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알코올 분해 효소도 나와 함께 퇴사했다

by 김솔솔


연휴가 끝나가고, 다시 혼자가 된 이 저녁. 문득 스무 살의 하이볼 한 잔이 떠올랐다. 퇴사하고 나니 비로소 고독을 즐길 완벽한 환경이 갖춰졌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안주를 곁들여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자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더 이상 술을 마실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술과 맺어온 지난한 인연이 남긴 과보(果報)일 터다.


회식은 싫어도 술 자체는 싫어하지 않는 나였지만, 막상 '혼술'의 낭만을 만끽하려니 기다렸다는 듯 내 몸은 단호히 영업 종료를 선언했다. 간 수치는 멀쩡하다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소주 반 잔만 들어가도 눈앞이 핑 돌고 심장이 요동친다. 알코올 분해 효소들이 직장 생활과 함께 세트로 퇴직이라도 해버린 걸까.


가끔 술 생각이 날라치면 술맛 대신 '추억'을 홀짝인다. 술이란 뿌듯하고 좋은 추억보다는 손을 휘휘 내저어 내쫓고 싶을 만큼 민망한 추억들을 떠오르게 하기 마련이지만, 오래된 추억들은 민망함의 유효기간이 다 된 것인지 때로는 사랑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니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보다. 어설프고 모자란 모습까지 그저 측은하고 따뜻하게 보게 되는 그런 포용력? 일리는 없고, 그저 난데없이 떠오르는 구질구질한 상념 중 하나일 뿐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끔은 시트콤 같은 과거의 장면들이 풋 웃음을 짓게 하고, 또 이런 것이 인생이겠거니 싶다.


아무튼 이왕 술 생각이 났으니 지난 술자리들을 복기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채워보자. 특히 그중에서도 자다가 발차기를 할 만큼 민망한, 스무 살의 그 시절 사연을 말이다.


고통의 맛, 위스키와의 첫 만남

소주, 맥주, 막걸리 이외의 술을 처음 접한 건 대학교 MT 때였다. 누군가 아버지의 양주 컬렉션에서 몰래 서리해 온 병 하나. 시바스 리갈이었는지 버번이었는지 이름은 가물가물하지만, 금박 라벨이 붙은 묵직한 호박색 병 안에서 영롱하게 빛나던 캐러멜색 액체는 분명 '양주'였다. 조금씩 맛이나 보자며 잔이 돌았고,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꼴깍 침부터 삼켰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김솔솔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40대, 대기업 희망퇴직.서울을 벗어나 살아보는 중입니다.

11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작가의 이전글21. 소비, 지출, 낭비, 출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