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으.. 떨려.
온라인 심리상담 스케줄을 잡은 3일 전부터 나는 밤잠을 설쳤다. 상담은 전화상담과 텍스트 상담이 있었는데, 소심한 나는 텍스트 상담을 택했는데도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한 시간 동안 무슨 말을 하지? 내가 솔직하게 말해도 비웃지 않으시겠지?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말해도 되는 걸까? 아니, 그래도 내 나이가 34살인데 이런 말을 하는 게.. 이런저런 걱정을 하다 상담 당일이 되었다.
미세하게 떨리던 심장이 조금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상담. 상담을 하는 도중 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말하듯 빠르게 속마음을 꺼내보였다. 생각지 못한 전개였다. 낯선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별일이 아닐 줄 몰랐는데 말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겪은 트라우마에 대한 것을 중점적으로 상담을 나누었는데 이게 웬걸, 30분도 되지 않아 내 마음의 불순물들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음, 무슨 말을 더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 내게 선생님께서는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 물었다. 나는 이때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선생님을 붙잡았다.
"아 제가 걱정이 너무 많아서 고민입니다. 걱정이 많다 보니까 때때로 불안할 때가 많고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걱정을 하고 그래서 예민해지면서도 어떤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어요. 그래서 어느 날에는 눈 뜨고 감을 때까지 걱정만 하다가 끝나기도 하고요..(이런 나 정상일까요?)"
선생님은 걱정을 하는 것은 큰 문제 있는 행동이 아니라고 하시며 혹시 어떤 걱정을 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걱정하는 것들은 보통 이런 것들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걱정이다. 가족들이 빗길에 미끄러져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 새로운 병명을 알게 되어 좌절하게 되는 것을 상상하거나, 작업물에 대한 칭찬을 받아도 마음껏 뿌듯해하는 대신 혹시 저러고 내일 자르는 거 아니야?라는 이상한 걱정을 하거나, 내일 면접장소에 가야 하는데 길을 잃어서 면접을 보지 못하고 평생 돈은 벌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그런 걱정인지 망상인지 모를 것들. 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라 인간관계에서도 혼자 걱정을 하며 시간을 보낸 적도 많았다. (걱정의 90%가 나만의 오해였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통 이런 걱정은 다 하고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단순하게 군더더기 없는 일상을 보내는 것 같다고 찡찡거리며 선생님에게 우수수 말을 쏟아내었는데, 가만히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던 선생님께서 그건 분명 쓸데없는 에너지 소진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자마자 가슴 깊은 곳에 숨어있던 웃음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아 정말요?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 맞나요? 큭큭" 선생님은 또 그런 걱정이 들 때마다 이게 지금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하셨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면접장에 제때 들어가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게 면접 합격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오. 그런 걱정을 할 시간에 면접 준비를 하겠소.
생각해보면, 비 오는 날에 부모님이 빗길에 넘어지지라도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먼저 안부 전화를 건 적은 극히 드물다. 어느 날 친구에게 이런 걱정을 한다고 했더니, 친구가 웃으며 "야 너나 잘해.ㅋㅋㅋㅋ"라고 했던 말도 떠올랐다. 맞다. 그 말이 맞았어. 그러니까 나는 지금껏 걱정을 창조해내며 살아온 것이었다. 세상에, 아무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에 흥미가 있다고 해도 걱정도 창조해내며 살았다니, 황당할 따름.
그런데 이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전문가의 단호한 진단을 들으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어쩌면 나는 그 말이 가장 듣고 싶었던 것 아닐까? 이제야 알았다. 나는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걱정을 머릿속으로 만들어내는 놀이를 (나쁜 쪽으로) 즐기고 있었구나. 그랬구나.
남은 시간 동안에도 선생님에게 깨알 같은 조언을 들었다. 나는 타인의 감정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지만, 스스로의 감정은 잘 돌보지 않는 편이라고 하셨다. 때문에 스스로에게 칭찬과 격려를 듬뿍 주는 연습이 필요하단다. 1분 뒤 상담이 종료된다는 안내 창이 떴다. 아니 벌써 가셔야 한다고요? 1시간 전만 해도 두려움에 떨고 있던 나는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구르며 선생님께 서둘러 감사인사를 전하고, 메모장에 2022년 새로운 목표를 적었다.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고 그 시간에 나를 정성껏 돌보기.
상담을 받기 전에 선생님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느라 3일을 보냈다. 이것 또한 얼마나 쓸데없는 일이었는가. 이런 쓸데없는 걱정만 하다가 2022년이 끝나 버리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살지 말자, 쓸데없는 걱정을 할 시간에 나를 칭찬하자! 하하하! 그럼, 걱정이라곤 하나 없는 사람처럼 쿨한 척을 실컷 하며 글을 마무리해보겠습니다!!! 아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