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잘한다.
나는 엄마 이야기를 말로도, 글로도 하지 않는다.
웃기는 말이지만 이 두 가지 모두 사실이다.
전에 엄마가 해줬던 웃기는 말들, 나를 놀렸던 기억들, 엄마랑 해봤던 이것저것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는 마치 엄마가 지금도 내 옆에 살고 있는 것처럼 잘도 말한다. 해사한 얼굴로 재잘재잘 슬픔이란 하나도 묻지 않은 채로.
정말 슬프지 않기 때문에 잘도 떠든다.
그러나 엄마를 보낸 내 맘 속 드러 앉은 원망, 슬픔, 그때의 기억, 두려움, 사실은 엄마를 향해 뻗어져 있는 내 모든 이야기와 감정에 대해서는 중심 근처도 가지 못하고 있다.
10년째 주변만 맴돌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렇다.
과연 나는 이 글을 끝마칠 수 있을 것인지. 방점 대신 말줄임표와 물음표만이 손가락 끝에 머물러 있다.
엄마가 가고, 1~2년 동안은 엄마 꿈을 자주 꿨다.
나는 기억력이 꽤 좋은 편인데, 그때 슬펐는지, 아무렇지 않았는지 왜 기억이 나지 않을까.
이후 몇 년을 엄마가 꿈에도, 의식 중에도 나올 새 없이 살았다.
작년 초, 엄마가 오래간만에 꿈에 나왔다. 그날 나는 너무 많이 울어서 흐트러진 정신으로 밤을 지새웠고, 몸도 힘들었다.
그리고 며칠 전, 1년 만에 다시 엄마가 꿈에 나왔다.
엄마가 아프지 않았던 때처럼, 너무나 평범한 얼굴로, 평범한 시간에, 평범한 곳에 있었다.
슬픔도 반가움도 없이 늘 함께 했다는 듯이 대화를 나누다가, 엄마가 별안간 영정사진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영정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잖아. 이제 슬슬 준비해야겠어. 미리 찍어 놔야지."
꿈에서 나는 아이처럼 울었다. 그곳에서도 나는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무언가 아닌 척 숨기고 있다가, 결국 터져버려서 메울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린 것 같았다.
사력을 다해, 온몸을 떨며 울다가 잠에서 깼다.
무의식이 견뎌내지 못한 것 같았다.
피부에 닿는 축축한 베갯잇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베개도, 잠옷의 깃도, 눈물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엄마는 생명의 기운이 아스라이 꺼져 갈 때까지 영정사진을 찍지 않았다.
엄마의 의사라기보다는 기적처럼 엄마가 일어나길 바라는 가족들의 바람 때문이었다.
엄마가 가버린 그날 아침에도 나는 몰랐다. 아빠도, 동생도. 우리는 정말 바보들처럼.
몰랐다. 일반 병동에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겼음에도. 그곳에서 보호자로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수업으로 들었으면서도, 우리는 왜 정말 몰랐을까.
준비된 영정 사진이 없어서, 외가 친척들과 함께 찍은 대가족 사진 속 엄마의 얼굴로 영정 사진으로 만들어야 했다. 엄마가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을 때라서 예쁜 사진이 아니었는데.
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너무나 몰랐던 우리 탓이었다.
영정 사진을 마음속에 담아 둔 적은 없었다. 그 일을 두고두고 떠올리며 미안함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왜,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찾아와 영정 사진을 떠올리는지.
나는 또 모르겠다.
엄마에게 다시는 편지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편지를 쓰지 않는다.
그냥 이런 일이 있었다고,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고 싶었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사실은 가끔이라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아니, 아니다. 그냥 아무 일도 없이 내 일상이 흔들리지 않고 평온하게 잘 살아내었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도 그 중심부에 가는 것이 꺼려지고, 너무 힘이 든다.
씩씩하게 살고 싶어서 힘이 든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고백은 여기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