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글이므로 상큼하게 출근하고 싶은 분은 읽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직장인 모임에 나가고 있습니다. 회사 생활을 좀 더 잘하고 싶다는 전제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 충성하는 것도 좋지만, 네트워크와 자기계발 소홀히 하다가 이도저도 아닌 채로 막연하게 퇴사를 맞이하는 분들을 많이 보면서 나름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현재 회사, 조건에 만족하기보다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준비가 필요하다. 더 나은의 방향이 연봉일 수도 있고, 수입은 줄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쪽일 수도 있습니다.
저마다 다양한 이유로 일요일에 '성장'을 목표로 휴식을 포기하고 어느 공간에 모였습니다. 국내 대기업 인재개발부서 리더인 전문가를 파트너가 이끄는 자기 성장 워크숍에 참여합니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아니고, 사비를 들여서 과외로 더 배우는 자리인 셈입니다. 연차는 5~15년 차 내외로 다양하고 10년 차 언저리가 가장 많습니다. 커리어 변곡점에 있는 시기입니다.
숙련된 스킬을 바탕으로 더 크게 보며 리더로, 전문가로 자기 진로를 정해야 하는 기로에 있는 사람도 있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폭발적으로 성장시켜 나갈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는 스타트업 임원들도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 얘기를 좀 하자면, 최근 몇 년 간 회사가 마이너스 성장을 거급하며 조직이 위기에 처해,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체적인 회사 손익이 마이너스는 아니지만 매출과 손익 성장 곡선이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를 향해 내리꽂고 있습니다.
비즈니스가 어려워지면 회사는 구조조정을 고려합니다. 불필요한 사업이 어디인지, 방만하게 운영되는 곳은 없는지, 미래 비즈니스 지형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따라 수익성이나 가치창출이 어려운 분야는 도려내기를 시작합니다. 그 시작은 이미 몇 년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불필요한 상품 SKU를 줄이고, 비즈니스 가치가 하락한 조직은 조직 통폐합을 감행했습니다.
수입이 커지지 않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살림살이가 나아지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시장 발굴과 비즈니스 가치 창출을 위한 모색도 동시에 행해지고 있습니다. 성과는 나지 않고 비용투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출 감소도 감소인데, 손익이 안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손익 개선을 위한 TCR(비용절감실행 안)이 여러 방면으로 이뤄집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미미합니다. 경영진은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당장 손익 개선 효과를 크게 볼 수 있는 부분은 인원 감축을 통한 인건비 절감입니다. 잉여인력이나 저성과자를 최대한 발라내는 것이 그들의 목표겠지만, 그 기준을 정교하게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울어가는 회사에서 절박한 경영진의 무리수가 감지되면, 제일 먼저 유능한 S급 인재들이 탈출을 감행하고, 그다음이 몸값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A급 인재들의 동요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퇴사 행렬이 이뤄졌고, 빠진 인원은 빠진 대로 충원 없이 조직은 점점 축소가 됩니다. 과감한 체질 개선 없이, 일은 일대로 남아 있어, 남아 있는 인원이 빠져나간 사람의 일을 떠맡게 됩니다.
업무 누적은 피로 누적으로 이뤄지고, 업무 몰입도도 능률도 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성과를 낸 조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경영진이 보기에는 미미한 성과입니다. 실적이 살아나야 하는 브랜드 조직은 따로 있는데, 그들의 지난 회계연도 실적은 처참할 지경입니다.
위기감이 경영진의 목을 조여 옵니다. 그들은 더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를 것이라 예고합니다. 담당들 중 인건비가 높은 그룹을 타깃으로 하고 있음을, 리더 면담을 통해 예고합니다. 더욱 극적인 실적을 내지 못하면, 낮은 평가 등급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을 때는......
근로기준법이 있으니 담당 직원에게 그냥 맨몸으로 나가라고 하지는 못합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저 성과라는 이유로 권고사직을 할 때는 협상안으로 '보상'을 내밀 것입니다. 이제까지 대부부의 회사들이 그래왔습니다. '희망퇴직 신청자에게 00개월 급여분을 지급'하는 선례를 따라, 조용히 물밑에서 '작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그 작업에 내가 걸리기를 바라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흠칫, 수동적인 제 모습에 놀랐습니다. 어차피 떠나야 하면 리워드라고 받고 하면 어떠냐고 생각하는 분들 의견도 존중하지만, 저는 제 다음 스탭은 스스로 결정하고 차곡차곡 노력하며 움직여 왔다고 자부했는데, 어느새 기울어져 가는 사세와 패배의식에 물들어 '어차피 더 다니기 어려운데, 희망퇴직금 준다고 하면 받고 나가야겠다'라고 자동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맞나, 틀리나를 고민하기에 앞서, 제가 원하는 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몸값'은 무거워졌고, 전문성을 살려 동종업계로 간다면 수요가 적은 포지션(팀장급 이상), 높은 책임감을 요하는 자리에 도전해야 합니다.
망설여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높은 책임감, 높은 업무 강도를 내 바닥난 체력이, 지친 마음이 감당할 수 있을까. 현실은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멀리 뛰기 위해 서 있는 바닥이 어디인지 발밑을 더듬어 봅니다. 지금 내 발 밑이 물렁한 땅인지, 스프링 달린 디딤판인지 가늠해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