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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Jan 15. 2024

쇼팽 모닝

쌩초보의 피아노 연습

아침에 눈뜨자마자 예의 야상곡 2번을 틀어놓고 악보를 들여다본다. 이불에서 미적거리면서 밥도 안먹고 딴짓하는 게 내 주특기지만 음악에 이렇게 시간을 할애하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커뮤 중독자가 스마트폰을 찾듯이 악보 어딨어 악보! 하고 찾는다. (근데 왜 이러는 걸까)


내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피아니스트들 중에서 백건우의 연주가 가장 느리고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리듬을 익히는데 좋다는 걸 발견했다. 빠르게 넘어가는 부분에서는 재생 속도를 느리게 하는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어제의 경험에서 너무 음 하나하나를 따로 떼서 따라가려고 하면 소리는 나되 무슨 로봇이 뚱땅거리는 것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걸 알았다. 그런 식으로 가보려고 하면 곧 그 뚱땅거림도 막혀버리고 곡이 조각조각 해체되어버린다. 이곡이 얼핏 쉬워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엇박이랄까(정확한 용어가 뭔지 모르겠다) 그런 게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걸 일일이 박자를 맞추려고 의식을 하면 다 망가지더라. 오른손은 오른손대로 흘러가고 왼손은 인간 메트로놈이 된 것처럼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그나마 곡다운 곡으로 들린다.


그래서 대가들의 연주를 계속 들으면서 그 리듬을 익혀서 흉내내는게 더 나은 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박자를 놓치는 일도 없어지지 않을까. 역시 모방은 창조의… 그래. 귀에 인이 박힐 때까지, 곡만 듣고도 악보를 그릴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듣고 또 듣는 거다. 근데 이렇게 너무 반복해서 들으면 이 곡이 진력이 나서 나중에는 PTSD 같은 게 오지 않을까. 뭐 내가 음대 입시생도 아니고,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다. 피아노방에 갈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연습 시간을 늘릴 수가 없는데, 듣는 것도 충분히 연습의 일환이라는 걸 깨닫는다. 몇 번 듣고나서 악보를 보고 손가락 연습을 해보는거다. 이러면 방금 들은 곡이 아직 기억나니까 피아노를 실제로 치지 않아도 연습이 될거다. 리듬을 최대한 흉내내보자.


그리고 쇼팽을 잘 치는 법 류의 유튜브 채널들도 찾아봤다. 오른손 왼손을 따로 충분히 연습하라고 하고, 자기만의 루바토를 개발하라고 한다. 조성진을 천 번 만 번 들으라고 하는 유튜버도 있었다. 아… 그건 좀… 암튼 너무 성급하게 양손을 같이 쓰려고 하지 말고 일일이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반복 훈련을 통해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는 게 맞는 방법인 것 같다. 어린 시절 피아노 교습도 분명히 그렇게 했는데, 다 까먹고 성급해진 것 같다.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피아노를 꼭 칠 필요는 없다는 그 작곡가분의 말이 갑자기 실감이 났다. 내가 어떤 곡을 이해하고 즐기는 것과 신체적인 반복훈련으로 그 곡을 의식 없이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그분은 대신 악보를 보면서 음악을 들으라고 조언했는데, 실제로 큰 도움이 되더라). 그래도 어쨌든 쇼팽의 야상곡 2번 연주는 올해 설정한 하나의 미션이니까 한번 해봐야지. 그리고 난 스스로 설정한 미션 클리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타입의 인간형이니까. (물론 남이 정해준 일을 하는 건 하나도 안즐겁다)


https://youtu.be/JDvckfO1_GQ?si=VSJnjETbnzIftRj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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