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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Apr 15. 2022

4번의 불합격에도 포기하지 않는 용기

그렇게 5수생이 되었습니다.


3수까지는 괜찮았다.

운전면허시험에 도전 중이다. 3수까지는 괜찮았다는 말에 혹시 오해하실까 말하지만, 도로주행이 아닌, 장내 기능시험을 말하는 ...이다. 근데 정말 3수까지는 괜찮았다. 운전대를 잡은    안됐음에도 오르막길을 넘고 신호를 보며 주행을 하고, T 주차 존까지 들어간 스스로가 자랑스럽기도 했다. 지인들에게는 "  떨어졌어."라고 우는 소리를 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마치 자수성가한 자식이 뿌듯해서 어쩔  모르는 부모의 마음처럼 스스로가 대견해서 환장할 지경이었다.


근데 그 사이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오미크론에 걸려버린 것이다. 선생님께 받은 양성 확인증을 손에 쥔 채로 벌벌 떨리는 손으로 운전면허시험 공단에 들어가 시험일자를 변경했다. 그리고 온전한 회복을 핑계로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시간 동안 운전을 외면하며 지냈다. 마치 운전면허시험을 준비한 적 없었던 사람처럼.


"이제 시험 봐야 되지 않아?"

"아.. 무래도 그렇겠지?"


며칠 , 그래도 이번에는 붙겠지, 라는 마음으로 도착한  시험장에서 나는    좌절했다. 이번에도 T 주차가 복병이었다.  이상 출발  좌회전 깜빡이 켜는 것을 잊지도 않았고, 오르막을 아주 부드럽게 넘어가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T 주차구간에만 가면 나는  머리가 새하얘지는가.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그리고 3 뒤에  시험에서는  떨어져 1주일만에 타이틀을 갈아치웠다. 기능 삼수생에서 사수생으로..이번에도 T자주차가 문제였다.


이렇게.. 이렇게 오른쪽으로 반 바퀴 돌려서 쭉 나갔다가 왼쪽으로 다 돌려서 들어가.. 들어가..(주차 탈선입니다.) 아니.. 아아.. 여기서 어떻게 했더라. 일단 들어가자. (확인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듣게 된 주차 확인 안내 소리에 됐다! 됐어를 외쳤지만 안전요원이 저 멀리서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실격이요, 실격. 내리세요." 알고 보니 나는 연석을 올라 탄 것이었다. 후진할 때 약간 느낌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것이 연석을 올라탄 것이었다니.



그렇게 오수생이 되었다.


언제나처럼 안전요원에게 운전대를 내어주고는 조수석에 앉아 합격 라인에 들어왔다. 그렇게 오수생이 되었다. 나의 운전 선생님, 남편에게 불합격 소식을 전하며, 우하하 웃으며 쿨한 척을 했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5.. 5.. 오수라..  인생의 5..  처음인데.. 오수라.... 도로주행도 아니고 장내기능을 오수라.. 연이은 실패와 오수생이라는 타이틀은  인생의 오점처럼 느껴졌다. 내 인생에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실패를 몰아서 한 적이 있던가.


나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기능시험 불합격>의 경험들을 찾아 헤맸다. 나와 같은 사람이 있길 바라는 마음, 이런 사람이 나뿐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절실하게 쥐 잡듯이 인터넷을 뒤졌지만, 안타깝게도 재수, 삼수는 흔해도 사수.. 오수는 정말 흔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 용기

집으로 돌아와 고개를 수그리고 머리를 말리는데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을 보며 모든 것이 덧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왜 T자 주차 때문에 이렇게 일주일을 마음 졸이며 살아야 하나, 자기 직전까지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는 일도 너무 지겹고(보지 않으면 불안했다.), 수험표에 쌓여가는 불합격 도장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 것이다. 이렇게 살 수는 없어. 운전면허 준비를 하지 않던 과거의 나를 떠올려보니 무척 행복했던 것 같았다. 나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포기를 하는 것에는 어쩌면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셈이니까. 옆에 앉아 땅콩을 집어 먹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 그냥 포기할까?, 누가 기능을 이렇게 많이 떨어져.. 나 너무 쪽팔려 정말.."

