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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Aug 10. 2021

그랜드캐니언에서 경포대를 넘어 강촌까지

야, 우리 지금 서른 살이다. 외박할 수도 있지.

2018년 가을, 청량리역 화장실 두 번째 칸에서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어떡해, 지금이라도 못 간다고 할까? 아, 정말."

"그게 뭔 소리야, 정신 차려. 지금 청량리역 아냐?"

"엉, 근데 뭔가 불안해. 엄마한테 들킬 것 같아."

"야, 우리 지금 서른 살이다. 외박할 수도 있지. 그리고 지금 미국에 계시다며."


맞다. 엄마와 아빠는 몇 년 동안 기대하고 고대했던 부부동반 미국 여행을 떠났다. 즉, 한국이라는 땅에 없단 말씀. 그래서 그와 나의 백일기념 여행도 일부러 이날에 맞춘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남자 친구, 백이 지금 화장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그런 말씀.


나는 생각하는 변기에 앉아 이곳까지 어떻게 왔는가 생각했다.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탄 힘든 여정이었다. 이번에는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첫 여행의 설렘으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죄책감이 들었다. 왜 여기까지와서 쫄은 것인가! 그래, 열차 티켓도 끊었는데 일단 가자. 그래 나는 서른이라고!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와 그의 손을 잡고 열차에 냉큼 올라탔다. 덜컹덜컹. 처음 타보는 itx. 세상은 이것을 청춘열차라고 불렀다. 차창 너머 우리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그는 출발지점에서 내게 보여준 그 웃음 그대로였다. 나도 그를 따라 웃었다.


예약한 펜션에 도착했다. 그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하루 종일 등판에 매달고 다녔던 큰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와, 진짜 우리가 여행을 왔네. 대박이야." 곧이어 그의 등껍질에서는 신기한 것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가습기가 뿅! 하고 나왔다. 가습기는 뭐지? 고작 2박 3일 여행 오는데 가습기를 챙겨 온다고?


그러나 가방에서 나온 마지막 물건은 나를 놀라 자빠지게 만들었으니. 그는 가방에서 화한 같은, 그러니까 자세히 봐도 화환이고 멀리서 봐도 화환인 그것을 뿅! 하고 꺼내어 내게 건넸다. 나는 중국집 철가방에서 짜장면 대신 치킨이 나오는 것을 본 사람처럼 소리를 꽥하고 질러버렸다.


"프리가 갖고 싶다고 했잖아, 진짜 아니었어?"


한 달 전이었다. 하루에 내뱉는 말의 80%가 허튼소리인 내가 물었다. "내가 꽃 화한을 머리에 쓰면 어떨까? 천사 같을까, 맛이 간 것 같을까?" 그는 당연히 천사 같을 거라고 했다. 그래? 그러면 직접 만들어줘. 라고 깔깔 댔을 뿐인데, 정말 그뿐이었는데 이것을 받게 될 줄이야.


우리는 밤새 꽃 머리띠를 정수리에 올리고 하늘에서 막 내려온 천사 같다고, 박수를 치고 방방 뛰면서 셀카 백장을 찍으며 백일을 축하했어야 했지만, 빌어먹을 체력을 지하철과 열차에 쏟아낸 탓에 그대로 쓰러져 코를 골며 잠에 들었다.

다음날, 한 것도 없는데 여행 이틀 차가 되었다. 강촌의 맑은 공기를 마신 탓인지, 화환을 쓰고 천사가 된 탓인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것 같은 엄마의 매의 눈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래, 나는 서른이란 말이다. 조선시대였으면 결혼을 하고 장성한 아이를 두었을 나이지, 암 그렇고 말고. 이깟 외박 어머니도 분명 찬성하실 거야.라고 마음을 먹으니 이게 웬걸, 불안불안하고 초조했던 어제의 마음이 홀라당 도망가 자취를 감추었다.


기세를 몰아, 불안이라는 안감으로 무거웠던 옷을 홀라당 벗어던졌다. 나무가 보이면 사진을 찍고, 카페가 보이면 음료를 먹고, 닭갈비집이 보여서 닭갈비를 먹었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서로를 생각하며, 위하며 그런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이 지금 나의 할 일이었다. 해방감과 자유함을 동시에 얻은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그 순간을 즐겼다.


다음날, 우리는 다시 강촌역에 도착했다. 2박 3일의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갈 일인가? 플랫폼으로 열차가 들어온다는 방송이 나왔다. "ITX-청춘 열차가 지금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열차가 조금은, 아니 아주 많이 미웠다.



며칠 뒤, 미국 여행을 마친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는 핸드폰으로 찍은 여행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미국 땅을 한 번도 밟지 못한 딸에게 여행 이야기를 정신없이 쏟아냈다. 10박 11일의 여행기를 몇 시간째 듣고 있으니, 이곳이 안방인지, 미국의 호텔방인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던 그때였다.


엄마는 갑자기 북아메리카대륙에서 한반도의 경포대로 방향을 틀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빠와 연애시절의 이야기였다. 아니, 방금까지 아빠와 싸운 이야기를 하며 네 아빠가 이렇게 속이 좁다, 늙어서 잘 삐치기나 한다고 말해놓고 갑자기 연애 이야기를 한다고? 엄마는 한껏 신난 얼굴로 경포대 썰을 풀기 시작했다.


"내가 네 아빠랑 연애할 때, 경포대를 가려했는데. 할머니한테 어떻게 아빠랑 둘이 여행을 간다고 말하겠냐. 그래서 친구 경분이랑 같이 간다고 했지."


(헉. 엄마가 내가 남자 친구랑 여행 다녀온 걸 아는 거 아냐? 혹시 지금 떠보는... 건가?')

"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 거짓말 치고 간 거야..?"


"어, 둘이 갈려했는데 내가 또 혹시라도 들킬까 봐 겁이 나는 거야. 그래서 경분이랑 같이 셋이서 경포대를 갔는데~~ 친구랑도 싸우고, 아빠랑도 싸우고 아주 난리도 아녔어."


1984년도에 있었던 일을 이렇게나 또렷이 기억할  있는지 1989년에 태어난 나는 도무지 이해할  없었지만, 엄마의 말을 끊을  없었다. 마치 어제 경포대에 다녀온  신난 엄마를 말릴  없었다. 엄마는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빠는 늙은 삐돌이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경포대까지. 경포대에서 출발해 미국까지 다녀온 엄마의 청춘과, 머리에 꽃을 달고 강촌을 다녀왔던 나의 청춘의 조각들이 겹쳐진채로 안방에 두둥 떠다니고 있었다.


미국에서 경포대까지 순간여행을 다녀온 나는, 방으로 돌아와 펜을 잡고 종이위에 마음을 휘갈겼다.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강촌에 다녀오기를 잘했다. 정말 잘했다. 엄마가 할머니에게 거짓말하고 여행 다녀온 얘기를 조금 더 빨리해줬으면 내가 더 맘 편히 놀다 왔을 텐데. ㅋㅋㅋㅋㅋㅋㅋ그것이 참 아쉽다.(20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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