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오랜만에? 답답하고 우울한 글입니다.
답답하다. 답답해. 코로나 후유증인지 뭐인지는 모르겠는데 기분이 영 꿀꿀하다. 안 그래도 없던 체력을 가진 몸뚱이는 집 앞 공원만 나갔다 와도 맥을 못 춘다. 바람 빠진 풍선이 된 느낌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도서관에 다녀왔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두권이나 챙겼고, 오랜만에 종이 냄새를 잔뜩 맡고 와서 기분이 조금은 좋았다. 버스카드를 도서관 정수기 위에 올려두고 왔다는 사실을 아주 늦게서야 알게 되기 전까지는.
다행히도 카드는 정수기 위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다행이었지만 괜히 슬펐다. 왜 이렇게 정신을 놓고 다니는 걸까? 요즘 나는 왜 이러지?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남편과 이야기를 아주 오래 나누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아 새벽 5시까지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 때문일까. 다음날은 상태가 더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일어나자마자 어제 새벽에 끓여놓은 김치찌개에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설거지를 미루고 침대에서 쉬려는데 조용하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엄마였다.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별일 없느냐고. 어... 어. 별일 없는데, 왜? 무슨 일 있어?라고 몇 번을 캐물으니 그제야 엄마가 말했다. 역시 이번에도 또 돈 때문이었다.
또? 돈을 빌려달라는 말도 아니고, 지금 당장 우리 집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라는 말도 아니었는데 나는 대뜸 화가 났다. 우리 집은 도대체 언제쯤 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엄마는 프리랜서 개념의 일을 하는데 매달 일정치 않은 돈을 버는 듯하다.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함) 무튼 돈 때문에 힘들다는 엄마에게 나는 그럼 일을 그만 두면 되겠네~라는 무책임한 말을 했다. 아빠가 버는 돈도 있고 하니 둘이 충분히 살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은 덤으로. 그렇게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말들을 하나씩 내뱉었다.
엄마는 그냥 지나가는 소리였지만, 오늘의 나는 그냥 스쳐 보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왜지? 왜? 왜? 근데 엄마는 왜 맨날 돈이 없는 거야? 그러면서 돈 때문에 힘들다는 사실을 어떻게 그렇게 꽁꽁 숨길 수 있었어? 내가 중학생 때부터 우리 집이 기울었다고 했는데 그 여파가 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있는 거야? 도대체 왜?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결국 뱉어내지 못한 말은 가슴에 그대로 박혔다.
하고 나면 후회할 말과 하지 않으면 후회할 말을 구분하는 능력은 여전히 내게 없다.
엄마는 갑자기 빗소리를 듣고 있냐고 물었다. 듣고 있지, 우리 집은 너무너무 좁아서 어디서든 다 들린다고 툴툴댔다. 우리 집이 좁은 게 엄마 탓도 아닌데, 도대체 왜 툴툴됐는지는 나도 모른다. 엄마는 무거운 대화의 공기를 바꾸려는 듯 대뜸 비가 오는 날이 좋다고 했다. 이런 날에 같이 부침개라도 해 먹으면 좋은데, 라는 말을 역시 목구멍으로 삼켰다. 그 정도는 했어도 됐는데. 엄마랑 같이 부침개나 부쳐 먹으면서 하하호호 웃고 싶은데, 라는 말 정도는 했어도 됐는데.
엄마는 전화를 끊고 한 시간 뒤에 밥 맛있게 먹으라며 ㅋㅋㅋ가 가득찬 문자를 보냈다. 마치 낮의 신경전이 오가던 대화는 없던 걸로 치자는 뉘앙스의 문자였다. 엄마는 매번 이런 식. 힘들어도 웃어야지, 어쩔 수 있냐라는 식. 엄마가 돈 때문에 그만 힘들었으면 좋겠어, 내가 능력이 좋다면 엄마도 이제는 조금 편할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언제쯤 돈에 작아지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말도 마음속 깊이 밀어 넣고, 나도 엄마를 따라 ㅋㅋㅋ 웃었다.
그냥 우리가 조금 더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우울한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건 바로 글로 쓰는 것. 이런 찌질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쓴다는 것에 며칠밤 이불 킥을 할지 모르지만, 엄마가 보지 않을 가장 안전한 이 공간에 글을 쓴다. 사실은 엄마가 이 글을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마음을 썼다. 조금은 쓴맛이 사라진 느낌이 든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