"놉. 다음에는 무조건 붙습니다. 그리고 열 번 떨어져도 돼. 쪽팔릴 것 하나 없어. 누구한테 쪽팔리다는 거야?"

"아..(할 말이 없어졌다.)"



인정한다. 나는 답정너였다. 여기서 포기하기는 싫었다. 단 한 번의 합격은 네 번의 불합격을 무력하게 만들 테니까. 나의 불안, 두려움에 지기 싫었다. 하지만 두려움의 언덕은 꽤 높고 심지어 어둡기까지 하기에 시험을 또 미뤘다. 시험 1시간 이전까지 변경 가능한 공단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뿐이라고 합리화했지만, 사실은 무서웠고, 두려웠고, T자 주차만 생각하면 섬뜩했기 때문이었다. 반복된 시험 접수 영수증으로 무거워진 수험표를 볼 때마다,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까.




두려움을 마주하기

하지만 시간은 정직하게 흘렀다. 아무리 미루고 미루어도 그날은 어김없이 왔다. 편의점에서 박카스 한 병과 땅콩크림빵을 샀다. 다시 버스를 타고 15분이나 걸어가야 시험을 볼 수 있다. 잠시 벤치에 앉아 빵 한쪽과 박카스를 먹었다. 좋아하고 익숙한 맛을 목구멍으로 삼키니 조금은 편해진 것 같았다. 떨지 말자, 떨지 마.


그리고 곧 시작된 나의 다섯 번째 기능시험.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지금부터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목소리를 들어도 더 이상 덜덜 떨지 않았다. 처음에는 에베레스트산처럼 높아 보이던 오르막길이 평지처럼 낮게 보였고, 처음에는 시야에 제대로 보이지 않던 신호등을 저 멀리서부터 보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대망의 T자 주차 존에 도착했는데도 떨리지 않았다.


유튜브 스승님들의 공식대로 완벽하게 주차를 해버렸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주차 존을 나오다 탈선을 해서 10점이 깎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긴장이 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교차로 구간에서 좌측 깜빡이를 켜고, 가속 구간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 <돌발> 과제가 나왔는데 그마저도 경쾌한 모닝콜처럼 산뜻하게 들렸을 때 나는 직감했다. "미쳤나 봐, 미쳤어. 이러다가 합격이겠네. "합격 라인까지 들어오기까지 모든 순간이 평온했지만,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다시 심장이 쿵쿵댔다.  



나를 이겼다.

연습면허를 발급받기 위해 10분을 기다려야 했지만 괜찮았다. 버스를 타러 가기 위해 15분을 걷고 도착한 버스정류장 전광판에 버스가 25분 뒤에 온다고 쓰여있었지만 괜찮았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환승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겨드랑이에 땀이 날 정도로 더웠지만 괜찮았다. 나는 기. 능. 합. 격. 자. 가 되었으니까!


반복된 불합격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한 번의 작은 성취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다.


요즘 남편과 나의 인사는 이렇게 시작되고 이렇게 끝난다. "아니, 내가 장내기능 시험 합격한 거 말해줬나?", "혹시 내가 90점으로 들어온 거 말해줬나?",  "내가 가속 구간 퍼펙트하게 한 거 말해줬나?". 그럴 때마다 그는 이미 구천 구백번 말했다고 하지만, 하지 말라는 소리는 안 하니까 계속한다. 그냥 좋아 죽겠으니까 계속한다. 그러니까 요즘의 나는 내 안의 두려움에게 지지 않고, 불안과 공포를 보란 듯이 뻥하고 차 버린 스스로가 멋있어서 환장할 노릇이라는 말이다.


이제 또 시작이다. 도로주행이 남았다. 앞으로 몇 번을 또 떨어질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험이 두렵지도, 무섭지도 않다. 떨어지면 뭐 어때, 또 보면 되지. 기능을 5번이나 떨어진 덕에 단단한 심장을 가지게 되었다니, 아니 잠깐.. 이거 5 수생 경험도 나쁘지 않은데?!




5수를 하니 좋은 점 또 하나, 이마저도 콘텐츠가 된다.

https://youtu.be/P3DGKG9pRt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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