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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Aug 24. 2021

침대 위의 꾼들

똑같은 놈들의 연애

그러니까, 이게 다 SKT 때문이었다. 연애 초반, 그의 얼굴에서 나와 비슷한 구석을 한 군데라도 더 찾아보려고 애쓸 정도로 나는 그에게 푹 빠져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1/3의 아주아주 낮은 확률로 SKT 통신사를 사용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같은 통신사끼리는 24시간 통화를 해도 무료라는 정보를 알게 된 그때부터였다. 아침마다 "잘 잤어?"로 시작했던 무난한 카톡 인사는 사라지고, 우리는 아침에도 목소리로 만났다. 땅콩 껍질을 한 움큼 집어삼킨 듯한 탁한 목소리로 "으어어.. 잘 잤어? 나 씻고 올게으에으.." 전화 종료 버튼을 아침에 누르게 된 것이다.


여전히 믿기지 않지만, 우리는 침대에 누워 전화로 한바탕 수다를 떨다가 그 상태로 잠에 들었다. 이렇게 아침까지 전화가 꺼져있지 않은 경우는 뻔했다. 비슷한 시간대에 잠들었다는 사실! 어쩜! 우리는 취침시간도 이리 비슷할까? 그를 생각할수록 나도, 전화기도 불타올랐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출근길에 오르며 그에게 카톡을 했다.


"어제 몇 시에 잤어?"

"모르겠어, 프리는 언제 잤어?"

"나야 모르지. 캬캬"


하지만,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1박 2일 통화 게임은 종료!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조금씩 나는 지쳐갔다. 이 짓을 한지, 3개월 차. 백일 여행에서 굉음과 같은 나의 코골이를 보여줬겠다, 그의 방귀소리까지 들었겠다, 이제 남은 것은 탄산음료를 마시고 끄억! 하는 시원한 트림뿐이었으니 이 게임이 처음만큼 재미있지 않았다. 뭐 이쯤에서 자겠지, 아니지. 분명 나보다 먼저 자는 사람이니까 조금 있다 자겠지. 마음속으로 카운트다운을 하다 보면 곧이어 들리는 그의 수면 호흡. 그럼 3분 뒤 전화를 먼저 끊는다. 조금이라도 늦게 코를 고는 사람이 전화를 끊는 것, 게임의 새로운 룰이 생긴 것이다.



그 덕분에 아침에도 핸드폰은 뜨겁게 불타오르지 않았다. 불타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면 족하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침대에 누워 그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그날따라 친구와의 카톡이 너무 웃긴 거다. 하나하나 치는 드립이 어찌나 웃기고, 이모티콘은 왜 저 꼴인지 웃음을 참을 수 없었기에 그와 나누던 대화는 뒷전이 되어버렸다.


그가 자냐고 물으면, 나는 고장 난 로봇처럼 아니라고 답했다. 나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그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물렁한 마음을 굳게 먹고, 게임을 한 번에 종료시킬 비장의 아이템을 꺼냈다.


그가 상처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나는 드르렁... 드르렁.. 소리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내뱉기 시작했다. 몇 번의 코골이 연기를 했을까.


"프리야, 자? 자? 잠든 거야?"

(드르렁........)

"정말 자는 거야?"

(드르렁.........)



삐리 링. 툭.

그리고 얼마 뒤, 전화가 끊겼다. 아니 이게 꿈이야 생시야. 전화가 끊겼다고? 혹시 내가 코 고는 척 한 걸 눈치채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그럼 기분 나쁠 텐데! 에잇! 그냥 솔직하게 말했으면 됐는데 왜 구라를 친 거야.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하며 친구와 오랫동안 수다를 떨었다. 그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미안했지만, 나는 그날 이후로 몇 번의 드르렁 아이템을 자주 사용했다.


나의 비장템, 코골이는 나를 끝이 없는 게임 속에서 로그아웃 할 수 있게 도와줬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나는 더 이상 아이템을 쓰는 일이 줄어들었다. 나보다 그가 먼저 코를 고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요즘 일이 바빠지더니 피곤한 게로 군! 나는 조용히 그의 수면 리듬에 맞춰 자장가를 부르는 척을 하다가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누가누가 먼저 코를 골까!"

이때부터였다. 끝이 없을 것 같던 통화 게임은 '누가누가 먼저 코를 골까!'의 게임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게임이 업데이트된 거라고나 할까? 새로운 게임이라고 생각하니, 지겨울 틈이 없었다. 그가 코를 골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선창을 했고, 전화가 끊기기를 반복했던 이 게임은 결혼 후 같은 침대에 누운 후에야 끝이 날 수 있었다. 내 비록, 거짓말을 했지만 이 사실은 죽을 때까지 밝히지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같은 이불을 덮은 지 어느덧 2년.


며칠 전, 사건이 일어났다. 거실 바닥에 앉아 이슬 톡톡 두 모금에, 알딸딸해져 제정신이 아닌 나는 헤롱헤롱 비틀대다가 홧김에 결국에는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했던 그 비밀을 그에게 털어놓고야 말았다.


"나 사실, 연애할 때 일부러 코 고는 척하고, 자는 척하면서 딴짓 한 적 있어. 미안."


그가 나의 말을 듣자마자 캔맥주 한 캔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 역시 만취 상태가 틀림없었다. 상처를 받은 걸까? 그럼 어때, 이미 지난 일인데? 하면서도 널뛰는 알코올 감정선의 영향으로 눈물이 날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는 상 위에 맥주캔을 타악! 내려놓으며 힘주어 말했다.


"프리야, 나도 하나 말해줄까? 나도 사실 구라 치고 게임했었어."

"뭐라고? 나한테 잔다고 구라 치고 폰 게임했다 이거야?"


몇 번이나 코를 곤 척한 거야, 언제부터 그랬어, 이 사기꾼! 언제까지 그랬어!라는 말은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중요한 것은 그도, 나도 똑같은 놈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배를 부여잡고 똑같은 놈들끼리, 똑같은 짓거리를 했다며 손가락질을 하면서 깔깔 웃었다. 당기는 배를 잡은 채로 이슬 톡톡을 집어 들었다. 알쓰인 나에게 아주 썼던 이슬톡톡은 이제 완전히 단맛만 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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