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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Jun 29. 2023

증명사진을 찍었습니다

목요일의 화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다는 걸 안다
공간이 있어야 형태가 존재할 수 있다.


화실에 가기 전에 증명사진을 찍었습니다.(부제는 '목요일의 화실'이지만 오늘 화실 얘기는 없습니다.)  

지난 몇 달간, 고민 끝에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이직 준비를 하기로요.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를 업로드하다 보니 제대로 찍은 증명사진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참 많은 사진을 찍었는데, 막상 이력서에 붙일 증명사진은 없었습니다. 


찰칵, 찰칵, 카메라 작동 소리에 마음이 덜컥거리는 거 같습니다. 작은 변화에도 마음은 미세하게 반응합니다. 이제는 고민을 멈추고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결과를 확인합니다. 흠. 기계에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자비 없이 성능이 좋은 카메라가 얼굴의 굴곡진 곳을 집요하게 포착해 냅니다. 어두운 곳은 어둡게 밝은 곳은 밝게. 눈 밑에 다크서클이 이렇게 진했나, 잔주름과 잡티는 익숙하여 놀랍지도 않네. 걱정할 건 없습니다. 보정이 있으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나요?"


"(전부 다 신경 쓰이지만) 얼굴이 이렇게 비대칭인가요?"

승모근은 왜 이렇게 올라왔죠?

적나라한 현실 외모 앞에 제 어깨가 동그랗게 처지고 목소리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는지 포토그라퍼는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들 그러세요. 절대로 심한 편은 아니세요. 증명사진 오랜만에 찍으시죠?"


몇 년만이긴 했습니다. 그동안 카메라앱 자동보정기술에 눈이 맞춰져 있어 현실이 오히려 비현실처럼 느껴지는 것 그렇다 치도라도, 유독 신경이 쓰이는 건 얼굴보다는 체형 변화였어요.


몇 년 전 미래 행동학자들이 현재 사무 환경에 방치될 경우 사무직 직원들의 체형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시뮬레이션하여, 실물 크기 인형으로 만들었던 것이 떠올라요. 엠마. 고개를 세차게 저어 봅니다. 그건 너무 극단적인 거고. 이제부터 운동도 하고......


"그거 아세요? 아이들은 비대칭이 없어요. 습관이 만든 거예요. 어른들 몸이 비대칭인 것은. 한쪽으로 씹고 한쪽으로 다리 꼬고. 가르마도 한쪽으로만 하다 보면 고개가 그쪽으로 기울어져요."


포토그래퍼의 목소리가 등짝 스매싱이라도 하는 거 같습니다. 무의식적으로 편하니까 해 온 행동이 생활 흔적으로 그대로 굳어 비대칭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 나 자신의 총합. 사무직 업무라는 것이 대부분 업무용 PC, 또는 랩탑으로 이루어지고, 한 손에는 마우스 한 손은 턱을 괼 때가 많아요. 저는 오른손잡이라 오른쪽 마우스를 사용하니 어깨가 오른쪽 앞쪽으로 더 빠졌습니다. 몸의 틀어짐이 여기저기 이격을 안 들어 삐걱대는 것만 같습니다.


"배경을 어떻게 해드릴까요?"

잠깐 정신이 딴 데 팔린 사이, 본판 보정이 끝나고 배경색을 고르는 순서가 되었습니다. 올라온 승모근이 보톡스라도 맞은 듯 반듯한 직각 어깨로 내려와 있습니다.


"체형까지 보정해 주는 줄 몰랐어요."


배경색은 취업용이라, 컬러 배경보다는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흰색 배경을 선택했습니다. 평범하지만 산뜻하고 정갈합니다. 흰색 배경을 고른 것이 지금의 저 자신을 설명해 주는 것만 같습니다. 예전에는 화려한 색도 과감히 골랐던 것 같지만, 그 사이 저는 좀 차분하고, 현실적이 된 느낌이랄까요. 스탠더드가 '여럿의 검증된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노멀 한 스탠더드를 더 따르는 쪽이 되었습니다. 잠깐의 회고에서 빠져나와, 치켜 올라간 어깨를 끌어내리고, 미래의 나로 갈 준비를 합니다.


"이걸로 할게요."


"이직 성공하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실망하고 불평만 늘어놓기보다는 한 발 내딛는 용기,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한 때입니다. 여러 가지 길이 눈앞에 놓여 있겠지만 지금은 그동안 쌓아 올린 업무 노하우를 기반으로 다른 회사로 이직하여, 더 직장생활을 해 보는 로 결정하였습니다.


다행인 것은 아직 시간이 있다는 점입니다. 서두르는 기색 없이 조금씩 밑 칠을 칠하듯, 꼼꼼하게. 그리고 대범하게 이 변화의 파도를 타 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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