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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Feb 04. 2024

중고 피아노를 장만하다!

쌩초보의 피아노 연습

피아노 연습실도 오래 이용하니 가격이 무시 못하겠고 연습 시간도 늘리고 싶어서 뾰족한 수가 없을까 궁리하다가 결국 중고 피아노를 장만하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당근마켓에서 무료나눔으로! 돈 주고 살 생각이었기에 중고 피아노 무료나눔 합니다 라는 문구를 보고 이런 감사할 데가 싶어서 바로 연락을 했고, 이틀 뒤에 가져올 수 있었다. 전면에 장식이 있는 갈색 영창 피아노였다. 운송+조율해주신 분(이분도 당근에서 찾았다!)의 말로는 1990년대에 나온 피아노라 연식은 오래되었다고 하는데 상태가 깨끗하고 소리도 좋았다. (사실 나는 당근을 이번에 처음 해보는데, 놀라운 플랫폼이구나 실감했다) 아이들이 자라서 피아노를 안치게 돼서 무료나눔한다고 하셨는데 팔 수도 있었을 텐데 무료로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물론 피아노를 들여놓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소음! 소음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냐고요? 다행히 나는 직장에 혼자 쓸 수 있는 방이 있고, 그 방 주위로 내 피아노가 아니라도 각종 음악이 땅땅땅 들리는 환경이 펼쳐져 있다. 밤에도 연습하는 사람들이 항상 음악을 연주하거나 튼다. 그러니 내가 좀 보탠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을 거다. 내 방이 복도 끝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래도 지지리 못 치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려주는 건 민폐일 것 같아서 평일 낮엔 중간 페달을 밟고 약음으로 치고 주말이나 밤에만 크게 치기로 했다. 이미 그렇게 한 지 일주일째다. 시험을 해보니 약음 상태로 치면 바로 밖에서도 전혀 안들린다. 벽면 전체가 방음 시공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문에는 방음 패드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고.


조율사분이, 요즘은 아파트에서 다른 집의 피아노 소리를  참기 때문에 무료나눔으로라도 처분하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렇구나 내가 어렸을  피아노 소리 정도는 그냥 듣고 넘겼는데갈수록  이렇게 되는 걸까? 한국의 아파트 문화는 음악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뼈저리게 느꼈다.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시키는 부모들도 요즘은 별로 없다고 하고. 조율사분이 요즘은 점점 일거리가 줄어서 투잡을 고려 중이라고 하신다.  다른 말씀도 인상적이었다. 지금의 엄마들이 어려서 피아노를  배운 사람들인데 어차피 나이 들면 치지 않게 되고 안쳐도 인생에 아무 지장 없는  알아서 요즘은 피아노를  안시킨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지만 같은 사람도 있잖아? 어렸을  피아노를 조금이나마 접해보지 않았다면 나이 들어서 이렇게 도전해보려는 엄두를 냈을 거다. 그런 점에서 엄마에게 감사드린다.  


녹턴 연습의 진척상황은… 느리게나마 드디어 두 손으로 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말 그대로 그냥 ‘치는’ 거고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와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나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연주는 왼손이 아주 약하고 가볍게 들리는데 내가 치는 소리는 쿵쿵 웅웅한다. 무슨 아코디언 소리 같… 세게 치는 것보다 가볍게 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걸 실감했다. 페달 밟는 것도 은근히 힘들고. 유튜브 강좌들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데(이 곡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이 곡에 대한 강좌가 많다), 그중에서 왼손 3박자 중 첫박과 2,3박을 다른 악기라고 생각해보라는 조언이 확 와닿았다. 첫음을 콘트라베이스라고 생각하고 2,3음을 바이올린이라고 생각해보라고. 내일 한번 그 조언대로 해보려고 한다.


요즘 음악을 정말 많이 듣는다. 클래식도 클래식이지만 뮤지컬곡도 듣고 K팝도 듣고 R&B도 듣고 옛날에 들었던 록이나 뉴웨이브도 다시 듣는다. 들으면서 멜론에 올라온 감상평 같은 걸 읽는 것도 재밌다. 세상의 F들은 다 여기 모였구나 싶을 정도로 (극 T인) 나 같으면 손발 오그라들어서 못쓸 것 같은 감정 넘치는 표현들이 많다.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부르는 사람들도 F들일 것이다. 다른 장르는 모르겠는데 음악은 확실히 99퍼센트 그렇지 않을까. 세상의 어떤 내용도 담고있지 않은 ‘음’들이 인간의 감정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건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그들 덕분에 아름다운 음악이 있는 것이니, 갑분 F들에게 감사한다. (이번 글은 나와 어울리지 않게 감사로 도배되어 있네..)


https://youtu.be/JDZ_DlNfsWk?si=k5VDHbikB9OAuJz_

이 곡도 나중에 도전해보고 싶다.


이 왼손들! 아코디언처럼 쿵쿵거리지 않게 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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