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벌이 될 때마다 몇 번 떨어져도 합격하면 장땡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또 있었을까. 5번 만에 기능시험에 합격한 후로 나는 허허실실 웃으며 거리를 활보했다.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 내 신발을 밟아도 모른 체했다. "괜찮아요, 실수로 밟았겠죠. 괜찮습니다. 저는 기능 시험에 합격 해가지궄ㅋ크크크"라는 말을 속으로 반복 재생하는 내가 너무 웃겨서 또 웃고 다녔다. 그렇게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마음만으로는 도로 위의 무법자가 되어 질주하던 그때, 하늘에서 잠시 재정비하라는 의미로 브레이크 타임을 내려주셨으니..
기능시험 합격 맛을 본지 얼마 되지도 않아 <불합격> 도장이 쾅! 하고 찍힌 수험표를 들고 노란 차에서 내렸다. 이제 다시 시작이었다. 도로주행,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겠는걸? 기능시험만 붙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나리라 생각했던 건방졌던 나의 의식의 흐름을 뚝 하고 끊어준 사건. 운전시험은 불합격 후 3일 뒤에 바로 재시험이 가능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연습면허 생들은 면허를 취득한 지 2년 이상 된 사람을 동승하에 도로를 달릴 수 있었고, 남편의 휴가 신청에 맞춰 나는 재시험을 볼 수 있었다. 2주 만이었다.
10시쯤 공단에 도착한 우리는 차에 내려 준비운동을 한 뒤 자리를 바꿨다.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운전석에 올라 자리와 사이드미러를 맞추고 운전대를 잡았다. 시동을 켜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리고 D. 그리고 왼쪽 깜빡이 발사! 인류를 구하러 온 영웅이 된 듯 비장한 각오로 엑셀을 천천히 밟기 시작했다. 오후 2시까지 멈추지 않고 코스 4개를 돌고 돌고 또 돌았다. 코스를 세 번 정도 도니 이제야 길이 눈에 익기 시작한 나는 합격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함과 동시에 불안해졌다.
나의 생각보다 더 큰 자동차는 도로 위에 그려진 흰 선을 불쑥불쑥 넘었고, 스쿨존에서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전부터 조금씩 서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 앞에 트럭이 유턴을 하기에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핸들을 꺾으려다가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었을 때 등등. 나는 여러 번 식겁했다. 내 손은 오랜만에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다. 이거 아무리 코스가 쉬어도 떨어질 수 있겠는걸? 생각지 못한 도로 위의 상황에 마음과 옷이 갈기갈기 찢겨버린 영웅은 핸들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시험은 3시. 시험장에 입실해서 안내 설명을 들었다. 4가지 코스 중에서 어떤 것에 당첨될지 모르는 것이 이 시험의 포인트. 그런데 이게 웬일, 오늘 시험장 앞에 공사를 하게 되어서 C, D 코스만 시행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남색 유니폼을 입고 계신 감독관님들이 눈이 부셔서 쳐다보지 못할 것 같았다. 이 정도면 합격시켜줄게, 넌 운전대나 잡아!라고 말해주는 하늘에서 내려온 합격의 신이 아닐까?
4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느라 잘게 잘게 나누어서 온몸에 골고루 분산되어있던 불안감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C, D코스. 그것도 가장 마지막에 연습했던 그 두 가지 코스 중에서 한 가지가 나온다니, 정말 이건 무조건 붙고 끝나자마자 불고기 백반 먹어야지! 싶던 나는 어쩌다 보니 마지막 순서가 되어 대기실에 남게 되었다.
한 시간 반을 대기실에서 다리를 덜덜 떨었다. 그 꼴은 마치 오디션 대기실에 앉아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간절한 연습생 같기도 했고, 물에 젖은 생쥐 같았다. 초조함의 끝을 달리던 그때, 불현듯 연습면허생 신분인 내가 운전 연습생이 되기 위해 달려왔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만약 오늘 떨어진다면 다음에는 나 혼자 대중교통으로 공단에 가야 한다.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한 시간 반은 걸리는 그곳으로 힘없이 걸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다 보니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졌다. 안돼, 안돼! 무조건 오늘 붙자.
시끌벅적하던 시험장은 어느덧 고요한 적막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때, 저 멀리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노란 자동차. 나는 타이어를 발로 팡! 팡! 차고 운전대를 잡았다. C코스. 내가 가장 많이 보고, 많이 생각했던 바로 그 코스였다.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도로 위의 상황은 연습을 하던 때보다 더 평화로웠다. 트럭도 거의 없고, 심지어 주행하는 자동차도 그리 많지 않았다. 뻥 뚫린 도로 위를 달리다 보니 어느덧 마지막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좌회전 신호가 들어왔다. 좌회전을 하고 마지막으로 안전하게 차선 변경을 하고 차를 멈추면 끝.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리고, P에 두고, 시동을 껐다. 그리고 3초 뒤,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라는 경쾌한 기계음이 들렸다. 됐다. 됐어! 합격이다! 더 이상 시험 보러 공단에 오지도 않아도 된다!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두근두근 대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던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역시 엄마인 것인가. 엄마는 내가 연락이 없기에 또 떨어졌구나, 싶어서 물어보지 않았었다고 말해 또 한 번 딸의 눈물을 훔치려 했다. 하지만 지금 눈물을 흘릴 순 없지. 아직 자랑해야 할 사람이 한가득 이었다.
