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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illness Jan 20. 2021

비 내리는 카트만두는 몹시나 춥습니다

겨울을 사는 사람이라서요.

당신을 다시 만난 곳은 타멜거리 귀퉁이에 있는 작은 카페였습니다. 표면에 기름기가 생길 정도로 바싹 볶은 커피는 진하다기보다는 검댕을 갈아 마시는 것처럼 쓰기만 했죠. 나는 커피잔을 손에 들고 인상을 한껏 찌푸린 채 퍼부어 내리는 폭우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적당한 것 하나 없이 넘치고 또 넘치는 그곳의 끈적한 공기를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어요. 그냥 커피가 조금 썼고, 빗소리가 조금 따가웠을 뿐이었어요. 나쁘진 않고 적당히 괜찮았던 거.


한동안 앉아서 이어폰을 낄까 말까,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가끔가다 들려오는 당신의 말소리를 놓치고 싶진 않았으니까요. 한 손에 이어폰을 든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당신이 또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꼬았던 다리를 슬그머니 풀며 무심한 척 귀 기울였어요. 아무 관심 없는 것처럼, 한 시간 째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것처럼.


"혼자라서 마냥 좋았던 건 아니에요. 매일 저녁, 텅 빈 방에 불을 켤 때마다 얼마나 쓸쓸하던지요. 혼자 먹는 밥은 말할 것도 없고요. 따지고 보면 아팠던 날이 더 많았죠. 어제도 그랬고, 오늘은 좀 덜한데 내일은 다시 그럴 거고요."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팠던, 그리고 앞으로도 아플 모든 날들을 머릿속에 그렸다가 다시 지금으로 회귀하기를 반복. 무덤덤한 당신의 말을 들으면서 가슴 한편이 화끈하게 데어버린 까닭은 나도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당신이 말한 오늘이 무던한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나는 다시 시선을 밖으로 돌린 채, 오늘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수많은 오늘과 그런 오늘 중에 당신과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을 말이죠. 당신이 오늘처럼 평생 덜 아플 수는 없을까, 앞으로 덜 아플 오늘의 한가운데에는 오늘처럼 내가 있을 수는 없을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궁상을 떠는 나를, 얼굴이 자꾸만 붉어지는 나를 뒤로하고 당신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도 쓸쓸했던 매 순간 사람이 고프진 않았어요. 물론 외로웠죠. 하지만 어느 한순간, 외롭고 쓸쓸했던 순간들이 모여 나를 채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뜬금없죠? 내가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건, 이렇게 자유롭게 생각하고 숨 쉴 수 있었던 건 모두 혼자였기 때문이었어요. 거래를 한 거였. 매일 쓸쓸한 대신 내가 되기로. 어두운 행복을 갖기로."


아, 당신은 그렇게 살았군요. 희미한 촛불을 조명 삼아, 겨우내 겨우 싹튼 새싹을 위로 삼아 춥고 컴컴한 길을 걸었군요. 당신이나 나나 마냥 밝고 따뜻한 사람은 될 수 없었네요. 12월의 북극을 사는 사람이라, 햇빛의 온기도 빛도 없는 극을 달리는 사람이라서.


당신은 한참이나 뜸을 들이더니 내게 물었습니다. 나는 어땠냐고, 혼자 있는 삶이 많이 아프지는 않았냐고 말이죠. 나는 쉽사리 입을 뗄 수 없었습니다. 생각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다는 바보 같은 대답만 내뱉을 뿐이었죠. 팔꿈치에 부딪히는 비바람이 너무 찼던 거로 해둬야겠어요. 그래서 입이 꽁꽁 얼어버린 거로.


당신이 떠난 다음, 나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당신의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어땠냐고요? 나도 아프고 쓸쓸한 날들이 더 많았어요. 어제도 그랬고, 오늘은 좀 덜한데 내일은 또 그럴 거고요. 그때 이렇게 말했다면 당신도 오늘에 대해 생각했을까요? 조금은 덜 아팠던 나의 오늘에 대해서 말이에요. 하지만 나는 매 순간 사람이 고프진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그게 나와 당신의 간극이겠죠. 북극에서 남극보다 더 먼, 캄캄한 틈새겠죠.


네팔 여행이 끝나면 세상에서 가장 추운 마을, 오이먀콘으로 가야겠어요.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바람 속에서는 나조차도 내 마음을 읽을 수 없을 거예요. 온도감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거죠. 그곳에서도 내 마음이 여전히 차가우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극의 얼음 속으로 파묻혀야 할까요, 아니면 우주로 나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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