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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Feb 13. 2023

아이오와, 디모인, 빌 브라이슨

미국여행

원래 계획했던 여정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고 다시 뉴욕주로 돌아가는 길. 아쉽기도 했지만 서부의 험한 자연에 좀 진저리가 나서, 어서 빨리 문명지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돌아가는 길은 최대한 북쪽 루트를 선택했다. 시간도 단축하고, 미시간주에 사는 지인 댁에 들렀다 가기로 해서였다.


와이오밍의 래러미를 출발, 다시 네브레스카를 가로질러 아이오와로 들어갔다. 아이오와는 영화나 소설 같은데 딱히 등장하지도 않는, 유명하지 않은 주이지만 주도 디모인(des Moines)에 가까이 가자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건 바로 내가 좋아하는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 때문! 그렇게 배꼽 잡고 웃었던 여행기가 없을 정도로 이분 글은 너무 웃긴다. 가는 곳마다 투덜투덜 신랄한 유머가 넘치는데 통찰력도 날카롭다. 빌 브라이슨이 책에서 이야기한 자기 고향이 바로 디모인이다(이름 철자가 왜 프랑스식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 moine는 프랑스어로 ‘수도사’를 의미한다).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 횡단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아이오와 주 디모인 출신이다. 누군가는 그래야 했으니까.” (이상하게 벌써 웃긴다) 브라이슨은 자기가 무슨 깡시골에서 자란 것처럼 묘사해 놓았는데 실제 들어가 보니 디모인은 나름 상당한 도시였고 깔끔했다. 금색 지붕을 가진 주 의사당(State Capitol)이 도시의 시그니처인 듯 했다.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이 예뻤다. 미국 중서부 지역에 있기엔 좀 뜬금없는 장대한 유럽풍 건물이긴 했다. 도시의 프랑스식 이름과 무슨 연관이 있는걸까. 찾아봐도 잘 안나온다.



길에는 걸어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이건 기후가 혹독한 내륙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널찍한 길에는 차도 많이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 도시라는 인상이었다. 스쳐 지나가기엔 괜찮지만 살기엔 좀 지루할 것 같다. 누군가는 디모인 출신이어야 하니까, 라는 빌 브라이슨의 너스레가 어쩐지 이해가 간달까.


브라이슨은 또 아이오와가 너무 평평해서 책 한 권을 놓고 올라가 보면 사방 500킬로까지 다 보인다는 둥 썼는데 허풍인 듯 허풍아닌 듯 왠지 웃음이 나왔다. 그만큼 산이 안 보이는 평탄한 지형이었다. 그렇지만 서부와 달리 황량하거나 거칠지는 않았다. 한바탕 비가 온 후인지 공기는 맑았고, 하늘은 흐렸지만 분위기는 어둡지 않았다. 디모인을 나와 시골로 들어서자 온화한 푸른빛이 이어졌다. 마침 맑게 개인 하늘과 어우러져서 풍경은 더없이 평화롭고 부드러웠다.



스쳐가는 한 순간에 여행자의 머리에 남는 어떤 장소의 감각은 무척 주관적인 감상이다. 하지만 공간에 대한 순전히 객관적인 인식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같은 곳에 다시 갈 때 전혀 다른 인상을 받는 일도 드물지 않지만, 그렇다고 최초의 인상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장소와 만나는 모든 순간은 그 자체로 충만한 진실이 아닐까. 오래된 사진을 들여다보며 생각한다.


아이오와는 그 순간 완벽하게 푸르고 온화했다. 거친 자연은 사라지고, 이제 ‘동부’로 가는 길이 시작된 것이다.


- 물론 동부에서도 펜실베이니아나 뉴욕주의 깊은 산골은 아름답다고 말하기 어렵다. 서부처럼 거대하지는 않지만 거친 풍경이 많다. 내가 가 본 주 중에서는 (뉴잉글랜드를 제외한다면) 아이오와와 오하이오의 자연이 가장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오하이오는 완전 평평하지는 않고 굴곡이 좀 있는데, 푸르고 둥글둥글해서 마치 텔레토비 동산 같은 느낌이었다)


-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 횡단기>는 오래 전 나온 책이지만 지금봐도 재미있다. 그런데 그 어마무시한 지역들을 마치 읍내 나가듯이 너무 쉽게 혼자 작은 자동차 타고 휙 가는 (것처럼 써놓은) 것이 오히려 후덜덜했다. 역시 홈그라운드의 이점인가, 아이오와 출신의 내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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