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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Sep 17. 2021

발리에서 생긴 일 (2019)

“우하하, 여기가 홍대야, 발리야.”라는 말을 하면서.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이... 있습니다."     


잔인하고 또 잔인한 세상. 합격이면 빨리 합격목걸이를 걸어주고 등이나 토닥여줄 것이지, 왜 사람을 한순간에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가게 만드는 것일까. 일개 시청자인 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합격통보 방식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래퍼를 꿈꾸지 않고, 아이돌이 될 계획도 없으니 평생 저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며 채널을 돌리곤 했는데, 세상이 또 어떤 곳인가. 하루아침에 판이 뒤바뀌고, 정신을 쏙 빼놓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 아닌가.


 

"신부님 혹시 월.. 경 하십니까? “    


2018년 발리의 땅에서 신혼여행 가이드, 아스티나가 내게 물었다. 우리는 게으름의 결과, 신혼여행 패키지로 발리에 왔다. 결정의 대가로 매일 2시간 이상 마사지와, 발리의 성, 사원, 유적지, 기프트숍 등을 둘러보는 강행군이 예정되어 있었고, 그날은 고작 발리에 온 지 이틀 차 된 밤이었다. 감자칩, 빙땅 맥주, 그리고 생리대를 사들고 차에 타자마자 ‘월경’이란 단어를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제야 생리대를 집었을 때 아스티나가 움찔했던 게 생각났다.  


"네.. 혹시 문제가 되나요? “
"아, 내일 우리 사원에 가요. 근데 월경은 사원 못 가요. 안돼요. “     


기대하지도 않던 합격 목걸이를 눈앞에서 뺏긴 기분이 들었다. 안 그래도 신혼여행 첫째 날, 보기 좋게 생리를 시작한 게 억울 해 죽겠는데 이제는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생긴다고..?  


아스티나는 우리를 숙소에 데려다주며 말했다.
"내일 가고 싶은 데 한번 검색해 보세요. 내일 11시에 만나요. “

숙소로 돌아와 병맥을 깠다. 허리는 쑤시고, 머리가 아팠다. "혹시 가고 싶은데 있어?" "있겠어? 뭐가 있는지 모르는데. 아스티나한테 물어볼걸." 다음날 조식을 먹는데 남편이 또 물었다. "오늘은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있겠어?" 11시가 됐다. 아스티나를 만난 우리는 결국 인근에 있는 스타벅스에 갔다.


음, 인도네시아 스벅은 이맛이군, 이런 음악을 트는 군. 오호, 역시 발리는 스타벅스도 발리야! 발리만의 분위기가 가득한 스타벅스를 느끼고 싶었지만 마치 우리 동네 스타벅스에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아 억울해, 진짜 억울해. 여기까지 와서 왜 그날이냐고, 왜 이러고 있냐고. 소파에 기대 누워 짜증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근데 사원이 그렇게 가고 싶어.?"
"어? 아니. 그건 아니지만."
"사원 가봤자 사원이지, 뭐. 나는 오히려 덕분에 편하게 쉴 수 있어서 좋은데?"      


뭐지?    없는 긍정 회로는? 맞다. 생각해보니 땀을 뻘뻘 흘리며 사원을 걷는 대신,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있는   좋은  아닌가? 짱구의 스케줄보다  빡빡한 패키지 일정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질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곧장 다음 목적지를 찾고는, 빠른 걸음으로 아스티나에게 다가갔다. "여기로 가주세요."   , 우리는 DMZ트릭아트 박물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서핑을 하고, 수족관을 구경하고, 낭떠러지에서 서로를 구출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하하, 여기가 홍대야, 발리야.”라는 말을 하면서.   

    


4박 5일의 발리는 콧구멍에 바람이 스치듯 빠르게 지나갔다. 악어가죽 카드지갑, 천연꿀, 선물용 핸드크림을 바리바리 싸들고 발리 공항에 도착했다. 수하물을 부치고, 의자에 앉아 감자칩을 뜯었다. 과자를 뜯자마자 발리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감자칩 하나에 찬란한 햇빛을 반짝반짝 머금은 바다의 물결, 감자칩 하나에 풀빌라 수영장 위에 나 대신 둥둥 떠다녔던 파인애플 튜브, 그리고 마지막 하나에 아름다운 석양을 조명삼아 바닷가에 풍덩 빠지는 낯선 이들의 모습이 꼭 한 폭의 그림 같던 발리, 발리, 발리.. 신들의 섬 발리를 뒤로한 채, 우리는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름다운 신들의 섬, 발리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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