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끝나가고, 다시 혼자가 된 이 저녁. 문득 스무 살의 하이볼 한 잔이 떠올랐다. 퇴사하고 나니 비로소 고독을 즐길 완벽한 환경이 갖춰졌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안주를 곁들여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자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더 이상 술을 마실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술과 맺어온 지난한 인연이 남긴 과보(果報)일 터다.
회식은 싫어도 술 자체는 싫어하지 않는 나였지만, 막상 '혼술'의 낭만을 만끽하려니 기다렸다는 듯 내 몸은 단호히 영업 종료를 선언했다. 간 수치는 멀쩡하다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소주 반 잔만 들어가도 눈앞이 핑 돌고 심장이 요동친다. 알코올 분해 효소들이 직장 생활과 함께 세트로 퇴직이라도 해버린 걸까.
가끔 술 생각이 날라치면 술맛 대신 '추억'을 홀짝인다. 술이란 뿌듯하고 좋은 추억보다는 손을 휘휘 내저어 내쫓고 싶을 만큼 민망한 추억들을 떠오르게 하기 마련이지만, 오래된 추억들은 민망함의 유효기간이 다 된 것인지 때로는 사랑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니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보다. 어설프고 모자란 모습까지 그저 측은하고 따뜻하게 보게 되는 그런 포용력? 일리는 없고, 그저 난데없이 떠오르는 구질구질한 상념 중 하나일 뿐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끔은 시트콤 같은 과거의 장면들이 풋 웃음을 짓게 하고, 또 이런 것이 인생이겠거니 싶다.
아무튼 이왕 술 생각이 났으니 지난 술자리들을 복기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채워보자. 특히 그중에서도 자다가 발차기를 할 만큼 민망한, 스무 살의 그 시절 사연을 말이다.
고통의 맛, 위스키와의 첫 만남
소주, 맥주, 막걸리 이외의 술을 처음 접한 건 대학교 MT 때였다. 누군가 아버지의 양주 컬렉션에서 몰래 서리해 온 병 하나. 시바스 리갈이었는지 버번이었는지 이름은 가물가물하지만, 금박 라벨이 붙은 묵직한 호박색 병 안에서 영롱하게 빛나던 캐러멜색 액체는 분명 '양주'였다. 조금씩 맛이나 보자며 잔이 돌았고,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꼴깍 침부터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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