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을 찾자, 이성을 찾자고.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제 친구가 감염되었는데요.", "동거인이 확진이라네요.."라는 글이 올라왔었지만, 정말 내 주변에는 코로나에 걸린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주변에 감염이 없다면, 당신! 친구 없는 거야!라고 말하는 기사를 보자마자 뭐여, 나 친구 없는 거야? 킥킥 대던 나의 뒤통수를 세게 치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하루아침에 나라 잃은 사람처럼 초점을 잃은 나는 허공을 쳐다보며 말했다. "헐 미친 대박.. 헐 미친 대박.." 헐 미친 대박이라는 말만 배운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내게, 선생님은 비닐장갑과 검사의뢰서 그리고 처방전을 건네주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처방전을 받는 내게 선생님은 온화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백신도 다 맞으셨고, 약도 드실 거니까.. 별 탈 없이 잘 지나갈 겁니다."
그 길로 피씨 알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인터넷에 <신속항원 양성>, <신속항원 오류>, <신속항원 확률>을 검색하고 양성 판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애썼다. 그랬지만, 결과는 역시 양성.
에이, 설마라는 마음으로 받았던 신속항원에서 양성을 받고, 이게 정말 진짜일까?라는 마음으로 받았던 피씨알에서도 양성을 받으니 오히려 덤덤했다. 는 뻥이고 연속 양성 판정에 안 그래도 겁이 많은 쫄보의 가슴이 쿵쿵대기 시작했다.
왜 나일까, 왜 나여야 했지? 왜 나지? 나는 진짜 외출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고, 요즘은 운전면허시험장에 가는 것 외에는 큰 외출이 없었는데, 아 오랜만에 나간 서울 나들이가 문제였나? 생각은 생각을 낳고, 생각이 또 생각을 낳았다. 평소 작은 일도 크게 생각하는 나쁜 습관이 있는 내게 코로나 양성 진단은 아주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들기 좋은 엄청난 큰일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빠르게 접기로 했다. 감염 경로를 알 수도 없고, 알아봤자 내가 갑자기 음성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니까. 괜한 감정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성을 찾자, 이성을 찾자고.
그래서 남편을 내보냈다. 내쫓았다는 표현보다는 내보냈다는 말이 맞겠다. 다행히도 나는 큰 증상은 없었지만, 나와 같이 24시간을 보내는 남편에게 코로나를 옮기는 건 너무너무 싫었다. 우리 집이 조금이라도 넓었다면, 그래도 같은 집에서 격리를 하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집은 그러지 못했다. 문이 닫히지 않는 작은방을 보자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남편은 다음 주에 새로운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하는데, 확진이 된다면 이건 꽤나 큰일이 될 테니까. 우리는 결혼한 지 3년 만에,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옷과 수건을 빵빵하게 넣은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선 남편의 뒷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마스크를 벗었다. 화장실을 가기 전에 끼고 있었던 비닐장갑도 시원하게 벗어던졌다. 아, 자유다.
샤워를 하기로 했다. 몸에 뜨거운 물을 퍼부으니 몸 구석구석에 들러붙은 바이러스가 금방이라도 나 이만 죽겠음!이라고 말하고 떠나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숙여 능숙하게 머리에 샴푸칠을 하고 정수리를 박박 긁었다. 그제야 알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혼자 사는 일은 이번이 처. 음.이라는 것을.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무거웠던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앞으로 격리기간 동안은 이 집에 오직 나뿐이라는 사실은 코로나 확진자를 춤추게 했다. 오로지 혼자만을 생각하면 되는 시간. 나는 내 몸 회복에 집중하기로 했다. 걱정이 너무 많아서 걱정인 나는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다.
일어나면 하루의 식사를 배달어플로 준비하고, 낮에는 아이패드 드로잉 수업을 들으며 그림을 그렸고, 밤에는 책을 보고, 유튜브 영상을 만들기도 하고, 자기 전까지는 유튜브를 보면서 하루 24시간을 효율적으로 썼다. 세상에, 이거 나쁘지 않은데? 오히려 좋아.. 히죽히죽 웃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격리 해제의 날이 다가왔다. 7일간의 격리 생활, 한마디로 나쁘지 않았다. (다행히도 나는 목이 조금 간지럽고, 콧물이 나는 증상 외에는 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자유로운 자가격리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평소 전화통화는 낯간지러워하는 아빠와 나는 이틀에 한번 꼴로 전화를 했다. 물론 엄마는 하루에 두 번 정도 전화를 걸어 매번 최소 30분 정도 웃긴 얘기, 아빠 얘기, 임영웅 얘기, 동생 얘기, 언니 얘기 등등을 하다가, "얘! 뭐 먹고 싶은 거 없어?"라고 본론을 말하더니 몇 시간 뒤에 바로 전복죽과 닭볶음탕을 만들어 복도에 갖다 주기도 했다. 매일 자기 할 말만 하고 카톡을 씹는 언니도, 회사 기숙사에 있는 동생도 자주 카톡을 보내주어 나를 귀찮게 했다. 태어나서 가족에게 이렇게 큰 관심을 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아, 친구들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친구가 없어서 내가 코로나에 걸렸구나, 생각했던 그날의 생각은 틀렸다. 코로나를 계기로 나는 변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먼저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간 바쁘게 산다는 핑계,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는 핑계로 웬일이야? 잘 지내? 별일 없지?라는 말이 이전에는 그렇게 어렵더니만, 확진이 되고 친구들에게 먼저 선톡을 열심히 날려댔다. 잘 지내냐고, 너도 건강 잘 창기라고. 매번 어렵게만 느껴졌던 안부 연락을 한 나는 친구들에게 과분한 위로와 따뜻한 마음을 듬뿍 받았다. 순간순간 인류애가 충전되는 느낌적인 느낌. 그러니까 나는 친구가 없는 게 아니었다고! 대신 친구들 대신 내가 걸렸다 생각하기로 했다. (과하게 낙천적인 성격은 때로는 큰 도움이 된다.)
이제 전문가들은 오미크론 확진자가 일 3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한다. 전문가들의 예상은 지금껏 크게 틀린 적이 없다는 사실은 불편한 진실이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가족들이, 많은 사람들이 오미크론을 슉슉 피하기를 바란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나저러나 "건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