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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께밭 Aug 27. 2019

내가 가진 힘

인도-조드푸르



인도는 특히나 한국에서 악명이 참 높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라들을 다녀왔지만, 유독 '인도'란 나라에게 엄한 잣대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실제로 인터넷에 인도 여행을 검색해보면 인도라는 나라뿐만 아니라, 인도 여행자들을 비난하는 댓글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물론, 아니 땐 불에 연기가 나겠으랴. 비난의 화살에도 그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 또한 두려움과 긴장감을 한 아름 안고 인도를 방문했었다. 걱정과 달리 인도에선 친절한 이들을 꽤나 많이 만났다.  물론  내가 만난 그들 개개인이 친절하고 따뜻했던 것뿐이며, 그런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이었겠지만. 그래도 그들 덕분에 인도라는 나라는 내게 좋은 기억과 추억으로 남았다.


그렇다고 얄궂은 이가 없었단 소리는 아니다.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거나 모든 상황에서 인도인들의 쏟아지는 눈빛 세례는 당연한 것이었고, 개 중에는 끊임없이 말을 거는 인도인들도 적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나는 그저 무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저 무시하면 편했으니까.



조드푸르에 도착하고 메흐랑가르 성으로 올라가던 중, 갑자기 10명 정도의 인도 남자아이들의 무리가 나를 가로지로며 우르르 달려왔다. 그들은 나를 조롱하듯 저들의 말로 익살스럽게 웃었고, 몇 명은 핸드폰을 들이밀며 내 사진을 찍으려 했다.

불쾌했다.

'아, 역시 인도라. 저급한 녀석들이네' 라고 생각을 하며 쓰고 있던 모자를 더 푹 눌러쓰고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무시했다. 아무 반응이 없는 나를 지나치고 그들은 계속 깔깔거리며 나를 앞서 올라갔다. 나의 불쾌감도 그 순간뿐, 그들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계속해서 메흐랑가르 성을 향해 올라가던 중 멀리서 사막 투어를 같이 했던 친구 한 명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친구의 이름을 불렀지만, 친구는 내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친구는 아까 나를 조롱하듯 깔깔거리던 남자애들 무리들에게 둘러 쌓여있었다.

또 저 녀석들이 저러고 있나 싶어 가볍게 생각하며 다가갔는데, 가까이서 보니 마을 주민들까지 많이들 몰려와 웅성거리고 있었다. 가벼운 상황이 아니었다.


상황을 들어보니, 그 무리들이 친구를 상대로 멋대로 셀카를 찍으려 했다는 것이다.  친구는 단단히 화가 나있었고, 경찰을 불러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이 상황을 지켜보며 웅성대고 있었고, 내가 묵던 숙소의 호스트 아주머니는, 그 무리의 남자애의 멱살을 잡고 호통을 치고 있었다.

친구는 경찰을 불러달라 하였고, 이윽고 정말 경찰이 왔다. 남자 무리들은 아까 나를 조롱하던 익살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툭 치면 눈물이 날 것 같은 울상으로 억울함을 토해내는 듯했다.

호스트 아주머니는 남자 애의 멱살을 놓지 않았고, 심지어 그 남자애가 인도말로 무어라 억울함을 토해낼 때마다 주먹으로 어깨를 치면서 친구에게 사죄를 요구했다.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인도인들도 남자아이들의 잘못임을 인정하고,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 사과를 해주기도 했다.


경찰은 친구에게 어떻게 하길 바라냐고 물었고, 주변의 인도인들은 우리에게 사과하며 남자 무리에게 선처를 바랐다. 친구는 결국 그들이 무릎 꿇고 사과하는 것을 요구했고,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두었다. 남자 무리들이 무릎을 꿇고 사과함으로써 상황은 마무리가 되었다.



사실 정말, 아주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란 생각이 일었다.


인도에서 외국인 여자를 향한 캣콜링 및 조롱이나 장난들은 비일비재한 것이 아닌가. 셀카를 찍으려 했다는 것 가지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원래 저런 녀석들인데 무시하면 그만 아닌가? 란 생각이 들었고, 퍼뜩 이런 생각을 한 스스로에게 소름이 끼쳤다.


소름이 끼치며, 부끄러움이 일었다. 두 가지의 이유다.


1.

'뭘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좋게 좋게 넘어가면 좋잖아?' 따위의 말들은 오히려 피해자를 죄인인 양 본질을 흐린다.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잊고선, 먼저 나서서 친구의 편을 들어주기는커녕 저런 부끄러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친구의 행동은 저 인도 남자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을 것이며, 그들은 앞으로 동양인 여자들을 함부로 조롱하거나 사진을 찍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친구의 그러한 분노는, 불특정 다수의 동양인 여성을 구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그들을 무시하지 않고, 되려 그들을 붙잡고 바로 잡았더라면 친구가 불쾌할 일이 일어났을까? 아니었으리라.


2.

그리고 인도인을 무시하는 나의 태도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라며 그들을 무시해야 내가 더 나쁜 상황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이와 같은 무시는 '인도인들은 원래 이래.'라고 치부하며 그 민족을 낮잡아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소름 끼치는 인종주의적 사고가 정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일까 자문하게 된다.

오히려 친구가 인도 남자아이들에게 보인 행동은, 그들을 낮잡아 보며 무시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친구의 분노는 어쩌면 그들을 향한 존중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한편, 그 소동이 일어나던 내내 우리 편에 서주었던 호스트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 이런 상황에선 절대 참으면 안 돼. 맞서 싸워야 하고 바로 잡아야 해. "

" Because, women have power. "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내가 가진 힘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분노하지 않고, 소리 내지 않고 그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검은 이들을 무시할 줄 만 알던, 그 날의 나는 힘이 없었다. 내 작은 분노와 소리가 누군가를 구하고 사회를 바꾸는 힘이라는 것을, 또 한편 그 분노는 존중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모르던 나약한 내가 있었을 뿐이다.

이제는 그 힘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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