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힘든 모든 이들에게
내가 글에 별로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책과 글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닌데, 글을 보면 직업인으로서의 내가 떠올라 기분이 안 좋아졌던 것 같다.
그렇게 그 긴 세월 동안 유구하게 가꿔온 나만의 취미이자 특기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글을 못(안) 쓰게 되자, 나의 현재를 기록할만한 수단도 동시에 증발해버렸다.
나의 기분과 생각, 느낌을 어디엔가 남겨두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크나큰 상실이었다.
웃기는 건, 그런 이유로 또 다른 펜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림일기를 남겨보겠다 결심했다.
첫째로, 상상도 못 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태초에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아닌 나의 입장으로서는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소요해야 했다. 고작 다섯 컷을 그리는 데 말이다.
둘째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글로 이야기할 때는 미주알고주알 부연설명을 할 수 있다만, 그림일기는 애초에 지면이 정해져 있다.
첫째,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잡념과 걱정이 많은 나로서는 안성맞춤 힐링타임이 다. 글을 쓸 때는 아무래도 이어질 문장을 생각해야 하다 보니 생각이 끊이질 않는데, 그림은 스케치 구상만 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그저 단순노동이다.
둘째, SNS 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첫 번째 이유와 일맥상통하는데, 그림 그리는 데 정성과 시간을 쏟다 보니 자연스럽게 SNS와 거리감이 생겼다. SNS로 인해 우울감을 잦게 느끼는 나에게는 좋은 현상이다.
그림일기를 그리면서, '미술치료'라는 것이 왜 있는지 온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이전에는 글이 나를 살렸다면, 요즘에는 그림이 나를 숨 쉬게 하는 듯하다.
무슨 이유로든 마음이 힘든 모든 이들에게 그림 그리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일단 나부터, 그림으로 마음을 돌볼 요량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