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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Jan 15. 2024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쌩초보의 피아노 연습

 조성진의 연주가 쌩초보에게 도움이 안되는지 듣다 보니   같다. 분리된  개의 손가락을 가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음들이 현란하게  흐름 속에 녹아드는 것도 좌절감을 주지만, 루바토를 너무 자유자재로 구사해서 자칫 박자감각을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자유자재로 곡을 갖고 놀면서도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마치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역설 아닌가?  조성진의 연주를 일관된 어휘로 설명할  없는지를 깨닫는다.


문득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을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마치 중력이 없는 것처럼, 육체에 무게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볍게 도약하고 우아하게 착지하던 몸짓. 연아퀸의 공연만 보다가 다른 선수들이 얼음 위에 쿵 하고 떨어지는 걸 보고 어찌나 당혹스러웠는지. 피겨 날의 날카로움과 얼음의 차가움이 그제야 흠칫 느껴졌다. 피겨 스케이팅이 예술에 속하는가 하는 논쟁은 접어두자. 예술이 현실의 질서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성취한다는 점에서 가상이라는 아도르노의 말이면 충분하니까. 물론 아도르노는 이 가상이 다시 한번 자신을 부정함으로써 - 가상의 가상성을 드러냄으로써 - 진리에 도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적어도 조성진의 연주나 김연아의 공연 같은 뛰어난 플레이를 접할 때면 진리고 뭐고 아름다운 가상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일이 현실에서는 정말 희귀하니까.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에 있는 베르니니의 <아폴론과 다프네>.


어쩌면 20세기 이후의 예술이 고된 수련을 통해 가상을 창조하는 임무를 버린 것은 실수가 아니었을까? 음악 연주와 피겨 스케이팅이 어쩌면 마지막 남은 고전적 아름다움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독일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예술의 힘>에서 예술의 힘은 위험하기도 하기에 우리는 거기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너무나 맞는 말. 같은 말이라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하고 감탄했다(그에 비하면 의미장이니 콤퍼지션이니 하는 개념들은 딱히.. 그냥 마르쿠스가 참조하는 셸링을 한번 더 읽어보는 게 나을 듯). 하지만 어떤 것을 가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벌써 진리의 자리에서 발언하는 것 아닌가? 삶과 예술을 혼동하는 사람은 그런 단어를 쓰지 않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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