기 원하는 모든 여성은 허가를 받아야 한다.
- 이 조항을 따르지 않으면 경찰에게 체포되고 갇힐 것이다.


옷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나서야 대중화됐다. 기계가 옷감을 만들어내면서 옷값이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도 옷다운 옷을 입을 수 있는 토대였다. 그러나 여성은 여기서도 제외됐다. 여성이 원하는 대로 옷 입게 된 것은 50년밖에 되지 않았다. 투표권이 생긴 것과 비슷했다. 충격이었다. 그마저도 세계대전 때 많은 남성들이 전장에 나가 여자들이 대신 사회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점차 허용된 것이었다. 여성들은 옷에 속박됐던 것이 디폴트였고 점차 벗어났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남성의 속도와는 달랐다는 것이 특히 내가 몰랐던 역사였다.


이는 여성들의 치열한 노력 덕분이었다. 여성 인권을 신장시키고 양성평등을 이루는 데 있어 20세기 디자이너들은 지대한 역할을 했다. 대표적으로 코코 샤넬은 1910년대 여성복계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녀의 디자인 덕에 발목까지 왔던 치렁치렁한 치마는 무릎길이로 올라갔고 재킷과 치마는 적당히 몸에 맞을 수 있었다. 그제야 코르셋과 버팀대가 필요 없어지고 복잡한 장식이 사라졌다. 소재, 모자, 꽉 조이는 속옷, 복잡한 옷, 비싼 가격 등 여성을 불편하게 하는 옷에서 해방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입생로랑이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바지를 고급여성복으로 끌어들였고 1966년 여성용 바지정장이 생기는 등 복장에 있어서 비로소 여성이 남성과 동등해지기 시작했다. 옷 입을 자유 또한 인류가 정치적 자유를 얻어내는 것만큼 치열했다.


기술의 발전은 패션의 대중화를 가속화시켰다. 재봉틀 발명과 산업화로 기성복의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옷값이 저렴해졌다. 고급 맞춤복을 입을 수 없었던 서민층도 다양하게 옷을 입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는 또 하나의 새로운 국면인 SPA브랜드로 발전했다. SPA브랜드로 패션의 수준이 높아질 수 있었다. 원래는 새로운 유행의 디자인 옷은 하이패션, 명품에서만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SPA브랜드들 덕분에 ‘패션’이라고 칭할 수 있는 옷들을 일반 서민들도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소재로 구할 수 있게 됐다. 물론 SPA브랜드가 가져온 fast fashion과 환경문제도 있지만 그들이 일반 대중들에게 쥐어준 패션이라는 도구가 삶을 다채롭게 해 준 것은 분명했다.





패션을 거시적이고 통시적인 관점에서 둘러본 것은 흥미로웠다.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평민이, 나아가 여성이 참정권, 투표권을 얻기 위해 수많은 피를 흘린 것을 강조해서 배웠다. 자유를 얻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음을 수많은 시험들로 체화했는데 옷 입을 자유도 그만큼 힘들게 얻어낸 자유라는 생각이 드니 옷이 소중해졌다. 좀 더 정성 들여 입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내 자유를 더 누리면서 주체적으로 입고 싶었다. 주위에 흔히 널려있는 ‘옷’은 누군가에게는 정말 누려보고 싶었던 사치였고 귀중품이었는데 나는 운 좋게 풍족한 시대에 태어나 소중한 줄 모르고 그저 버거워만 하고 있었다. 손에 쥔 고마움을 느끼는 데에는 한없이 부족한 인간이었다.


한편으로는 모든 자유가 진정으로 행복한 것인가 싶기도 했다.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자유가 없던 인간에게 자유라는 도구가 주어지니 어떻게 휘두를지 모르고 답답해한 결과였다. 마치 평생 회사에서 9 to 6로 묶여 있었던 직장인이 퇴직을 하고 온전히 주어진 시간을 무엇을 하면서 보낼지 막막한 것과 같았다. 내 눈앞에 놓인 수많은 옷들 중에서 어떤 옷들을 골라내야 할지 그 기준을 온전히 스스로 만들어 내야 했다. 자유의 무게였다.


이런 내용들이 신기해서 점심시간에 회사 동료들에게도 이야기하고 엄마와 동생에게도 신나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이들의 반응은 ‘정말 인생피곤하게 산다,,,’였다. 진짜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냥 어울리는 거 대충 입으면 안 되냐는 식이었다. 그 말을 듣는 나도 나 자신이 안타까웠다. '왜 나는 스스로 인생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인가!' 그냥 대충 걸쳐 입고 살면 편할 텐데 굳이 나와 맞는 옷을 찾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나는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 고통을 자처하는 이유는 성격상 속속들이 알고 선택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근본까지 파헤친 뒤 나와 잘 맞는 최적의 선택을 하고 싶어 하는 성향이다. 이것이 나만의 관점이다. 중요한 것은 내게 이런 고민은 인생을 피곤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흥미롭게 만드는 고민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과정이 괴로울 수는 있어도 결국 최적의 선택을 마치고 나면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은 만족감이 더 크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니 앞으로 패션스터디에서 나눌 이야기들이 기대됐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소중히 누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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