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드 Dec 07. 2023

패션계 반골 장 투이투, 디자이너아니고 공산주의자

주또반,, 알고 보니 아페쎄도 반골 ㅠ 이쯤 되면 진짜 반골 콜렉터?ㄷㄷ



 “저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고 싶진 않아요. 제가 인류애가 없다는 말이 아니고요, 모든 사람이 저를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는 의미입니다. 예컨대 저는 패션쇼장을 찾았을 때 파파라치가 저를 못 알아보고 지나치는 일이 행복하거든요. 그들이 저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알아채길 바라지 않으니까요. 대신 저는 저와 같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일을 즐깁니다. 이 세상에 저와 같은 취향을 지닌 사람은 제법 많이 존재하고, 그건 아페쎄의 제품이 1년에 100만 개 가량 팔린다는 사실이 방증합니다.”

- 아페쎄(A.P.C.)창업자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장 투이투(Jean Touitou)


가운데가 아페쎄 창업자 장 투이투



패션 브랜드 아페쎄(A.P.C.)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알고나면 의아하다. 젊고 트렌디한 디자이너가 아니고 배가 봉긋 나온 70대 노인이기 때문이다. 창업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장 투이투는(Jean Touitou) 1987년 아페쎄를 창업한 후 지금까지 쭉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다. 튀니지계 유대인인 그는 1951년 생, 올해 72세다.


그의 삶은 흥미롭다. 가장 놀라운 점은 그가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점이다. 유명 패션 학교를 나온 패션 디자이너들이 장악한 파리 패션계에서 이례적인 인물이다. 그는 디자인이 아닌 인문학 백그라운드를 가졌다.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역사학과 지리학을 공부했다.


그는 원래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 선생님 때문이었다. 당시 선생님은 수업준비를 전혀 해 오지 않았다고 한다. 장은 이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본인이 수업 전 미리 철저히 예습해 선생님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했다. 그렇게 선생님을 골탕 먹이기 위해 역사공부를 했고 잘하게 됐다. 보통 성격은 아닌 것 같다. 나 역시 고등학생 때 수학선생님을 좋아해서 질문하면서 싸우려고 수학공부를 했던 경험이 있다,,(?) 그 해 네 번의 수학시험에서 모두 100점을 받았다.



대학에 가서도 반골 기질은 계속됐다. 프랑스에서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던 사람인 장 투이투는 역으로 공산주의에 심취했다.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었고 돈을 버는 것을 나쁜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혁명가적 사상을 가지고 있던 그는 혁명의 대명사 체게바라의 고향 남미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방식도 그를 따랐다. 체게바라처럼 1년 동안 자동차 여행을 했다고 한다. 이 여행을 하며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패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행에 돌아와서는 일본 브랜드인 겐조에 지원했다. 무턱대고 지원했지만 하늘이 도왔다. 운이 좋게도 당시 겐조의 경영자는 혁신을 위해 독특한 인재를 찾고 있었다고 한다. 체게바라를 외치는 독특한 유대인인 장이 뽑힐 수 있던 이유다. 겐조에 입사해서는 창고정리와 회계업무를 했다. 이후 아그네스B라는 브랜드로 옮겼고 그곳에서 생산조직을 담당한다. 그리고 이후 1987년 아페쎄를 창업했다. 패션 브랜드의 평범한 시작과는 거리가 있다.




디자이너가 되려면 천재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새벽 3시에 영감을 받는 그런 부류의 사람 말이죠. 하지만 겐조와 아그네스를 거치며 생각이 변했습니다. 디자인을 배우지 않아도 좋은 아이디어와 올바른 생산 방법을 알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작도 일반적이지 않았지만 브랜드를 운영하는 방식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우선 디자이너가 아니기에 옷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당시 패션브랜드는 단 한 명의 천재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도제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장 투이투는 ‘취향을 타지 않는 옷이 곧 개성이 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자신의 철학을 실현시켜 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선별해 디자인과 브랜딩을 진행했다.


요즘이야 아크네 스튜디오나 베트멍 같이 개인이 아닌, 집단에 '디자인 크레디트'를 돌리는 경우가 어색하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방식이었다고 한다. 아페쎄는 그 옛날부터, 하나의 크리에이티브한 집단으로서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했다. 팀워크를 통해 서로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 만드는 절충안과 같다. 아페쎄 옷이 균형과 포용력을 갖는 것도 이러한 시스템 덕분이었다. 아페쎄는 스튜디오 형태로 진행한 1세대 브랜드였다.



-A.P.C. 3부에 계속,,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eibringen/108

https://brunch.co.kr/@beibringen/110





매거진의 이전글 바지의 역사가 투표권 투쟁과 비슷하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