다음으로 아빠는 덤덤하게 축하한다고 하면서, 3번 만에 붙은 거니?라는 말로 나를 웃겼다. 2번이라고 정정해주고 이번에는 동생에게 말했다. 요즘 취업을 해서 돈 쓰는 재미로 사는 동생은 역시 마음이 넓어지긴 했나 보다. 축하한다, 축복한다, 경축드린다는 말을 했는데 마지막 언니의 반응이 히트였다. 국가고시 합격했다는 동생의 말에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미친. 대리시험 본거 아님?”
언니와 나는 20대 때부터 어쩌다 보니 서로를 응원하며 부추기는 사이였는데, 엄마가 이제 너네도 운전면허 좀 따라, 엄마 혼자 힘들어 죽겠다!라는 말을 할 때면, 우리는 서로에게 운전면허 따는 것을 권장했다. 언니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하면 잘할지도 모르지, 언니가 장녀인데 따야지! 요즘엔 차녀가 집안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거 모르냐! 같은 무논리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가 엄마의 잔소리를 끝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었다.
사실 나는 아무래도 언니가 운전을 잘하리라 생각했었다. 나보다 겁도 없고, 엄마에게 거짓말을 들켜도 한번 혼나고 말지, 뭐.라는 무덤덤한 태도로 일관하는 언니의 모습에서 나는 우직한 성품을 엿보았기 때문이었다. 저런 사람이야말로 운전을 해야 하지 않을까?
주차를 하다가 쓰레기통을 쓰러트려서 쓰레기 더미에 깔리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쫄보 같은 나보다는 낫지 않을까? 나는 평생 후불교통카드를 손에 쥐고 사는 편이 낫겠어, 내가 뭐 얼마나 놀러 다닌다고 운전을 하겠어.라는 생각을 무려 작년까지 했던 나였으니, 언니의 반응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쟤는 진짜 못 딸 줄 알았는데, 쟤가 땄으니 나도 딸 수 있지 않을까? 의 쟤가 되어버린 나는 실제로 언니에게 자극을 주었는지 언니가 올해 안에 운전면허를 따겠다는 말을 했다고, 엄마가 흥분한 목소리로 전해준 건 며칠 전 일이었다.
이제 나는 겨우 초보가 되었다. 연습면허생 신분에서 초보 연습생으로 한 단계 올랐을 뿐이다. 어쩌면 이제 도로 위에서 실컷 욕먹는 것이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 오히려 공부해야 할 것이 더 많아질 거다. 그래도, 운전면허에 합격했다는 것만으로 나의 삶은 좋은 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변할 것 같다.
따끈따끈한 호두과자를 사 먹으러 차를 끌고 휴게소를 갈 수도 있고,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휴게소에서 호두과자 파는 일도 할 수 있으며, 엄마 반찬을 가지러 차를 끌고 직접 집에도 갈 수 있고, 천안에 살고 있는 친구네 집에 남편 없이 혼자 놀러 갈 수도 있고, 여행 중에서 남편과 교대로 운전을 할 수도, 눈곱도 떼지 않고 차에 올라타 맥드라이브에 가서 맥모닝 하나에 핫케이크 하나를 주문할 수도,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 걸리던 거리를 차로 40분 만에 갈 수도 있는 자격을 얻었으니 말이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고, 갈 수 있는 곳이 더 넓어졌다는 것만으로 나는 너무 좋다. 좋다는 말 외에는 무어라 할 말도 없다. 수많은 응시 스티커로 수험표가 너덜너덜해질 때마다 내 인생이 주름지고 밟힌 것처럼 슬픈 적도 있었다. 돈 아끼려다가 헛돈만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자괴감이 든 적은 더 많았다.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땡벌이 될 때마다 몇 번 떨어져도 합격하면 장땡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합격하면 장땡.. 합격하면 장땡.. 장땡..!
정말 그 말은 사실이었다. 몇 번을 떨어지니 오히려 자만하지 않고 침착하게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고, 어느덧 도로 데뷔를 앞두고 있는 초보 연습생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도 내가 면허를 딴지 한 달도 안 된 생초보인 것 까지는 모른다는 것. 그러니 아주 티를 박박 내기로 한 나는 초보 스티커를 세 개나 주문했다.
연습면허용 파란 도로주행 스티커를 떼어내고, 노란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였다. 새내기 초보의 데뷔를 축하하듯 반짝반짝 광이 나는 초보 스티커 앞에서 마음속으로 비장하게 데뷔 소감을 읊어 나갔다. 5월의 어느 날, 운전 연습생으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앞으로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작고 귀여운 노란 자동차 안에서 울고 웃었던 초심자의 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조금 더 빠른 시간 안에 안전하게 저의 세계를 넓혀 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동안 응원해주신 분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정말 큰 힘이 되었답니다! 감사합니다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