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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니 Mar 19. 2024

[주의] 공개일기짱입니다. 아무나 보시오.

초등학교 3학년, 수업시간에 오줌 싸러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해 결국 바지에 지려버렸던 비운의 사건이 일어났던 날을 여전히 잊지못한다. 그 시절의 나는 무척이나 소심한 아이였다. 학교에 보낸 딸이 바지에 그만 실례를 해버렸다는 전화를 받고, 엄마는 속옷과 바지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우리 집이 학교와 3분 거리였던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화장실 앞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기 전에 엄마가 내 앞에 도착했으니까. 수업시간이 한창인지라 복도는 적막하리만큼 조용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가 나를 대충 씻기고는 바지를 갈아입혀주었다. 아무 말 없이 나를 닦아주던 엄마는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의 그 말에 울컥해 다시 눈물이 줄줄 나올 뻔했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엄마에게 잘해야지. 엄마 말 잘 들어야지. 그 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내 손을 잡고 그곳에 갔다. 얌전한 아이들의 공동 정모장소 중 하나였던 웅. 변. 학. 원. 그곳은 글짓기와 웅변과 속셈까지 가르쳐주는 곳으로, 명절선물과 같은 종합학원이었다.


간식으로 봉지과자를 주었던, 그래서 매일매일이 과자파티가 벌어졌던 그곳... 그곳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생님께서는 내게 앞으로 나가 손을 뻗고 큰 목소리로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를 시키셔서 다시 한번 오줌이 지릴 뻔했지만, "프니가 조금만 자신감이 생기면 좋겠어."라고 손을 잡고 말하던 엄마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래, 해보자. 과자도 맨날 주잖아. 그런데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또 다니다 보니 재밌어서 열심히 다녔지만, "히~~ 임차게 주장합니다~~"와 같은 행위를 또 언제 시킬지 몰라 나는 지속적인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런 나도 누구보다 밝고, 재미있는 사람이 되었던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나의 일기장이었다. 이상하게 일기장을 펼치면 나는 지나치게 솔직한 사람이 되었다. 선생님이 보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나의 TMI 이야기, 유치하게 여섯 살 어린 동생과 치고받고 싸운 이야기, 아빠가 술 먹고 2시에 들어와서 엄마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 우리 방 창문 앞에서 서성이는 아빠를 보면서 웃었던 이야기 등등.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굳이 굳이 써 내려가게 만든 일기장은 내게 무슨 존재였을까.

오랜만에 일기장을 펼쳤다.

20XX 년 3월 19일(금) 요일 일기.

제목: 보고 또 보고를 보고

그 시절 한반도를 뒤흔들어놨던 겹사돈을 주제로 한 임성한 드라마. 보고 또 보고를 본 감상을 일기장에 길게도 적었다. 대충 요약하자면, 당시 나는 둘째 딸이었던 은주에게 심한 감정이입을 하고 있던 터라, 첫째 언니인 금주가 너무 얄밉게 느껴졌고, 은주에게도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란다는 이야기였다. 보고 또 보고가 너무 인상 깊었겠지만, 저 날 딱히 쓸 말이 없었나 보다.. 하고 일기장을 덮으려는데, 옆에 자그만 글씨로 선생님이 써주신 멘트가 눈에 보였다.


[드라마를 재미있게 글로 썼구나.

선생님께도 직접 이야기해 주렴]


죄송하지만 나는 다음날 선생님께 찾아가, 금주가 작가에 등단하였고 임신을 하게 되어 참말로 다행이지만, 은주에게 더 많은 좋은 일이 생겨야 하는데 그 점이 너무 아쉽다고, 선생님이 작가선생님께 메일 좀 보내주시면 안 되냐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선생님 앞에만 서면, 문장이 나오다가도 입안으로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도록, 선생님께 은주 이야기를 해드리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났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교를 나오고, 직장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회사 밖에서 별 일을 다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여전히 말을 잘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핸드폰 메모장에만 들어가면 별별 생각, 감정이 아주 그냥 줄줄줄 나온다. 이런 (메모장 한정) 달변가가 따로 없다. 가끔은 이러다가 정말로 멋진 작가가 되어서 메뉴판의 가격을 보지 않고 음식을 시켜버리는 부를 가지게 될 아주 낮은 확률을 생각하니 눈물이 주룩 나올 것 같다. 


아무튼, 이제부터 이 공개일기짱에 솔직한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브런치라는 귀한 곳에 이런 누추한 이야기를 써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에 내 메모장에만 간직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브런치가 뭐 별 곳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아하하하하. 구린 이야기를 써도, 이상한 이야기를 써도 괜찮다. 괜찮아! 말을 잘 못해도 괜찮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이곳에 쓰면 되지, 뭐! 이제 이곳은 공개일기짱입니다. 아무나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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