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dshoes Jul 12. 2023

[여름, 베트남] 달랏의 첫인상

동남아 여행

어제 비행기로 호치민에서 달랏으로 이동했다. 비엣젯 항공은 연발 연착이 잦다고 해서 베트남 항공을 골랐다. 베트남 항공도 정시 출도착 안할 확률이 있다고는 하던데 결과적으로는 내릴 때 하늘 위를 좀 돌았던 것 말고는 시간 지체 없이 잘 왔다. 호치민의 떤선녓 공항은 도심에서 가까운 데 비해(1군에 있는 숙소까지 12km였다) 달랏의 리엔크엉 공항은 도심에서 3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랩이 잘 안잡힌다는 후기를 읽고 택시를 타야 하나 했지만 막상 와보니 그랩을 금방 탈 수 있었다.*


내 느낌에 베트남 사람들은 눈치가 정말 빠르다. 그랩 운전사들이 우리를 기가 막히게 잘 찾는다. 미국 같았으면 한참 전화 통화하고도 못 찾아서 취소할 상황에서도 귀신같이 우리를 발견하고 손짓한다. 말 이 안통하는 데도 승객이 뭘 원하는지 금방 안다. 이건 식당이나 호텔에서도 마찬가지. 아시아 사람들끼리 통하는 감 같은 것도 있는 것 같고(이런 점에서 아시아 여행이 확실히 편한 건 있다. 서구 사람들은 눈치로 무슨 액션을 취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확실히 우리와 뭔가 코드가 다르다. 물론 생활에서는 눈치 문화가 오히려 피곤하기도 하지만. 눈치와 오지랖은 같이 가는 것이니).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공항을 나오자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놀랍게도 공기가 서늘하다! 찜통더위여 안녕. 혼잡한 대도시 호치민에서 갑자기 다른 나라로 순간이동한 듯, 그랩을 타고 가는 동안 조용한 숲길이 이어졌다. 안개 낀 산속을 꼬불꼬불 달리다 달랏 시내가 보이자 귀여운 파스텔톤의 건물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와 여긴 왜 이렇게 예쁘지? 확실히 오토바이 숫자도 적었고, 길이 아기자기했다. 완전 평지인 호치민과 달리 야트막한 언덕들이 있었다. 꽃이 핀 골목들은 어쩐지 라오스를 연상케 했다. 해발 1500m의 고원도시 달랏에 온 것이다. 나는 이곳이 금방 마음에 들었다!



어제 호텔에 도착하자 비는 그쳤고 오늘 아침에도 날이 맑았다. 여름은 동남아의 우기이기에 날씨앱을 켜보면 마치 종일 비가 내리는 듯 보이지만, 예전 라오스에서의 경험을 통해 우기라고 해도 하루중 거의 일정한 시간에만 비가 스쳐 지나가는 정도라는 걸 알게 되었다. 비가 한바탕 내리면 공기가 맑아지고 시원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우기 여행이 좋은 점이 있었다. 물가도 더 싸고. 베트남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물며 달랏처럼 덥지 않은 곳에서는 더 쾌적하게 여행할 수 있으리라. 현재까지는 기대대로이다.



이번 호텔에는 조식이 없기에 아침을 먹으러 밖에 나갔다. 달랏의 반미는 바게트에 속을 채워먹는 방식이 아니라 따뜻한 수프에 빵을 찍어먹는 방식이라고 한다. 조용한 골목을 지나 작은 연못 정원이 있는 야외 식당에서 반미+수프와 국수로 아침을 먹었다. 맛은 굉장히 로컬스러워서 한입에 맛있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현지식을 맛본다는 점에서 즐거웠다.


Bánh mì xíu mại Chén



아침을 먹고나서 니콜라스 바리 성당과 쑤언흐엉 호수까지 산책했다. 실개천을 따라 나 있는 골목길은 오토바이도 거의 없고 쾌적했다. 햇빛이 강해지자 약간 더워졌지만 그늘에 들어서니 꽤 시원했다. 꽃과 나무들이 풍성했고, 화사한 색의 담벼락,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생긴 집들, 골목에서 막대기로 칼싸움을 하며 노는 아이들과 챙이 넓은 전통 모자 논라를 쓴 할머니들이 보였다. 랜드마크 구경도 좋지만 우리는 이렇게 평범한 동네길 걷는 걸 무척 즐긴다.



성당은 살구빛이었고 보들보들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다. 내부는 저녁에만 개방한다고 해서 외관만 구경하고 호수가로 가서 쉬었다. 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분다. 근처에서 야시장이 열린다고 하니 저녁때 다시 와봐야지. 호수는 처음엔 작아 보였는데 알고보니 초승달 모양으로 넓은 지역에 길게 펼쳐져 있었다. 오리배 타는 곳을 지나서 더 걸어갔더니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구역이 나왔다.



* 그랩(Grab) :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에서 성업중인, 우버 같은 차량공유 서비스. 앱을 깔고 신용카드를 세팅하면 된다. 한국에서는 카드 세팅이 잘 안된다는 말이 있던데 비자는 안됐고 아맥스는 잘됐다. 현금으로 지급하는 게 낫다는 후기도 읽었지만 실제로 사용해보니 카드 결재에 문제는 없었다. 도착하면 전화가 오는데 운전사들이 영어를 못하는 것 같고 말이 안통하지만 위에도 썼듯이 기가 막히게 승객 위치를 잘 찾더라. 심지어 랜드마크가 전혀 없는 복잡한 골목에서도 잘 탔다. 호치민 공항에서 그랩을 타거나 공항으로 갈때는 공항 주차장 요금이 추가로 결재된다(도착후에).


- 오후 3시 15분에 추가 : 오후 1시가 되자 거짓말처럼 하늘이 흐려지면서 폭우가 쏟아졌다. 점심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 신의 한 수. ‘스쳐 지나간다’고 보기엔 심하게 많은 비가 내렸다. 태풍이 올 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2시 반이 되자 빗줄기가 확연히 약해져서 모자를 쓰고 길에 나갈 수 있을 정도가 됐고 3시가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뚝 그쳤다. 비가 내릴 때 기온이 갑자기 확 내려가서, 앗 춥다.. 라는 느낌까지 들었다. 급격한 날씨 변화가 놀랍긴 했지만 여행에 큰 지장은 없었다. 아직까지는(어차피 우리는 게으름 + 저질 체력이라 하루 종일 빡빡하게 돌아다니는 여행자들이 아니어서).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 베트남] 호치민 숙소 & 식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