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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tsky Apr 30. 2023

어쩌다 DT

07 - 밥 안먹여 주는 자존심

신입사원 교육이 한창이던 때 

내가 가고 싶었던 팀이 사라졌다. 


나름 건축과 연관 있고 IT를 서서히 배워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인생은 역시 내맘 같지 않았다. 



결국 관계사 IT 서비스 운영팀에 배정 됐다. 

요구사항에 맞게 시스템 개발을 하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운영을 해주는 업무였다. 


100여명에 가까운 팀원과

그보다 몇배는 많은 협력업체 직원들이 섞여 일을 했고 

나와 함께 배정받은 동기도 많았다. 


내 자리를 받고 앉았을 때 느낌은

한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안되는 업무들이 

시끄럽고 빠르게 흘러가는 계곡물 같았고 

나는 그 옆에 조그만 조약돌 쯤으로 느껴졌다. 


어째든 조약돌이라도 

물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 내려가도록 

역할을 해내야 하는 상황이라 

상당히 긴장을 했던 것 같다. 


팀에 적응하기 위해 OJT 라는 것을 받았다. 

(On-the-Job-Training)


업무는 개발역량은 기본이었고

1초라도 장애가 나면 안되는 상황에

비즈니스 로직을 완벽히 이해하고 구현해 내야하는 일이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슈퍼에 가서 심부름을 해와야 하는 상황..


내가 짠 코드도 아니고

교육용으로 잘 정돈되어 있는 코드도 아닌 상황 

몇날 며칠을 들여다 봐도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해가 안됐다. 


건축할 때를 생각해보면

위성사진을 크게 뽑아 놓고 지형을 파악하기도 하고

등고선 라인을 따라 스케일을 조절해 

콘타(실제크기보다 줄여서 만드는 지형 모형)를 만들기도 한다. 

그 위에 원하는 모습의 모형을 만들어 보기도 한뒤

도면으로 정리한다. 


IT(Information Technology)는 그리고 개발은

화면상에 입력 받은 정보들이 

로직을 따라 왔다갔다 하다가 

정보를 저장하기도 하고, 그 정보에 따라 기계가 움직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계산을 마친 뒤 정보를 화면에 다시 보여준다. 


그래서 내 느낌에 바다로 흘러가는 계곡물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느낌은 그러했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되고 

뭐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많은 코드를 Print. 

Print() 가 아니라 종이에 출력했다. 


그러고는 형광펜을 들고 

변수, 파라미터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종이 위에 형형 색색 칠을 하고 화살표를 그렸다. 


그 모습을 본 선배들은 충격을 받았다. 

이 아이가 개발을 할 수나 있는건지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난 건축을 하다가 신입으로 입사한 탓에

바로 윗 선배들이 나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어렸다. 


그 선배들도 나를 어려워했고

나도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뭐 부터 물어야 할지 몰라 어려웠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서 파봤지만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회사 내 비즈니스 로직이 들어 있던 거라서

검색도 해볼 수 없었다. 


결국 정말 바빠 보이는 선배의 일이 다 끝날때까지 기다려

퇴근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죄송하다며 물었다. 

"선배님 혹시 이부분 한번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렇게 회사에, 업무에, IT에 적응 했다. 

선배님들의 도움이 없이는 

혼자 걸음마 하다가 지쳐 쓰러져서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전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자존심을 세울수가 없게 됐다. 


나이도 많았고, 경력도 있었지만

이 땅에선 쓸모가 없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모든 일을 짧은 시간 안에 해낼 수도 없었다. 


서른이 되서 확실하게 배웠다. 

자존심이 밥먹여 주지 않는다. 


자존심을 높이려 들지 말고

자존감을 키우자. 

언제나 조심하면서.. 나를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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