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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Jan 20. 2024

안단테, 라르고

쌩초보의 피아노 연습

유튜브 보다 보면 자주 나오는 광고, “갖고 있는 한국말을 영어로 번역하려는 습관은 하나도 도움이 안돼요 오히려 역효과가 나요!” 타일러가 거북목을 하고 약간 콧소리 내면서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사람 같은 발음으로 이렇게 말한다. 들을 때마다 오 그렇구나! 솔깃! 해서 리얼 클래스 결재하고 싶어지는 발언인데 영어공부가 지금 우선순위가 아닌 데다 나 같은 게으른 자가 꼬박꼬박 하겠나 싶어서 그만두곤 한다. 근데 이 조언이 피아노 연습에도 적용되는 거 같다. 악보를 음 그대로 건반으로 하나 하나 옮기려는 건 하나도 도움이 안된다는거. 물론 당연히 악보대로 쳐야겠지만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놓고 그 흐름을 타면서 리듬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따라가야 제대로 된 연주 비슷하게라도 들린다.


그러려면 역시 모방이 방법이다. 언어공부도 결국 잘하는 사람의 말을 모방하는 게 최선이듯이. 실제로 미국에 있을 때 네이티브들의 말을 계속 듣고 흉내내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뉘앙스를 잊어버리니 타일러 말처럼 영어를 쓰려고 해도 번역이 되어버린다.


반복해서 어떤 일을 계속 하면 거의 의식하지 않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에 새겨진다. 베르그송은 이를 습관적 기억이라고 부르며 눈앞의 사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은 그 반대가 아닐까? 오히려 사물과 최대한 가까이 가서 거의 하나가 되었을 때 의식의 견고한 방어가 허물어지는 경험이 아닐지. 기술철학자 캐서린 헤일스는 의식은 일관성 유지를 임무로 하기 때문에 환경과의 유연한 상호작용을 놓칠 수 있다면서 ‘비의식 인지(nonconscous cognition)’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헤일스가 말하는 비의식 인지는 신경생리학적 차원, 즉 뉴런적 레벨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라는 점에서 자연과학 환원주의의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모든 것이 의식적이지 않지. 객체로서의 자연은 애초에 의식의 반대어니까.


그런데 신경생리학적 차원을 빼놓고 몸에 대해 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니,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하다. 몸과 정신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은 인류의 마지막 과제가 아닐까?


암튼 처음엔 딱딱하게 치다가 나중에 감칠맛을 더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자기 해석이나 자기 감정을 넣어서 치는 연습을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어떤 감정이나 이미지를 떠올리며 치는 것도 방법인 듯. 특히 쇼팽이 그런 것 아닐까. 낭만주의가 괜히 낭만주의겠어.


또 하나 연습하면서 느끼는 것은 멜로디를 아무리 잘쳐도 박자가 뭉개지면 망한다는 거. 내가 연습한 것을 녹음해봤더니 어후… 그냥 칠 때는 몰랐는데 녹음해서 들어보니 박자가 엉망이다. 여러 번 반복했더니 처음보단 나아지더라. 좀 더 정확하게 박자를 익히기 위해 메트로놈을 사야겠다, 싶었는데 메트로놈 앱이 있는 게 아닌가! 옛날처럼 실물만 생각했는데 세상이 달라졌구먼. 이 앱은 바탕색깔을 바꿀 수도 있어서 맘에 든다(어차피 피아노 치는 동안은 의미가 없지만).



그나저나 메트로놈을 들어보니 백건우가 안단테보다 약간 느리게 치는 거였다. 난 딴 연주자들이 빨리 치는 줄 알았는데. 나는 물론 제대로 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라르고로 가겠지만.


덧 : 다시 확인해보니 라르고는 너무 느려서 오히려 감을 못잡겠네. 아다지오가 적당한 것 같다. (백건우 연주도 아다지오인 걸까? - 앗 메트노롬으로 나중에 확인해보니 안단테였다! 조금 느린 안단테이긴 하지만 아다지오는 아니었다)


덧 2 : 음악용어에서 이탈리아어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 발레에서 프랑스어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듯이.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악할 때 뿌듯할 듯. 한국사람은 외워야하는 단어들을 그들은 그냥 이해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뭐.


 3 : 많은 도움이 되는 유튜브 채널. 물론 나는 아직 양손을 자유롭게 쓰지도 못하는 수준이지만 디테일한 표현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귀에 쏙쏙 들어오게 알려준다. 용어들도 배웠다. 이제 프레이징이 뭔지 정확히 알게 됐다.


https://youtu.be/w41t0D5ad1s?si=laYsIo1qkyq3utu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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