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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Jun 22. 2023

집과 직장 사이, 새로운 차원으로

목요일의 화실

집과 직장 사이에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곳, 목요일 화실입니다.


이번 주는 장마를 예고하는 비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을 거라는 풍문이 나돌았어요. 비가 세차게 내리는 동안에도 앞을 똑바로 보기 위해 고개를 들고 걸어가지만 우산은 방비책이 되지 못합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오늘은 직장을 나서 집에 가기 전, 화실로 향하는 목요일입니다.


요즘 그리고 있는 작품은 세계적인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Night Hawks>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올빼미족'입니다. 호퍼의 작품 중 가장 비싸면서도 유명한 작품이래요. 보는 순간 이끌림이 있었습니다.


집과 직장 사이, 하루의 차원을 새롭게 열고 싶은, 지치고 무기력한 직장인 눈에는 말이죠. 늦은 밤, 골목 쪽은 희미한 가로등에 어둡고, 통창으로 실내가 노출된 바 안은 대조적으로 훤합니다.

지난 시간 스케치를 마치고 오늘부터 색칠하기에 들어갑니다. 디테일을 잡기에 앞서, 그림 속 사물과 인물, 그리고 공기의 느낌을 덩어리 컬러로 구분하여 꼼꼼하게 밑 칠을 합니다. 밤거리, 바 bar라는 주요 공간이 어둠과 빛에 의해 선명하게 나뉘고, 그림을 보는 시선은 인물들에게 쏠리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안녕하세요. 잭"

"어느 오세요. 파스칼 씨.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끔찍했죠. 사장이 오늘부터 나오지 말라더군요."

"저런. 유감입니다. 파스칼 씨....  제가 해드릴 위로는 한 잔  술뿐이에요. 늘 마시던 걸로 드릴게요"

"고마워요 잭. 날 위로할 무언가가 절실해요. 빌어먹을 세상"

"네, 모든 게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사라져요."


중절모를 눌러쓴, 양복차림의 중년 남성은 오늘 다니던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하고, 거리를 배회하던 중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막 이 바에 들어온 것처럼 보입니다.

뒤이어 커플인 듯 보이는 남녀가 들어와요. 그들은 홀로 앉은 중년남자와 거리를 두고 반대편 끝쪽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바텐더는 곧이어 그들을 서빙합니다.


"안녕하세요. 소피아"

바텐더가 여자를 아는 모양입니다. 여자는 미소로 인사를 대신해요. 바텐더가 남자 쪽을 힐끔 보죠. 바텐더는 알고 있어요. 오늘밤 소피아의 손님이 이 남자라는 것을요. 사실 이 둘은 커플로 보이지만 모종의 계약으로 엮인 하룻밤 상대입니다. 바 테이블 위에 올라 와 있는 이 두 사람의 닿을 듯, 말 듯한 손이 관계를 상상하게 합니다. 이 둘은 연인도 아니고, 부부도 아니고, 친구는 더더욱 아닙니다. 썸을 타고 있거나, 하룻밤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관계로 보이네요.



밑 칠을 하는 동안 그림 속의 인물과 대화를 나눕니다. 어느새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 희미해질 정도로 인물들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에 몰두해요. 관음증이 있는 사람처럼 이 사람들을 훔쳐보다가 그 시선이 밖에 있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밤거리 쪽에 서 바 안을 보고 있는 눈동자. 그는 어두움 골목 쪽 또는 반대편 다른 바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건너편을 응시하고 있어요. 그 '바깥사람'의 존재를 상상하는 그림 밖에 있는 관람객인 저.


이 그림을 모사하며, 그림 속에 실체를 드러낸 사람들과, 드러내지 않은 화가를 상상하며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는 한 톨의 먼지로도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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