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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Sep 07. 2021

결혼을 결심하게 된 진짜 이유

모든 일은 심각하게 일어나지 않았다.

@영심이

그와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언제더라. 첫 만남에 NASA 우주 티셔츠를 입고 나온 그를 봤을 때부터였나. 인사를 하자마자 뿅 하고 드러내는 덧니를 봤을 때부터인가. 깔끔하게 쌈 싸 먹는 청결함에 반한 것인가, 커피 대신 청귤 에이드를 시켜먹는 신박함에 반한 것인가. 나는 그를 보자마자 그와 결혼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을 먼저 입 밖으로 꺼낸 것도 나였다.


모든 일은 심각하게 일어나지 않았다. 계절은 흐르고 흘러 호빵을 먹는 겨울이 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 물었다. "우리가 결혼하면 어떨 거 같아?"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그가 말했다. "재밌지 않을까?" 미끼를 물었다. 됐다, 됐어. 나는 신명 난 엿장수가 된 듯 그의 반응에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다음에 또 물었다. "우리가 결혼하면 좋겠지?", 그리고 또. 또. 또.


연애한  5 만에, 나보다  마음이 급했던 엄마는 당장 남자 친구를 보여달라며 떼를 썼다. 그때부터였나. 장난처럼 시작했던 결혼 열차의 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이. 조용한 한정식집에서 그를 부모님에게 소개하던 그날, 엄마가 대뜸 이렇게 물었다.


"프리의 어떤 점이 좋았어요?"

간신히 씹어 삼킨 숙주나물이 콧구멍으로 튀어나올 뻔할 정도로 엄마의 질문에 나는 질겁했지만, 그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귀여워서요."

귀엽다라, 귀엽더라. 나는 그의 답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곧 장모님이 될 분에게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를 왜 사랑하게 되었는지 구구절절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참, 나 같으면 최소 500자로 말할 텐데. 성의도 없고, 센스도 없는 젊은이 같으니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를 다그치며 재차 물었다. 귀여운 거 말고, 다른 거, 다른 거.. 결혼을 결심하게 만든 그럴싸한 거.. 아주 화끈하고 로맨틱한 답변 같은 거. 그는 나의 재촉에 몇 가지를 읊었지만, 그 역시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렇게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와 함께한 계절의 냄새가 콧구멍을 빠르게 스치며, 머릿속으로는 추억의 필름이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와 결혼을 결심한 게 언제였더라. 눈이 펑펑 오는 겨울날, 눈이 아플 정도로 새빨간 패딩을 입고 나타난 귀여움 때문인가, 군대 전역하고 산 미키마우스 지갑을 여전히 들고 다니는 알뜰함 때문인가, 화를 돋우어도 절대 점화가 되지 않는 차분함 때문인가, 편의점처럼 24시 예민하지 않은 무던함 때문인가.


얼마 후, 그의 부모님을 만났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겨 작은 카페에 앉았다. 말주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는 힘겹게 웃는 척을 하고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비장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거,, 뭐 내 아들이 어디가 마음에 들었나요?"

"아, 저는요. 그냥 처음 만났을 때 걸어오는 거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가지고요."


정말 순식간이었다. 이런 점이 마음에 들어서, 이렇게 해봤는데, 이렇게까지 하더라고요.라는 말을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내 주둥아리는 생각보다 조심성이 없었다. 너무 성의 없이 대답을 했다 싶어, 부연설명을 드리려는데 그의 아버지가 박수를 치시며 이렇게 말했다.


"아, 끝! 더 이상 물어보지 마, 끝이야. 끝. 됐어, 됐어."

곧이어 카페에서 흘러나오던 클래식 음악보다 더 큰 웃음소리가 작은 공간을 덮쳤고, 그의 아버지께서는 등을 의자에 붙이시고는 모든 것이 끝났다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이제 더 이상 남편이랑 왜 결혼했어? 어떤 점이 좋았어?라는 물음에 망설이지 않는다. 가장 단순하지만 그 단어 말고는 대체할 수 없는 것. "그냥!"이라고 말하면 끝! 진짜 끝!!!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은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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