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모를 일이다, 모를 일.
초등학교 4학년 학급 임원을 뽑는 날, 세훈(가명)이가 코를 질질 흘리며 고개를 숙인 채 교탁 앞에 섰다. "저는 진짜로 부회장이 하기 싫습니다."라는 말을 내뱉었지만, 높은 득표율로 부회장이 되어버린 세훈이는 결국 오열을 했다.
그날의 기억은 이미 20여 년이 지난 대과거의 일인데도 주기적으로 생각난다. 눈물을 흘리는 세훈이와 그를 바라보던 불안한 눈빛의 선생님, 그리고 이 상황이 웃기기만 하는 친구들 속에서 그 눈물의 의미가 궁금해 미치겠는 내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왜지? 왜 부회장이 그렇게 싫었을까? 20년이 흘렀는데도 궁금할 줄 알았으면 그때 진작 물어볼걸. 아니야, 그건 좀 그렇지?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그래 모를 일이다, 모를 일. 나도 내 눈물의 정답을 모를 때가 많은데, 남의 눈물의 의미를 어찌 알겠는가.
그해 가을 운동회에서 나는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학생이라는 죄로 운동장에 갇혀 끊임없이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외쳐야 했던 그때.. 응원단장이 응원가가 적힌 스케치북을 펼치는 대로 앵무새처럼 계속 노래를 해야 하는 안쓰러운 운명에 처한 초등학생이라 생각하며 따르릉따르릉 자전거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단장의 스케치북이 빠르게 넘겨졌다. 이번에는 개똥벌레다!!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번만 노래를 해주렴, 이라는 가사를 크게 외칠 때면 알 수 없는 이유로 가슴이 뜨겁게 차오르며 울렁거렸다. 개똥벌레가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면서 친구가 없는 개똥벌레가, 다가가도 멀어지는 친구들을 보면서 마음 아플 개똥벌레가 생각나서 울컥한 탓이었다. 40여 명의 목소리로 가지 마라를 외칠 때면 개똥벌레가 더 불쌍한 존재가 된 것만 같아서 더 슬펐다. 아니 너무 슬프잖아.
성인이 되고 나서는 한동안 개똥이를 잊고 살았다. 부회장이 되어 통곡을 했던 세훈이의 눈물처럼,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눈물을 흘리느라 바쁘게 살았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가장 고마운 존재였던 엄마가 이해되지 않아 그 마음에 생채기를 내었고, 친한 친구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고개를 휙 돌렸고, 회사에서 싫은 소리를 듣는 날에는 그냥 땅으로 꺼지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족이, 친구가, 상사가 싫었다. 아니, 왜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꼭 그런 날이 있다. 20년 전의 흐릿한 기억도 선명하게 그려지는 날. 며칠 전이 그랬다. 나는 서랍에 넣어 두었던 개똥벌레를 오랜만에 꺼내 들었다. 2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가슴이 아려왔다. 특유의 처량함이 느껴지는 한이 맺힌 듯한 가지마흐라... 가지마흐라... 노래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흑흑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가슴을 진정시키고자 옆에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근데 개똥벌레는 정말 친구가 없을까? 왜 계속 울다 잠이 든다고 하는 거지?" 그는 고개를 잠시 갸웃거리더니 지식인에 물어보라는 무책임한 말을 던졌다. 참나, 지식인이면 다 아냐?라고 생각했던 나는 뜻밖의 공간에서 인생의 스승을 만나게 되는데...
개똥벌레는 정말 친구가 없는지 궁금한 질문자에게 답변자는 이렇게 말했다. 개똥벌레의 친구 존재 여부는 그 입장이 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얼굴과 존함을 모르지만 이 분은 아마도 무릎까지 길게 늘어진 흰 수염을 곱게 빗으며 구름을 타고 다니면서, 모든 이들의 생각이 다 나와 같기를 바라거나,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래?를 습관처럼 내뱉는 나 같은 인간들을 구제하러 다니는 현자가 아닐까.
나는 뒤로 가기를 누르지 않은 채 오래도록 그 페이지에 머물렀다. 이곳에서 이런 깨달음을 얻을 줄은 정말 몰랐는데. 그러니까 동남아시아에 가서 질 좋은 패딩을 득템 한 기분이랄까!
내가 상대방이 되지 않고서는 절대 절대 알 수 없는 감정들을 해석하고 오해하는 데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감정에 휘말려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에도 너무 많은 감정을 낭비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감정, 상황에 시간을 쓰는 대신 죽을 때까지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개똥벌레는 정말 친구가 없나요?라는 생각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당분간 나의 수면 노래는 개똥벌레로 정했다. 이제는 가지마흐라를 들어도 슬프지만은 않은 것이 , 오늘 밤은 이렇게 웃다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