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께밭 Jan 20. 2020

당신을 그렸다. 사랑한다는 말이다.

인도 우다이푸르- 샹갈화방에서 세밀화를 그리다.

이전 날 루프탑 카페에서 얻은 물갈이로 새벽 한숨을 자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몸에 있는 것을 모두 쏟아낸 뒤 최악의 컨디션으로 우다이푸르를 거닐었다. 우다이푸르의 볼거리인 시티 팰리스로 향했지만, 장엄한 성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긴커녕, 아릿한 복통과 어지러움으로 한걸음 뗄 때마다 주저앉고는 신음을 토해내고 있을 뿐이었다. 정신이 없어서 무엇을 구경했는지도 모른 채로 성을 나와 숙소로 돌아갔다.     

 

정신이 조금 맑아진 뒤에 다시 밖으로 나와, 세밀화를 그릴 수 있는 화방을 찾았다. 이 전에 수정언니가 알려준 샹갈화방이란 곳이었다. 아버지인 샹갈과 그의 아들인 지락이 함께 운영하는 이 화방에선 인도의 전통적인 미술 화법인 세밀화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무엇을 그릴지도 직접 선택할 수 있다기에, 나는 엄마와 아빠 사진을 내밀었다. 지락은 내게 사진을 보고 우선 연필로 스케치를 하라고 일러주었고, 스케치를 마치고 나선 훌륭한 솜씨로 스케치를 더 꼼꼼히 교정해주었다. 그리곤 지락이 직접 색을 모두 만들어 주어 어디에 어떻게 칠하라고 하나하나 알려준다. 미술학원에는 다녀보질 않았지만, 족집게 과외 같은 느낌이었달까. 가느다란 붓으로 색을 칠하고, 마지막으로 지락이 난이도 높은 명암 표현과, 얼굴 색칠을 해준 뒤에야 그림이 완성되었다.      


누군가의 그림을 그린다는 건, 온전히 그 사람을 관찰하고 사랑하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의 눈이 어떻게 빛나는지, 코와 입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모양으로 웃는지 따위를 세심히 관찰하게 된다. 그리지 않았다면 몰랐던 부분까지 그려내게 된다. 당신을 그림으로써 당신을 알아가고,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확인하게 된다.      


오늘 당신들을 그렸다. 온전히 당신들을 사랑했단 말이다. 당신들이 그립다는 말이다.


내 사랑의 부족인지 완성된 그림은 엄마 아빠를 닮지는 않았지만, 그리는 동안 오롯이 그들을 바라보고 생각했기에 그 의미를 다했다고 본다.           


지락은 (거의 본인이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하다며, 이건 거의 너의 작품이라고 어서 찍어달라고 하였다. 지락은 사진의 엄마 아빠를 보더니 나와 많이 닮았다 하였고, 나도 웃으며 너도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고 회답했다. 아버지의 업을 물려받고 그 뒤를 따르는 지락의 모습이 대단하고 멋져 보였다.


아빠의 뒤를 따른다는 건 어떤 것일까. 어릴 때부터 내 우상은 아빠라 이야기하면서, 아빠처럼 살고 싶었다. 아빠의 삶을 무어라 설명할 순 없다. 그냥 ‘아빠처럼’ 살고 싶다. 

아빠처럼 살기 위해서 나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대답해줄 당신은 없으나, 일단은 이 무모한 여행이 당신과 가까워지는 것이라 믿는다. 아니, 함께 걷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함께하는 인도 여행도 끝이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사람이 좋은 기억을 만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