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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Feb 22. 2022

엄마가 운전면허시험에 한번 더 떨어지라고 말했다.

엄마, 내가 왜 떨어져야 해?

삼수생이 되었다.

운전면허학원에 다니는 대신, 남편에게 운전을 열심히 배웠다.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는 "기능시험, 이 영상 꼭 보고 가세요!"라는 영상이 연속 재생됐고, 눈을 뜨고 있으면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운전 영상을 보고 또 보느라 현생을 살고 있는 것인지, 유튜브에 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이 정도면 광기였다. 하늘이 알아서 합격을 시켜줬어야 했다. 첫 번째 시험에서는 교차로 신호 위반 실격, 두 번째 시험에서는 속도위반 한 번, 주차 탈선 두 번으로 77점의 점수로 불합격을 하고 말았다. 이 정도 노력이면 하느님이 보우하사 운전면허 기능시험 합격을 주실 줄 알았건만, 역시 나 따위는 운전대를 잡으면 안 되는 사람인가?


불합격이라는 빨간 도장이 선명하게 찍힌 수험표를 들고 나의 운전 선생(남편)을 만났다. 볼 낯이 없어서 고개를 수그렸다. 나보다 더 열심이었던 선생을 보자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괜찮다고 토닥여주는 그가 고마우면서도, 오늘 기능시험 피드백을 조곤조곤 읊어주는 그 목소리가 괜히 미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휴게소에 들렀다. 소떡소떡이나 호두과자는 감히 먹을 수 없었다. 감히 나 따위가.. 기능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진 내가 소떡소떡을 먹으며 행복할 수 없지.. 대신, 작은 편의점에 들른 나는 1,400원짜리 초코우유 대신 200원이나 저렴한 타 초코우유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서울우유만의 달달하고 속이 꽉 찬 초코맛 대신 우유에 초코시럽 두 방울 정도 들어간 듯한 허접한 초코우유맛에 할 말을 잃었다. 안 되겠다. 점심은 아주 거하게 먹어야지.


식당가를  바퀴 돌다가 들어간 곳은 샤부샤부 집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미나리가 듬뿍 올라간 냄비가 눈앞에 놓였다. 고기를 먹고, 칼국수를 말아먹고, 볶음밥을 먹었더니 기분이 좋아지고 말았다. 이렇게나 단순한 나는 그제야 내가 삼수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삼수생.. 삼수생이라! 약간 찝찝한 느낌이 들었지만,  사실이 웃겨서 실실 웃음이 세어 나오상황에 놓여있을 때였다. 테이블에 올려  핸드폰이 위이잉 울렸다. 지구상에서 남편 외에 유일하게 나의 시험일정을 아는 사람, 엄마였다.


나는 왼손으로는 전화를 받고, 오른손으로는 냄비에 둘러붙은 볶음밥을 긁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엄마 나 오늘 시험 봄!"


엄마는 바로 붙었냐고 물었고, 나는 당연히 떨어졌다고 말했더니, 왜 꼭 붙은 사람처럼 신나 있는 거냐며 웃었다.


"아니 그래도 말이야.. 이번에는 신호등이 보이더라고.. 근데 T 주차도  들어갔는데.. 졸아가지고 고치다 보니까 글쎄 탈선을    거야!! 점수미달 실격이라길래  자리에서 내렸지  캬캬"


"그래~~ 자알~~ 했다. 한번  떨어져~~"

"엥? 아니 왜 한번 더 떨어져야 돼! 다음에 붙어야지!"

"(깔깔대며) 원래 그렇게 떨어져 봐야 제대로 배우는 거야. 이제 무섭지는 않지?"


헉.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숟가락을 내려둘 수밖에 없었다. 샤부샤부 점심특선 비용은 2만 2천 원. 기능시험 접수비와 똑같은 금액을 이렇게 써버렸다고, 오늘 시험 두 번 본 셈이라고 깔깔 웃으며 집으로 돌아가려다 남편의 핸들을 꺾어 공원으로 향했다.


평일 오후의 공원 주차장은 한적하다 못해 경이롭다. 너무나도 조용하고 고요해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짹짹거리는 새들의 소리와, 좌측 깜빡이를 켜면서 핸들을 돌리는 소리뿐.


정신 차려보니  시간이 지나있었다.

아, 나 또 열심히 했네. 미쳤네 미쳤어. 이러다가 또 떨어지면 웬 개망신이냐? 친구들에게 말 안 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아오 유튜브 보면 다들 한 번만에 독학으로 다 따더구먼, 가속 구간에 가보지도 못하고 떨어진 게 너무 쪽팔리다며 핸들에 머리를 박고 흑흑 우는 척을 했다. 나의 눈물 콧물 구라 쇼를 가만히 지켜보던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현재 기능시험에 44,000원을 썼음. 학원에서 기능시험 수업을 받고 시험을 보려면 40만 원이 들어감. 기능시험에서 만약 5번을 떨어져도, 학원 가는 것보다 싸게 먹힘.  사실 오늘까지의 기능시험은 연습이었지, 시험이 아니었음. 10분 코스 돈 내고 한번 돌아본 거라고 생각하면 됨. 본인은 최소 3번은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음. 이게 정상임. 그리고 어머님 말씀처럼 떨어져 봐야 진짜 제대로 배울 수 있음. 앞으로 세 번 더 떨어져도 괜찮음. 진짜임. 그러니까 우는 척은...


그렇다. 나의 하나뿐운전 선생님은 따뜻한 가슴을 가지신 합리화의 달인이신 것이다. 그의 언변에 감동을  나는 천천히 핸들에서 고개를 떼어 격하게 끄덕였다.


맞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나는 운전석에 앉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고사이 나는 운전대에 올라 상향 등을 킬 수 있으며, 신호등을 보고 교차로를 지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지 않은가. 이것만으로도 평생 조수석에 앉아서 살겠다고 다짐했던 쫄보 인간의 놀라운 변화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이제 내일이면 나의  번째 기능 시험이다. !  떨어졌다!라고 말하며 웃는 사수생이 될지, ! 이제는 도로주행이다!라고 말하는 합격생이 될지는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오늘의 내가   있는 일을 하러 떠나야겠다. 정보의 바다, 운전면허 합격의 성지 바로 그곳, 유튜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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