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일간 세계여행을 하면서 많은 배움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꼽으라면 '좋은 사람이 좋은 기억을 만든다'는 것이다.
인도 바라나시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언니 둘이 있다. 그녀들은 나보다 한 살 더 많았고, 서로는 어릴 때부터 고향인 이태원에서 함께 자란 소꿉친구라 하였다.
그녀들은 나보다 이틀 정도 바라나시에 먼저 와있던 터라 바라나시에 대한 이런저런 많은 정보들을 주었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며칠을 지내다 보니 처음 본 사이인데도 참 편해져 버렸다.낯을 많이 가리는내게 항상 환한 웃음으로 먼저 다가와주었는데 그 환한 미소는 둘을 더 닮게 했고, 미소가 닮은 둘에게선 참 편안하고 좋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우리는 함께 일몰 보트를 타기도 하고 함께 강가에서 연도 날리기도 하며, 함께 밥도 먹고, 헤나도 하고, 그렇게 뜻하지 않은 동행으로 함께 하곤 했다. 언니들은 자꾸 내게 뭔갈 대가 없이 주곤 했는데, 속옷을 찬 것을 보고 "그대, 지금 브라 한 거야?"라는 파격적인 말로 내게 니플 패치 한 다발을 기꺼이 선물하기도 했다. 또 사막투어에 가는 날엔 칙칙한 검은 티셔츠를 입은 날 보고 사막 갈 땐 인도 옷을 입으라면서 언니들의 옷을 빌려주기도 했다. 그녀들이 아무렇지 않게 베푼 호의들은 사실 아무나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을 텐데.
밤이 깊었을 땐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별을 좋아한다 고백했고 수정언니는 물이 좋다 이야기했다. 각자가 사랑하는 것들이 상이하나 그것에서 얻어오는 감동이 같다는 것이 신기로웠다. 그 이후로 물의 힘을 느낄 때마다 수정 언니를 떠올리곤 한다.
주애언니는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 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다 어릴 적 연극을 보러 다니던 기억이 좋아 연기를 준비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언니의 눈은 참 빛이 나고 맑았다. 스스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자문하게 된다. 내가 나아가는 길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꾸려져 있는가? 아직은 잿빛이다.
언니들을 같은 신을 믿는다 했다. 그렇기에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내면서도, 많은 여행을 다니면서도 멀어지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인도에서도 항상 주일엔 기도를 드린다며. 이 둘의 선함과 밝음을 인도한 것이 신이라면 그 존재에 경외심이 인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그 뜻을 행하는 언니들에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언니들이 인도인들이 너어어어어무! 착하고 친절하다고 하더라. 아니, 인도인들은내게 관심도 없고굳이 내게 친절을 베풀지도 않던데,착하고 친절하다고? 그 답은언니들과 바라나시 골목을 한참 헤맬 때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친절한 것은 언니들이더라. 말을 걸어오는 인도인들에게 환히 웃으며 대답해주고 그들과 그 짧은 순간에도 친구가 되더라. 그녀들의 밝고 선한 기운이 인도인들의 웃음과 친절을 끌어내는듯했다.
난 '혼자' 인도 여행을 왔단 강박에 사로잡혀 인도인들이 나를 헤치진 않을까, 내 것을 뺏진 않을까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며 그들을 경계했었다. 그러니 당연히 인도인들 또한 마찬가지로 나를 경계했었을 테지.
길을 잃은 우리에게 길을 친절히 알려주던 인도인들을 보고, 언니들은 역시 So sweet! 라며 감탄했지만, 사실 나는 속으로 언니들에게 경탄했다. 그곳은 내가 어제까지 걷던 같은 거리였지만 완전히 다른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리는 더 생동감이 넘쳤고, 그제야 사람들의 맑은 얼굴들이 보였고 더 많은 음성과 에너지가 느껴졌다. 진짜 인도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정말 그녀들 말대로 인도인들은 so sweet 하고 so kind 하더라고.
남은 서로의 일정이 비슷했기에 자이살메르 사막투어를 함께 가기로 했다. 그렇게 자이살메르에서의 재회를 약속하고 언니들이 먼저 바라나시를 떠났다.
나도 며칠 뒤에서야 바라나시를 떠나 아그라로 향했고, 아그라를 지나 자이푸르를 거쳐 드디어 자이살메르에 가는 날이 왔다. 언니들은 나보다 하루 먼저 자이살메르에 도착해 있었고, 정말 맛있는 커리집을 찾아놨다며 내가 오면 함께 가자고 하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이 길고 긴 험난한 에피소드는 적어보긴 했는데 아주 구구절절 엄청난 분량이 나와서 교정을 미뤄뒀다. 추후에 다시 시도해 보는 걸로...)
아무튼 나는 그날 기차를 놓쳤다. 인도에선 장거리로 움직이는 기차는 몇 주 전부터 미리 예매를 해야 했기 때문에당장 자이살메르로 가는 기차를 현장에서 구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멘탈이 박살 나고, 배낭을 자이푸르 역 앞에 던져놓고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야속히도 해는 점점 지고 있었다. 그때 내 상황을 안 수정언니가 자이살메르로 오는 버스가 있음을 알려주었고 내 상황을 자이살메르 숙소 사장님에게 대신 전달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부리나케 버스터미널로 향했고, 우여곡절 끝에 9시간 동안 슬리핑 버스를 타고 자이살메르에 도착했다.
자이살메르에 도착하고 언니들을 보는 순간 정말 울컥하더라. 내가 이 낯선 타국에 버려지지는 않았구나, 그래도 이 곳에서 내가 혼자는 아니구나란 생각에 어찌나 위로와 안도가 되던지. 그 짧은 사이에 벌써 가족이 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우린 사막투어도 함께 다녀왔다. 그 이후의 루트도 거의 하루 차이로 엇비슷했다. 언니들이 먼저 조드푸르로 향했고 나도 뒤따랐다. 그리고 또 우다이푸르에서도 언니들을 만났다. 그럴 때마다 언니들은 먼저 도시에 도착해 숙소나 맛집들을 상세히 알려주었고, 그런 정보들은 혼자 다니는 내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인도에서의 거의 절반을 함께하곤 드디어 헤어지는 날이 왔다. 언니들은 뭄바이를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간다 했고 나는 이제 델리로 가 인도를 떠나 터키로 가야 했다. 언니들은 끝까지 터키 맛집과 터키 인사어까지 알려주며 내 여행을 응원해주었다.
많이 표현을 못했으나 그녀들에게서 큰 배움과 감동을 얻었다. 뒤늦게나마 깊은 애정과 감사를 담아 이렇게 글을 쓴다.
그녀들로 하여금 나는 인도가 참 좋았고 즐거웠다. 인도를 떠올리면 잊을 수 없이 떠오르는 것도 그녀들이다. 인도라는 나라를 좋은 기억으로 추억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인도인이 아닌 비인도인인 그녀들 때문이라는 사실에 전율할 수밖에 없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나라가 좋은 기억으로 추억될 수 있게 좋은 여행자가 되어야겠다. 누군가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하는 것은 나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걸 그대들에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