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석보드를 뜯을 수는 없잖아요..
오늘도 눈썹을 뜯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손톱을 물어뜯었었는데, 이제는 그 손가락으로 눈썹을 뜯고 앉아 있네요. 참으로 황당한 습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도 점심시간에 동거인과 통화를 하다가 저도 모르게 눈썹에 손을 갖다 대었는데 짧은 눈썹들이 3-4개가 손가락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 안 되겠다 싶어서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에 비친 제 눈썹을 보았어요. 아주 가관이더군요. 저는 눈썹 머릿 쪽, 그러니까 앞부분이 아니라 뒤쪽을 중점적으로 뜯는 편인데 그 부분이 눈에 띄게 비어보이더라고요.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는 평소 거울을 잘 보지 않는 편인데, 그 많던 눈썹은 다 어디로 갔나 싶었죠.
"아씨 나 눈썹 없어졌네."
"몰랐어? 근데 말이야. 프니는 눈썹이 다 없어지면 어떻게 할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왜, 모나리자처럼 눈썹이 그렇게 없어진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네 눈썹도 같이 밀어버리자! 민눈썹 부부가 되는 거야, 어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며, 갑자기 왜 자기 눈썹도 뽑아 버리려고 하냐며 그는 매우 황당해하며 웃었습니다. 하지만 더 황당한 건 바로 저 자신이었죠. 그러게. 왜 바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그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생각을 하고 말하는 습관을 들이고 싶은데, 그건 눈썹 그만 뜯는 것보다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저는 매사 이런 의식의 흐름으로 사는 것 같습니다. 일단 뽑아! 근데 눈썹이 없어졌다? 그럼 몰라! 아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요! 이래서 저는 계속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나 봅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는 팟캐스트를 녹음하러 스튜디오에 가 있었고, 또 한 번 정신을 차리니 새로운 모임을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늘어놓은 일들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좋게 말하면 추진력(?)이 좋은 거고, 약간 안 좋게 말하면 대책이 없는 건데요. 하지만, 저는 나름 성실하다고 자부합니다. 그래도 일단 꾸준히 할 수 있는 근력이 조금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럼 이쯤에서 제가 8개월 동안 준비한 프로젝트를 대뜸 자랑해 보겠습니다.
작년 5월, 니트컴퍼니에서 만난 동료들과 함께 텀블벅에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희는 세상에 없는 귀여운 냉장고 자석보드를 만들었는데요. 사실 솔직히 말하면, 원래는 플래너를 만들 작정이었습니다. 플래너 만들 사람 모이세요~!라는 말 한마디에 오! 재밌겠다! 외치며 달려들었을 때만 해도, 3개월이면, 6개월이면 우리는 제품을 만들고 판매를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만, 역시 인생은 계획 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카페를 전전하며 회의를 하면서 방향을 틀고, 틀고, 틀던 어느 날, 왜 세상에 있는 화이트보드는 모두 하얗고 얌전하기만 할까?라는 시작된 물음으로 자석보드가 탄생하게 되었고, 결국 2023년 2월 6일, 월요일에 드디어 세상에 우리의 이야기를 공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렇게 장기프로젝트를 해 본 적이 없기에 과정들이 쉽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요. 그래도 와~! 재밌겠다~~~ 소리 지르며 달려갔던 과거의 저를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내가 저지른 만큼, 책임을 가지고 임했고, 마침내 이렇게 귀엽고 깜찍한 자석보드를 만들어 낼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지금 동네 카페 구석에 앉아 핸드폰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인스타툰이나 그리자는 마음으로 아이패드와 펜슬만 챙겨 나왔는데요. 음료 한잔을 들이켜자마자 갑자기 이 글이 쓰고 싶어 졌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노트북을 챙겨 나오는 건데. 그래도 급하게 나오지 않았다면 침대에 누워 눈썹이나 뜯고 있었을 테니 그건 또 다행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했더니 느낌이 별로 좋지 않네요.
매사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튀어나가는 제가 또 한 번 아쉬워지는 금요일 오후, 텀블벅 펀딩은 다음 주 화요일까지입니다. 아니 정말 맹세하건대, 홍보하려고 쓴 글은 아니었는데 또 생각과는 다른 마무리가 되었네요. 아무튼 귀여운 Write-now 자석보드는 다음 주면 판매가 종료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