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면 날마다 오는 글태기(권태기)는 아니었지만.
대답해 드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오랜만에 글쓰기 버튼을 눌러봤습니다. (사실 친구 한 명만 물어봄) 날이면 날마다 오는 그런 보통의 글태기(권태기)는 아니었고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 문장을 쓰고 난 뒤 스스로에게 화장실에 갈 시간은 있고, 글 쓸 시간은 없냐고 물었는데, 글이랑 그거랑은 다르잖아?라는 대답을 했습죠. 그게 도대체 뭔 소리야? 싶으신가요? 저도 이게 무슨 글이 될지는 정말 감이 안 오네요. 환장.
지금 이 순간 브런치의 글쓰기 화면은, 마치 몇 년 만에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친구를 마주친 것처럼 어색해 미치겠습니다. 안녕? 잘 지냈어?라는 말조차 쉽게 나오지 않아 버벅거리다가,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눈동자를 재빠르게 돌리는 그 숨 막히는 어색한 상황 같달까요. 너무나 새하얀 화면은 마치 "어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봐..!"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그럼 이제부터 구구절절 변명을 해보겠습니다.
그동안 제게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주중에는 파스타 공장 아르바이트를 했고요. 니트 컴퍼니 활동을 마친 뒤에는 한 연구원님의 제안을 받아 니트 청년의 신분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고, 팀원들과 함께 플래너를 만드는 새로운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고, 유튜브 영상도 만들고, 8주간의 <애프터 이펙트> 수업은 끝이 났지만 곧바로 <시나리오 기초 강의반>에 들어가 새로운 형식의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주로 쓰던 에세이가 아닌 낯선 장르다 보니 걱정이 많았지만, 그 점이 제게는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여기서 한 가지 문제점? 은 시나리오 상의 허구적인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저의 상황에 대한 글을 쓰기가 너무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그동안 글을 쓰기 힘들었네요. 는 사실 거짓말입니다.
시간이 없었다는 것도 거짓말이었습니다. 제게는 분명 글을 쓸 시간도, 여유도, 욕구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제대로 쓰지 않았습니다. 더 잘 쓰고 싶어서, 이런 글을 글이라고 하고 싶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대충 쓰면 구독자가 이탈할 것 같아서 등등의 이유로 글 쓰는 것을, 발행하는 것을 비가 온다고 미루고, 날이 더워서 미루고, 손에 땀이 많이 나서 등등의 온갖 그럴싸한 핑계를 찾아가며 쓰지 않았습니다.
잠시 브런치와, 글과 짧은 이별을 한 셈이었죠. 하지만 헤어져보니 알겠더라고요. 이것이 제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글을 쓰지 않고, 글을 멀리하니 오히려 글이 너무 쓰고 싶고 그리워지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파스타 면을 포장하면서도 글 소재를 찾았고, 금방 잊어버릴까 봐 위생복을 벗지도 않고 탈의실에 쭈그려 앉아 핸드폰에 메모를 하기도 했고요. 글을 너무 쓰기 싫을 때도 많았지만, 글을 너무 쓰고 싶을 때가 더욱 많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하반기에는 다시 심기일전하여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쓸 생각입니다. 소원해졌던 글과 친해지기 위해 다시 책상 앞에 앉습니다. 목을 당기고 허리를 곧게 세우고 키보드 위에서 타닥타닥 움직이는 손의 감각에 집중하며 글을 써봅니다.
아, 그나저나 이번 브런치 북 공모전에서는 특별상까지 포함하여 무려 50인을 뽑는 파격적인 변화가 있더라고요? 이제부터 공모전 준비 제대로 해서 이번에는 기필코 50인에 들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는 목요일입니다. 더 솔직히 말해서 저는 대상을 노려보겠습니다. 물론 이것도 거짓말입니다만, 대상을 노려야 특별상의 발가락이라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다 어쩌다 어이없게도 대상을 타게 된다면 더욱 좋겠지만요. 는 거짓말 아님.
아무튼 이렇게 툭 까놓고 할 말을 다 해보니 슬슬 브런치와 다시 친해진 느낌입니다. 재미있네요. 여기까지 다 써놓고도 이걸 브런치에 올려도 되는 글인 것인가, 또 한 번 검열하게 되지만 그래도 이런 글을 올려야 다음 주의 제가 다시 이곳에 글을 쓰러 올 테니까.. 이제 진짜로 발행 버튼을 누르러 가보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또 만나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